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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n 26. 2021

톈진의 젊음에서 한국을 떠올리다

톈진(天津) 지역연구 2일차 (3)

톈진의 젊음에서 한국을 떠올리다


고문화거리를 나오니 점심 무렵이 되었다. 어딜 가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너무 더우니 대형 쇼핑몰 같은 곳에 가서 먹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향한 곳이 톈진 Joy city(大悦城). 우리나라의 타임스퀘어처럼 식당, 오락거리, 가게들이 모여 있는 멀티플렉스다. 식당가에도 없는 요리 종류가 없었는데, 아쉽게도 너무 피크 타임에 도착한 터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식당이 드물었다. 게다가 그 대기의 줄도 상상 이상이라 도저히 기다렸다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제한적인 여행객 신분이니.



그래서 들어가게 된 곳이 마라샹궈(麻辣香锅) 가게. 대부분의 가게에 웨이팅이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 3명을 받아줄 한 테이블이 남아있는 유일한 가게였다. 고기와 야채, 각종 부재료들을 고르고 맵기를 정하면 금방 먹을 수 있는 마라샹궈는 사실 톈진이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요리였지만, 다른 가게를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여러 지역에 체인점이 있는 가게였는데, 글을 쓰는 지금 찾아보니 가게가 이미 Joy City에서는 없어진 모양이다. 역시 중국은 변화가 참 빠르다.



기름기 많은 볶음 요리를 먹고 나면 으레 차가운 커피가 생각난다. Joy City에 있던 스타벅스로 향한다. 커피 애호가들 중에서는 커피가 생각날 때 스타벅스를 찾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상해에서 커피 관련 클래스를 들을 때는 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는 나를 동정의 눈길로 쳐다보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여행할 땐 스타벅스만큼 안전한 선택지도 없다. 어느 지점에 가도 비슷한 상태의 원두를 쓰기 때문에 그 항상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아마 중국 각지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하면서 항상 참 부러웠던 것이 있다. 디카페인을 주문했을 때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 영수증을 보면 아메리카노를 디카페인(低因)으로 바꿨는데도 추가 비용 없이 결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인데, 중국에서는 어디서도 추가 비용을 받지 않았다. 차를 많이 마시고 커피의 카페인을 좋아하지 않는 중국인이 많아서일까?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위가 좋지 않아 일반 커피를 많이 마시면 무리가 오는 나의 경우에는 중국의 그런 정책이 참 부러웠다. 9월 한국으로 잠깐 중간 귀국했을 때 스타벅스에서 무심코 디카페인으로 변경했다가 추가 비용이 찍힌 것을 보고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스타벅스를 나와 1층 로비로 오니 무언가 떠들썩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쇼핑몰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정확히 무슨 행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패션과 관련된 행사인 것 같았다. 브랜드와 관련된 연사들이 차례차례 나와 젊은이들의 패션 의식을 고취시키는 무언가를 말하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샤오캉 사회, 샤오캉 사회(小康社会) 하는데 중국도 먹고사는 문제 외의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 지 오래다. 물론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런 생각을 더 깊게 느끼게 해 준 곳이 바로 이곳. 요즘 한국에도 대형 쇼핑몰에 종종 보이는 가죽 공방과 화방이었다. 평일에는 각자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하지 못하는 취미 활동을 주말에 이곳에 와서 즐기는 것인데, 꽤나 열중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오픈되어 있다는 것도. 아마도 홍보 효과를 노리는 모양이다.



톈진 사람들의 젊은 주말을 둘러보다가 재밌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질문이 적혀 있고 구슬을 위에서 넣어서 그 구슬이 어디 도착하는지에 따라 답을 주는, 어떻게 보면 결정장애를 위한 결정판 같은 것이었다. 그 질문의 내용이 또 좀 재밌는데, "오늘 저녁에 치킨 먹어도 될까?" "내년에도 이렇게 잔뜩 뭘 사게 될까?" "일찍 잘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오늘 떡밥을 뿌리려나?" "창업을 해도 될까?" 같은, 이런 결정판에 맡기기는 좀 웃긴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톈진 청년들은 열심히 그 질문들에 구슬을 넣어보고 있었다. 톈진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먹는 것, 사는 것, 부자가 되는 것, 덕질, 창업... 우습게도 그 대부분이 한국의 청년들도 고민하는 문제인 것 같았다. 결국 오늘을 사는 청년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어쩐지 좀 허무해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남시식품가(南市食品街)


Joycity 구경을 마치고 향한 곳은 남시식품가(南市食品街). 중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모여 있는 식품가라고 하여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방금까지 번화한 멀티플렉스에 있다가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허울뿐인 유명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식품가 안에 사람도 별로 없고, 상인들도 그다지 의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혹시 전체적인 분위기를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수도 있으니 사진을 공유해본다.



멀리서 본 건물의 모습. 외관은 그럴듯하다. 1984년에 만들어졌고 톈진에 오면 봐야 할 10대 명소 중 하나라는데, 막상 내부는 별 게 없었다.



이처럼 내부는 약간 지하상가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인데, 야시장에 있을 노점들이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여기서 무언가를 사 먹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었고, 오히려 우리처럼 그냥 구경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낮에 보는 톈진의 어머니 강, 하이허(海河)


다소 아쉬웠던 먹자골목 구경을 끝내고 우리는 강 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다. 상하이에 황푸강이나 쑤저우허라는 강이 있다면, 톈진에는 하이허(海河)라는 이름의 강이 있는데, 이 강을 중심으로 옛 조계지와 그 부대시설, 민가들이 모여있었다고 한다. 하이허는 중국 화북지방의 규모가 큰 강 중 한 곳인데, 하북, 산서, 산동, 내몽고, 요녕 등 다양한 성을 지날뿐더러 톈진의 중심을 마치 허리띠처럼 관통하는 강이다. 톈진이라는 도시의 발달이 이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강 주변에서 톈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이 구간을 톈진에서는 하이허펑징셴(海河风景线)이라고 부르며, 톈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강의 시작을 보기 위해 정한 지점은 위쪽 좌측 사진인 세기종광장(世纪钟广场). 역사가 깊은 장소는 아니지만, 2000년 1월 1일,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던 그때를 위해 준비했던 이 종은 실제로 당일 톈진 사람들에게 명량한 종소리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사실 이 종이 설치된 지점이 톈진에서는 좀 역사가 깊은데, 종 바로 앞에 위치한 해방교(解放桥)가 그것이다. 위쪽 우측 사진에 보이는 다리를 보면 된다. 전체적으로 모두 철강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조계지가 톈진에 만들어졌을 당시 톈진 기차역 광장과 조계지 구역을 잇는 다리였다고 한다. 그 외양이 상하이의 외백대교(外白渡桥)를 생각나게 하는데, 쓰임도 조계지 사람들의 통행을 위한 것이었으니 어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해방교에 올라 보이는 풍경이 위의 사진. 왼쪽, 가운데, 오른쪽 순으로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톈진 기차역이, 오른쪽에는 톈진의 진완대극장(津湾大剧院)의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뒤돌아 반대편 강가를 보면 보험관리국과 담배공사, 그리고 주변 풍경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마천루가 보인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하이허 중심광장공원(海河中心广场公园)을 지나면 꽤나 고풍스러운 다리를 하나 만나게 되는데, 멀리 이통빌딩(移通大厦)가 보이는 이곳은 베이안챠오(北安桥)다. 이곳 하이허에는 유럽 언젠가의 디자인을 한 다리가 꽤 많이 있는데, 이 다리도 그중 하나다. 베이안챠오는 본래 1937년에 이곳에 만들어진 다리라는데, 본래는 나무로 된 다리였고 이후 두 번에 걸쳐 개조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다리 위에는 서로 다른 전통 악기를 든 4명의 여인 동상이 서있다. 서양식의 디자인에 동양의 여인을 둔 것이 특이하다.



월계화가 예쁘게 피어 있는 강변을 뒤로하고 예쁜 다리를 한 번 건너 보기로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면 톈진에서 가봐야 할 장소 중 하나인 이탈리아 풍경구(意风区)가 나오기 때문이다. 강은 많이 구경했고 슬슬 저녁 먹을 곳도 찾을 겸 이국적인 풍경도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다리의 야경이 예쁘다고 하니 일단 이탈리아 풍경구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다시 다리 쪽으로 와보기로 했다.



톈진의 어머니 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 하이허 주변에는 공원, 대형 은행부터 조계지의 역사가 담겨있는 이국적인 지역, 멀티플렉스 등 다양한 볼거리가 모여 있다. 앞서 소개한 고문화거리(古文化街) 역시 이 강을 끼고 조성되어 있다. 하이허의 모든 볼거리를 다 보려면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 하긴 할 테지만, 팍팍한 일상에 치이며 사는 톈진 사람들에게 이곳이 힐링을 선사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위안을 주는 장소이기 때문에 어머니 강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5월 말이라는 시점에 낮에 구경하는 하이허는 분명 많이 더웠다. 땡볕이 내리쬐던 공원에서 강을 따라 하염없이 걷던 그날의 우리가 떠오른다. 밤에 오면 강바람도 시원하고 좋긴 할 텐데, 어째 여기는 그늘이 없냐고 불평하던 모습도. 그러나 여행객에게는 그럴지언정, 현지 사람들에게 하이허는 낮에도 톈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진정한 어머니 강(母亲河)이었다. 왜냐고?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거든. 강은 낮에도 그 시원한 물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었다. 반바지에 웃통은 벗고 수영모만 챙겨 쓰고 물에서 나오던 아저씨들을 연달아 만나면서 우리는 이것이 대륙, 그것도 북방의 클래스인가! 하고 감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낮의 하이허가 톈진 사람들을 안아주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비란 없었던 톈진의 뜨거운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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