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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n 19. 2021

누군가의 집이 도자기의 집으로

톈진(天津) 지역연구 2일차 (2)

누군가의 집이 도자기의 집으로, 츠팡즈(瓷房子)


톈진에는 중국인들이 '세상에 둘도 없다(举世无双)'이라고 묘사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츠팡즈(瓷房子). 도자기를 뜻하는 '츠(瓷)'와 집을 뜻하는 '팡즈(房子)'가 이어져 만들어진 단어로, '도자기 집'이라는 뜻이 된다. '도자기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집은 4,000여개의 도자기, 400여개의 조각품, 7억여개의 도자기 조각, 13,000여개의 자기 접시 및 그릇 등으로 만들어져 그야말로 '자기'에서 시작해 '자기'에서 끝나는 집이다. 게다가 7억여개의 도자기 조각들은 중국 각 시기를 대표하는 도자기 작품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단순히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사실 이 집은 본래 조계지의 유물이었다. 1927년 톈진에 온 외교관 황롱량(黄荣良)과 그 가족이 살던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집을 눈여겨 본 기업가이자 골동수집가 장롄즈(张连志)가 2000년에 무려 3,000만 위안을 들여 이 집을 사들였고, 이 오래된 프랑스식 주택에 중국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처음엔 그냥 처마 정도만 도자기로 장식할 생각이었는데, 업무차 들른 박물관에서 도자기 파편으로 덮인 벽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자신이 갖고 있던 수많은 골동품들로 이곳을 장식해보기로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2007년부터 대외개방 됐다는 츠팡즈(瓷房子)다.


본래 프랑스식으로 만들어져 조계지 스타일에 딱 어울렸던 한 건물이, 한 개인에 의해 '유일무이'한 집으로 바뀌다니! 물론 장롄즈(张连志)라는 사람의 재력이 뒷받침된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한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골동품을 개인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역사적 가치를 가진 골동품을 개인이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중국 특성상 정치적으로 위험할 가능성이 있고, 이 골동품을 약간 훼손시켜서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입장료 장사를 하면, 정치적으로도 안전하고 수익도 챙길 수 있다. 장롄즈가 기업가인 점에 착안하면 그저 수익을 창출하고자 했던 전략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중국 정부는 그의 행위를 높게 샀고, 한때 중국이 서양과 거래했던 물품인 도자기(도자기의 영어 이름은 China다)를 주제로 건물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허핑루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츠팡즈(瓷房子)는 그 입구부터 위용이 넘쳤다.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싶었는데 정말 입구의 담장부터 문, 지붕, 창틀까지 모두 도자기로 덮여있었다. 꼭대기에는 영어로 China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한자로 츠팡즈(瓷房子)라고 적혀있었는데, 이 포인트가 중국 정부의 수요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입구부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진을 찍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츠팡즈의 풀 네임은 중국츠팡즈박물관(中国瓷房子博物馆). 입장료는 50위안이다. 표에는 영어로 '허핑턴 포스트에서 2010년에 세계의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박물관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이곳이며, 중국 박물관, 그것도 개인 박물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적어두었다. 입장료가 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입장료 값이 아깝진 않다.



건물의 외관부터 정말 독특한데, 자세히 보면 모두 도자기의 파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곳은 도자기 자체가 벽돌처럼 쓰인 곳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입구에 있는 문 위에 써 있던 글씨인데, 중국어로 쭝궈멍(中国梦, 중국몽)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영어로 CHINA DREAM이라고 쓰여있다. 앞서 말했듯 이 장소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주황색으로 오톨도톨하게 발라진 벽면에 각종 도자기 파편 및 자기 접시나 그릇으로 꾸며진 실내가 나온다. 특히 벽면에 도자기로 만들어 놓은 회화 작품에는 어느 시기의 어떤 작품인지도 적혀있다. 천장을 수놓은 그릇들은 그 무늬와 모양이 모두 달라 이곳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자기들을 소장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조명갓도 도자기로 되어있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도자기 파편으로 장식해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자기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도자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인 장롄즈가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는 골동품 가구들도 실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이력을 가진 물건들인지 하나하나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외관이나 색깔을 보면 요즘의 물건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2층엔 테라스 같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밑에선 볼 수 없는 츠팡즈의 윗쪽을 볼 수 있고, 아래쪽 풍경을 조망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난 이 테라스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도자기 병들을 기와처럼 사용해 지붕을 한 땀 한 땀 꾸며놓은 것이나 말 목의 털을 도자기 파편으로 묘사한 것 등이 인상적이었다. 공간 전체적으로 주인이 신경써서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곳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컬러풀한 도자기 파편들이 아니라 컬러풀한 지폐의 향연이었다. 일전에 난징 푸즈먀오(夫子庙)허페이의 싼허구쩐(三河古镇)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중국의 관광지에 연못과 같은 곳이 있으면 꼭 돈을 넣는 사람이 있다. 재밌는 것은 이곳엔 연못도 없는데도 돈을 놓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골동 조각상이나 위패가 모셔진 곳, 이름 모르는 보살의 그림이 놓여진 곳에 놓인 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계단 옆에 돌로 음각된 조각, 그리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도자기 항아리 안에도 돈이 가득 차 있다. 아무리 1위안 이하의 작은 돈만 있다고 해도 티끌 모아 태산인데, 개중에는 심지어 5위안 이상의 지폐도 보였다. 참 중국인이 해학적인 것이, 어떤 조각상에는 손 부분에 억지로 지폐를 쥐어준 경우도 있었다. 팔짱을 낀 것 같은 조각상에는 그 품에 지폐를 안겨주었다. 어떻게든 내 지폐를 받고 내게 복을 달라는, 중국인의 현세구복적인 마음이 담겨 있다.


사설 박물관인데 이렇게 지폐가 잔뜩 쌓여 있으면 운영진들이 참 흐뭇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마냥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옛날 건물이라 배수시설이나 환기시설 등이 구식인데, 잘못하다 동전 등이 구멍으로 들어가서 막혀버리면 그것을 뚫는 데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미화원 분들은 힘들어 하신다는 블로그 글을 찾았다. 근데 그 블로그 글의 댓글이 또 흥미롭다. '만약 청소한 돈을 다 미화원 드리면 그분들이 이런 말 절대 안 할 걸? 안 주니까 이런 말 나오는거야.' 맞는 말이다. 뭐 결국 운영진은 흐뭇해하지 않을까 싶네. 역시 장롄즈는 기업인이다.



안전한 항해의 염원이 담긴 곳, 천후궁(天后宫)


중국 유일무이한 건물, 츠팡즈(瓷房子)를 보고 나서 향한 곳은 고문화거리(古文化街)였다. 이곳에 원나라 때 만들어진 마주(妈祖) 톈허우(天后)의 사당이 있다고 하여 오게 되었다. 마주(妈祖)라는 이름은 사실 신격화된 이름이고 그는 본래 임묵(林默)이라는 이름의 복건성 여성이었는데,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어 조난에 빠진 배들을 많이 구했고 그로 인해 신격화되어 신으로서의 이름 마주(妈祖)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원나라를 지나면서 마주는 하느님의 부인이라는 의미의 톈페이(天妃), 톈허우(天后) 등의 별칭을 가지게 되고, 무척 중요한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사실 이야기 자체가 신화적인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빌어서라고 지키고 싶었던 안전한 항해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다.


톈진에 그 사당인 톈허우궁(天后宫)이 들어서게 된 계기는, 원나라 때 수도인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로 식량을 운반하던 중, 바다에서 강으로 그 운반 루트가 바뀌는 지점이 바로 톈진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으로 가는 긴 여정 동안 식량이 안전히 운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 셈이다. 원나라 때인 1326년 만들어진 이곳 톈진의 톈허우궁은 몇 번의 보수 과정을 거쳤지만 톈진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에 속한다.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연꽃 화분을 지나서면 우주와 나라의 안녕을 바라는 사당과 그 앞에 수없이 매달려 있는 기원패가 보인다. 사당 앞에는 푸지취안(普济泉)이라는 이름의 샘물 자리가 있었는데, 널리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뜻의 푸지(普济)라는 이름이 마주의 신화와 맞닿아 있었다.



마주의 신화나 그를 기리는 사당도 물론 볼거리였지만,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내부에 위치한 량위엔거(良缘阁)였다. '좋은 인연'을 뜻하는 양연(良缘)으로 이름붙여진 이 누각은 이름 그대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주기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사실 마주의 신화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곤란하고 힘든 상황이 있으면 꼭 이곳을 찾았다고 하니 이곳에 다양한 분야의 고민상담소(?)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건물 앞 정자에 기원패들이 참 많이 달려있는데, 누가 양연각 아니랄까봐 그 모양이 모두 하트 모양이다. 좋은 인연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중국인의 마음이 이곳에 많이 매달려있다. 누각에 들어가면 할아버지 한 분과 동자들로 구성된 모형이 나오는데, 여기 계시는 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월하노인(月下老人)이다. 중국에서는 위에라오(月老)라고 불리는 이분이 바로 짝을 점지해준다는 분이다. 이미 짝이 있는 나는 얼굴만 뵙고 내려왔다.


양원각 위에서 본 다른 건물들의 모습. 고층 아파트가 눈에 보인다.



톈진 도심에서 느끼는 청나라의 숨결, 고문화거리(古文化街)


톈허우궁을 다 보고 나서 이 톈허우궁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고문화거리(古文化街)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본래 매년 마주(妈祖)의 탄신일 즈음에는 이 톈허우궁을 중심으로 한 골목들에서 각종 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행사가 있으면 상인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라 그 즈음에 이곳이 굉장히 흥성해졌다고 한다. 그런 유래를 살려서 1986년에 조성된 이 고문화거리는 청나라 민간 골목의 느낌을 살려 만들어졌으며, 톈진의 옛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볼거리들과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고풍스럽게 만들어진 문을 따라 고문화거리로 접어들면, 위 사진처럼 옛 동전들이 깔린 돌바닥이 나온다. 돌로 된 바닥과 양쪽을 수놓은 청나라 느낌의 건물들이 재미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톈진 시내에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거리에 있는 간판들 중에 가장 많이 보였던 것은 위와 같은 톈진 특산물을 파는 상점들의 간판과 '니런장(泥人张)'이라는 글씨였다. '니런장'이 뭔가 봤더니 풀네임은 '니런장차이쑤(泥人张彩塑)'고, 진흙으로 빚어진 후 색깔을 칠한 인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 '장(张)'이라는 글자가 붙었냐 하면 이 인형을 빚던 유명한 장인의 성이 장 씨였다고.



궁금해서 이 진흙인형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봤다. 심심풀이용 인형을 파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작품들이 많다. 위 사진은 청나라 건륭 황제를 만든 것인데, 아래를 잘 보면 '니런장 제 6대 계승자'가 만든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곤룡포에 수놓인 자수들의 그림이 남다르다.



길 한복판에 이정표처럼 세 곳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아무래도 이 고문화 거리, 나아가서는 톈진을 대표하는 곳이 적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운데에는 톈진을 대표하는 빠오즈 가게 '거우부리빠오즈(狗不理包子)'가 적혀있고, 오른편에는 톈진에서 시작한 오래된 약방, 다런탕(达仁堂)이 적혀있다. 왼쪽에 적힌 '밍러우차관(名楼茶馆)'은 무엇인가 봤더니, 이곳에서 유명한 찻집이다. 찻집이라고 해서 그냥 앉아서 차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고, 우리로 치면 만담 같은 상성(相声) 공연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곳이다. 상하이·쑤저우에서는 찻집이라 하면 평탄(评弹)을 들으며 차를 마실 것 같은데, 과연 북방은 다르다.



그리고 마침 그 때, 새빨간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톈허우궁 문 앞에서 뭔가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구도와 인물의 느낌으로 보니 상성(相声) 연기자들임에 틀림 없다. 이곳에 유명한 상성 공연장이 있으니, 톈진에서 상성을 공연하는 많은 연기자들이 몰려드는 모양이다.



톈진의 각종 볼거리 외에, 이곳엔 톈진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참 많았다. 특히 지난번 지나쳤던 졘빙궈즈(煎饼果子)는 이미 고문화거리의 유명한 가게를 위해 미뤄두었기에 꼭 가려고 준비했다. 그렇게 먹게 된 톈진의 졘빙이 바로 첫번째 사진! 베이징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두껍고 뜨거웠다... 안에 들어 있는 바삭한 과자가 너무 튀김 과자라서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졘빙은 좀 헝그리해야 맛있는 것 같다. 베이징 육교 및 졘빙이 그리워졌다.


이 날, 사실 정말 더웠다. 5월 말이라 이미 여름에 접어든 톈진과 고문화거리의 돌바닥이 환상의 케미를 이루어 돌판 위에서 익어가는 돌판 삼겹살이 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때 더위를 식혀준 음료는 사실 톈진의 전통 음료는 아니지만 그냥 고마운 마음으로 이곳에 실어본다. 패션후르츠 맛 음료였던 것 같은데, 하필 또 가게 안은 에어컨도 잘 안 나와서 음료를 더욱 감사하게 마실 수 있었다.


세 번째 사진은 바로 전편에서 언급했던 톈진의 전통 간식, 마화(麻花)다. 조그만 꽈배기 과자 정도를 생각했던 나는 저 어린 아이 팔뚝만한 과자에 기겁을 했다. 자세히 보면 맛도 다르고 심지어 시식할 수 있게도 만들어놨는데, 도저히 살 엄두는 나질 않았다.


네 번째 사진은 사먹진 않았지만 역시 톈진의 전통 간식이라는 슈리가오(熟梨糕)다. 이름 자체는 익은 배 떡이라는 뜻인데, 사실 과일 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배처럼 포슬포슬한 떡이라서 그렇게 명명된 것일지도 모른다. 쌀가루로 쪄낸 떡에 원하는 소스나 시럽을 얹어서 먹는 음식이라는데, 묘하게 불량식품 느낌이 나서 먹어보진 않았다. 아마도 톈진 사람들에게는 우리에게 피카츄꼬치나 떡꼬치가 그런 것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먹거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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