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진(天津) 지역연구 2일차 (1)
둘째날 아침, 오전 일정이 꽤나 빡빡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첫 목적지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시카이교당(西开教堂, 서개교당). 민국 시대 프랑스인 주교가 톈진에 와 프랑스 조계지에 맞닿은 이곳에 지었다는 이 성당. 다른 많은 종교시설들과 마찬가지로 문화 대혁명 시절 홍위병에 의해 훼손되는 위기에 처했지만 지금은 톈진의 중요 문화재로 남아있고, 현재도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누가 봐도 '엇 중국 건물 같이 안 생겼네!?'라고 생각할 건물인데, 현재까지도 미사 등의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새벽 5시부터 연다. 민간에 무료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 시 오전 이른 일정을 잡기에 좋은 장소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외국인들도 꽤 있고,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이 성당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계셨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운 신성한 분위기와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수 놓인 천장은 이곳이 톈진이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당 입구 쪽으로 뒤돌아서면 2층에 파이프 오르간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실제 미사 진행 시 라이브로 연주를 들으며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벽면과 파이프 오르간이 언젠가 한국에서 참여했던 성당 결혼식을 떠올리게 한다. 문득 파이프 오르간이란 것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주었던 전 남자 친구/현 남편이 생각나 인스턴트 메시지로 사진을 보내본다.
아침부터 성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성당 한 바퀴를 둘러본 후, 허핑루 상점가(和平路商业街)를 구경해보기로 했다. 허핑(和平)은 그 한자에서 볼 수 있듯 '평화'라는 뜻이다. 중국에 이 '허핑'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 정말 무수히 많다. 바이두에서 허핑루를 검색하면 온갖 성의 온갖 도시에 있는 허핑루가 다 나온다. 타이위안(太原), 스쟈좡(石家庄), 청두(成都) 등등.. 당연하겠지. 평화를 바라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으랴?
다만 그 여러 개의 허핑루 중에 이곳 톈진의 허핑루는 분명 좀 특별할 것이다. 그 특별함은 이 길이 있는 위치에서 온다. 이 길이 만들어진 것은 1905년, 조계지가 있을 때다. 이 길의 북쪽은 일본의 조계지였고, 남쪽은 프랑스 조계지였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두 안전지대 사이에 놓인 길이었으니 돈 냄새를 맡은 수많은 상인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고, 유명한 쇼핑센터와 빌딩, 은행 등이 모여있었다고 한다. 그 유래나 모습, 규모를 보면 상해의 난징동루(南京东路)가 이곳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허핑루는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아, 쭉 뻗은 길 양편으로 크고 작은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는데, 한 쇼핑몰 앞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북방의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아마 아디다스 매장에 오픈하자마자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이곳이 아직 상업거리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허핑루에서 볼 수 있는 이 묘한 이국적인 건물은 톈진의 3대 백화점 중 한 곳이라는 톈진취엔예창(天津劝业场)이다. 처음엔 '일을 권한다'는 뜻의 이름만 보고 취업 소개소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역사가 오래된 백화점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이 곳을 세운 사람은 외국인이 아니고, 독일인 밑에서 석탄 중량을 재던 중국인 가오싱챠오(高星桥)라는 사람이다.
독일인 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인정받아온 그는 일로 벌어들인 저축을 가지고 조계지의 노른자위 땅에 큰 맘먹고 투자를 하게 된다. 주변에 은행과 호텔이 있어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황족인 경친왕(庆亲王)까지 투자자로 참여시키면서 투자 규모를 늘려 만든 것이 지금의 '천진 권업장'. 나를 오해하게 했던 '권업(劝业)'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것이 바로 경친왕인데, '사업으로 국가를 구해내자'라는 '실업구국(实业救国)' 정신과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라 가오싱챠오는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목'을 잘 고른 덕에 가오싱챠오의 예견처럼 이 쇼핑몰은 나날이 발전해갔고, 1928년부터 지금까지 근 100년을 이어가는 나라의 사업이 되었다.
마차에서 셀카를 찍는(?) 익숙한 광경을 지나니 또 어디에서 많이 본듯한 문양을 만난다. 바로 스타벅스의 세이렌. 이곳에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들어올 예정이었던 모양인데, 아쉽게 완공되기 전에 방문해서 들어가 보질 못했다. 예전에 타이베이 맹갑(艋舺) 스타벅스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건데, 스타벅스는 참 역사 깊은 곳에 매장 자리를 잘 잡는다. 톈진 허핑루에 자리 잡은 이 매장 자리도 사실 유서 깊은 자리다.
앞서 가오싱챠오가 백화점을 지으면서 주변에 은행과 호텔이 있어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적었는데, 이곳이 당시 가오싱챠오가 눈여겨봤던 은행, '저쟝싱예은행(浙江兴业银行)'이다. 당시 실제 은행이었던 건물을 내부만 리모델링하여 스타벅스로 만들어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위쪽에 은행 이름이 금색 글씨로 적혀있다. 아쉽게 가보지 못한 그 스타벅스가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아주 멋진 카페가 되어 있다. 실제 은행에 있던 돔 구조를 십분 활용한 모습이 눈에 띈다.
공사 중인 스타벅스 리저브 맞은편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자라 매장이 있다. 이 건물도 분명 뭔가 역사적인 유래가 있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찾질 못했다. 4층으로 이루어진 매장인데, 현재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곳은 터비에터(特别特)라는 옷가게인데, 이 건물도 꽤나 역사가 깊어 보인다.
조금 걷다 보면 또 범상치 않은 아치형 입구가 등장하는데, 이곳은 국민반점(国民饭店), 해석하면 국민호텔이다. 1923년에 세워진 이곳은 당시 상류계층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던 고급 호텔이었다고 하는데, 공산당에 의해 항일명장이라고 칭송받는 지홍챵(吉鸿昌, 길홍창)이 이곳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독특한 복고풍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연회장으로 찾는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거리에 있던 먹거리를 소개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톈진이 마화(麻花, 꽈배기 과자와 비슷)로 유명하다 보니 이 허핑루에도 마화를 파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그중 한 가게를 들어가긴 했는데.. 마화가 정말 너무 두꺼웠다. 북방의 기세라서일까? 나는 과자처럼 조그맣게 된 마화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형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톈진의 마화는 두꺼워도 너무 두꺼웠다. 과장하지 않고 한 백일 된 아기의 팔뚝 정도의 두께다. 맛이 정말 다양하긴 했는데 도저히 예쁘게 먹을 자신이 없어서 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톈진 말고도 마화를 특산품으로 하는 지역이 또 몇 군데 있고, 그 모양이나 맛이 다 달랐다. 곧 소개할 일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총칭(重庆)의 마화를 추천한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톈진의 길거리 먹거리 하면 대번에 떠오를 졘빙궈즈(煎饼果子)다. 북경이나 북방 지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면 아마 굉장히 익숙한 간식거리일 텐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병 반죽을 얇게 펴고, 계란을 펴 바르고, 파와 소스, 바삭바삭한 과자를 넣고 슥슥 접어서 잘라 주는 그 별것 아닌 간식이 나에겐 참 맛있었다. 북경에 있을 땐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아침이나 아점을 그 전병으로 때웠는데, 떠나기 전엔 아쉬워서 아주머니가 전병 만드는 모습을 양해를 구하고 동영상으로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 영상 어디 갔는지.. 9년 전이라 못 찾겠네..
아무튼 북경에서 그리 사랑했던 먹거리인 졘빙궈즈의 원조가 바로 이 톈진이라 오기 전부터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허핑루에서 이 졘빙궈즈를 자랑스럽게 적어둔 가게가 있어서 찍었다. 다만, 유명한 집을 따로 찾아냈으므로 이곳에서 먹진 않았다. 허핑루를 지나, 톈진 일정 중 참 인상적이었던 곳, 츠팡즈(瓷房子)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