톈진(天津) 지역연구 1일차 (2)
지역연구 목적지로 톈진을 고르기 전까지, 나는 톈진의 역사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톈진이 '북방의 상해'라고 불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상해처럼 서양 각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적지 않게 놀란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톈진에서 볼 거리가 꽤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조계지, 하면 상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상해가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기에 유명한 것이지 실제 19세기 후반 중국에는 다양한 항구 도시에 조계지가 조성되었다. 전술한 상해 말고도 지금 이야기할 톈진, 우한의 한커우(汉口), 광저우(广州) 역시 조계지로 유명하다.
톈진의 경우 9개 서양 국가가 조계지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고, 상해가 전체 조계지의 약 60%를 차지했다면 톈진은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역연구 일정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조계지로서의 톈진을 알아보는 데 사용되었으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지나치는 많은 풍경들이 내게 톈진이 한때 조계지였음을 일깨워주었다.
톈진의 수많은 조계지 느낌의 곳들 중, 첫날 저녁 일정으로 정한 곳은 숙소 근처에 위치해있는 다섯 갈래의 길로 구성된 지역, 우따다오(五大道)였다. 현재는 총칭(重庆), 창더(常德), 따리(大理), 무난(睦南), 마창(马场), 이렇게 다섯 이름의 길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이곳은 본래 웅덩이가 많은 황무지와 같은 곳이라 허름한 민가들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860년 톈진에 조계지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영국 조계지로 정해졌고,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전하다는 판단으로 인해 북방지역의 부호들이나 높은 관료들이 너도나도 거주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부유한 분들이 살게 되다 보니 기존의 허름한 가옥에 살리는 없고, 요즘 중국말로 양치(洋气)한, 그러니까 트렌디하고 화려한 집을 짓고 살게 되는데, 그 화려하고 트렌디함의 기준은 바로 당시 조계지를 차지하고 있던 서양 각국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따다오에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양 각국의 건물들이 자리하게 되며, 상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톈진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상해로 치면 프랑스 조계지 일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상해의 프랑스 조계지에 대해 쓸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 우따다오도 4A급 풍경구로 지정된 것을 보면, 중국에게 있어서는 치욕 일지 모를 조계지라는 역사가 결국 지금의 중국에는 관광자원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따다오를 보기 위해 특별히 지도를 숙지하거나 하진 않았고, 상해에서 조계지를 볼 때처럼 그저 발 가는 대로 걸어 다녔기에 정확한 위치나 건물의 이름 등은 알고 있지 않다. 다만 사진은 여러 장 찍어두었기에 대략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만 알아주시면 좋겠다.
우따다오는 거리의 가로등마저 이렇게 서양스러운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상하이의 중산공원(中山公园) 근처의 모습과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우따다오의 흔한 건물들. 건축 양식이 모두 다르다. 상해처럼 이곳도 만국 건축박람회 느낌이 든다. 건물에 가까이 가보면 건물의 이름과 역사, 어떤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등이 적혀있다. 이전엔 은행으로 쓰였던 건물이나 종교시설로 보이는 건물들 모두 유럽 어느 거리의 분위기를 풍긴다.
유럽의 건축 양식을 모티브로 한 거리여서 그런지 여기저기 말 모양의 조형물이 많이 있다. 언젠가 이 길 위를 다녔을 마차를 재연한 것일까?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마차 동상에 아이 둘이 올라가 앉아 있고 어머니가 그 모습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공중도덕은 잠시 덮어두고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걷다 보니 좀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띈다. 다른 건물들은 그저 서양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 건물은 좀 개성이 강한 느낌이라 가까이서 설명을 좀 보기로 했다. 특이하게 느낀 포인트는 건물 외벽에 오돌토돌하게 무언가 붙어있는 모습이라는 점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건물의 이름이 거다로우(疙瘩楼), 한국어로 하면 두드러기 건물. 굉장히 직관적인 이름이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이 건물은 조계지일 당시에는 중산계급의 주택으로 쓰였다고 한다.
몰랐는데 이 우따다오에 천진외국어대학 캠퍼스가 있다. 그 언젠가 서양 각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이곳에 지금 외국어대학이 위치해있다니, 그 위치가 참 절묘하게 잘 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이곳에 머물게 된 강사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5월의 톈진, 거리를 수놓은 꽃들을 보니 낮에 왔어도 예뻤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날 우따다오에서 찍은 사진 중, 위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끝내 누구를 조각상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말을 타고 있는 남성의 기백과 뒤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 또 그 뒤에 보이는 중국은행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이곳 우따다오에는 톈진 하면 유명한 맛집 거우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 구불리포자) 본점이 위치해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나가다 보게 되어 사진을 찍었는데, 이미 저녁을 먹어서 가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빠오즈 가게를 뒤로 하고 걸어가는데 신기한 친구를 하나 만났다. 바로 오른쪽 사진의 도마뱀. 길거리를 다니는 도마뱀은 처음이고, 게다가 습한 남방도 아닌 건조한 북방에서 도마뱀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꼬물꼬물, 잘도 기어간다.
우따다오를 걷다 보면 그 중심에 흰색의 화려한 문 하나가 보인다. 쭈뼛쭈뼛 그 아치형 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큰 운동장. 운동장 주위로 계단식으로 공간이 조성되어있는데 그 규모나 모양이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한다. 이곳의 정식 이름은 민위안운동장(民园体育场). 본래 천진의 영국 조계지 공상국이 만든 운동장이며, 주로 축구 경기를 진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배경지식 없이 갔던 그곳은 워낙 넓은 데다 날이 어두워 마치 시민들을 위해 개방된 공원으로 보였다.
민원광장의 아치형 문 맞은편에는 아래와 같이 발로 연주할 수 있는 건반 조형물이 있었는데,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가족들이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놀고 있었다. 요새 워낙 코로나로 시달리다 보니 이렇게 마스크 없는 사진이 약간 적응이 안 된다.
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운동장이 나오는데, 우리가 갔을 땐 아래와 같이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不忘初心,牢记使命)'는 시진핑이 참 좋아하는 문구가 예쁘게 장식된 꽃밭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운동장 맞은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공산당이 주창하는 저 문구가 묘한 느낌을 주어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문구의 위치나 각도마저 심혈을 다해 설계했을 것이 분명하다.
광장 외벽을 따라서 쭉 아래 왼쪽 사진처럼 콜로세움 벽이 이어져 있고, 그 앞에는 가벼운 조깅이나 걷기를 할 수 있는 트랙이 조성되어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 계단식으로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톈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콜로세움 같은 벽을 그냥 놀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테마 영상을 상영하고 있던 것이었다.
외벽의 아치형 모양이나 설계는 십분 활용하면서 톈진과 우따다오의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도 입체적으로 상영하는 것이었는데, 주위 소음이 많아 중국어 내레이션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건축물의 구조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스토리를 표현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많은 시민들이 영상을 휴대전화에 녹화하여 담고 있었다. 우따다오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이 영상과 콜로세움이 떠오른다.
민원광장의 트랙을 따라 저녁 산책을 즐기는 톈진 시민들과 함께 한 바퀴 쓱 돌면서 주변 상점과 풍경, 조형물을 구경하다가 다시 우따다오로 나왔다. 다섯 개의 길을 다 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시간도 늦어지고 다리도 무거워져 한 군데는 보지 못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우따다오에 대해 크게 인상에 남는 뭔가가 없다. 민원광장의 영상 외에는. 미리 지역에 대해 좀 더 조사하고 갔다면 봐야 할 포인트들을 콕콕 집어서 효율적으로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한편으론 조계지의 분위기라는 것이 사실 다 비슷한데 꼭 그렇게 미션을 수행하듯 다녀야 하나 하는 반골 심리(?)가 고개를 든다.
앞서 우따다오가 상하이로 치면 프랑스 조계지와 유사하다고 적었는데, 상해 조계지의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은 좀 덜한 편이다. 아무래도 톈진이 중국의 북방에 있는 도시다 보니 거리의 조성 방식 등이 남방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상하이는 동글동글 구불구불 이어진 길들 사이로 그 길만의 매력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면, 톈진을 비롯한 북방의 도시는 아무래도 거리가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어서 뭔가를 '찾아내는' 느낌이 덜하다. 어차피 직진하면 다음 건물이 나온다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이런 아기자기한 느낌을 찾는다면, 추후 서술하겠지만 이탈리아식 건물들이 모여있는 이탈리아 풍경구(意风区)가 조금 더 적합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첫날 일정은 숙소에서 가까운 가볼 만한 곳으로 골라 알차게 잘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날 일정은 꽤나 빽빽하다. 뻐근한 다리를 풀고 푹 쉬자!
[톈진 1일차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