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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pr 24. 2021

옛 마을이 주는 아름다움에 눈뜨다

허페이(合肥) 지역연구 2일차 (1)

처음 해보는 건 늘 긴장돼


허페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매우 낯선 이 도시에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커튼을 치고 바라본 바깥의 날씨는 화창.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날씨가 꼭 좋아야 한다. 왜냐하면 꽤나 특별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중국에서 첫 시외버스 타기!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볼 곳은 허페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옛 마을, 싼허구쩐(三河古镇, 삼하고진)이다.


숙소 창문을 통해 본 허페이 시내, 유리창의 먼지는 무시하세요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 유난히 긴장되는 이유는 중국에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기 때문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플이나 온라인으로 예매를 할 수 없고 직접 창구에서 목적지를 말하고 표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그 말투가 가지각색인 중국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차표를 사는 것은 나 같은 외국인에겐 늘 긴장되는 일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싼허구쩐으로 출발하기 위해 합비 남부 시외버스 터미널(合肥汽车客运南站)로 향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어느 도시나 역시 기차역보다는 환경이 별로다. 게다가 허페이의 시외버스 터미널이니 그 내부 환경은 어느 정도 예상할만하다. 빠른 속도로 매표창구로 다가간다. 전날 밤 매표창구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바이두를 맹렬하게 검색한 결과, 목적지의 이름은 싼허구쩐이 아니라 싼허(三河)라고 해야 표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한다. 매표창구 직원의 말이 꽤 빠르긴 했지만, 걱정한 것보다는 수월하게 표를 손에 넣었다. 보아하니 막차 시간 전에는 언제든 이 표를 근거로 차를 탈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떠나는 차를 타기 위해 표를 사자마자 검표 창구로 향했다.



싼허로 향하는 다른 손님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린 지 20분쯤 지났을까? 다음 타임의 버스가 온 듯 검표가 시작되었다. 5월 중순의 허페이는 이미 좀 더워져서 버스 안은 찜통이었지만, 새로운 곳에 간다는 기대로 여러모로 설레기 시작했다.



허페이 교외의 소박한 옛 마을, 싼허구쩐(三河古镇)


이제 와서 밝히지만 사실 허페이 시내에는 몇 개의 공원이나 박물관 빼고는 가볼만한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미 지역연구의 목적지가 된 이상 2박 3일의 일정을 알차게 채우기는 해야 하는 법! 그래서 교외에 있는 볼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이 싼허구쩐이다. 명, 청, 태평천국에 이르는 시대의 옛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옛 마을인데, 특히 안휘성 전통 건축양식인 휘파(徽派)의 건축양식이 잘 드러나는 건물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휘파의 건축양식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안휘성의 또 다른 유명한 옛 마을, 홍춘(宏村, 굉촌)이 있는데 이곳은 황산 근처라 허페이 시내에서 가기는 좀 멀다. 싼허구쩐은 홍춘보다는 유명세가 덜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덜 북적거리고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다.



싼허구쩐(三河古镇)이라는 이름에서 구쩐(古镇)은 옛 마을이라는 뜻인데, 싼허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 페이시현(肥西县)과 루쟝현(庐江县) 사이에 위치한 이 마을은, 3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라고 하여 명나라 때부터 싼허(三河, 삼하)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으로 치면 양수리(两水里) 같은 느낌일까? 본래 이곳은 오른쪽 지도에 보이는 저 큰 호수, 챠오후(巢湖)에 있던 작은 섬에 불과했는데 장기간의 걸친 퇴적 작용으로 육지가 되었고, 지금 볼 수 있는 마을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싼허구쩐은 5A급의 관광지다. 물론 이 등급이라는 것이 관광지의 문화적 가치만 가지고 매겨지는 것은 아니고, 전반적인 인프라나 시설 등에 대한 평가도 함께 포함되는 것이긴 하지만, 내세울만한 볼거리가 많지 않은 허페이라는 도시에 하나의 매력을 선사하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갔을 때만 해도 가기만 하면 구경하는 데 제한이 없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최근에는 사전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어플로 쉽게 예약이 가능하고 입장 자체는 무료이니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점을 빼면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지도에 싼허구쩐을 찍고 걷기 시작한다. 명색이 '옛 마을'이 있는 동네답게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모두 고풍스럽게 치장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처마가 특이하게 치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마터우챵(马头墙, 마두장)이라고 불리는 전통 건축 양식의 하나로 휘파(徽派, 안휘성 스타일) 건축 양식의 특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쭈욱 걷다 보니 어느덧 자동차 통행금지 표지판이 나온다. 얼마 되지 않아 누가 봐도 대문처럼 보이는 큰 문이 하나 등장하는데, 이 문 너머가 바로 싼허구쩐이다. 문을 기점으로 바닥도 아스팔트 바닥에서 돌바닥으로 바뀌고, 건물들의 모습도 조금 더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바뀐다. 이미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라 바닥의 돌이 햇빛의 뜨거움을 머금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게 된다.



길을 따라 자연스레 걷다 보니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를 만나는데, 그 이름하야 씨엔구로우(仙姑楼, 선고루). 입구의 처마가 한껏 치솟은 모습이 왠지 눈에 띄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민국 시대 중허상(中和祥)이라는 기업이 사재를 털어 만든 사당이라는 이곳은 마음을 다해 빌기만 하면 자식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걸려있는 수많은 리본들 중에 유난히 "조생귀자(早生贵子, 빨리 아이를 갖게 해 달라)"라는 말이 적힌 리본이 많다.



씨엔구로우를 나와 조금 걷자 어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침부터 부산스레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생각지 못했는데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부랴부랴 근처에 맛집이 있는지 검색해보는데,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래도 따중뎬핑으로 평점 높은 곳을 간다면 실패하진 않겠다는 생각에 찾은 식당이 이곳 '향향미식부(香乡美食府)'. 아무래도 안휘성의 옛 마을에 왔으니 이곳 특색의 음식을 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곳이다. (사실 지역 음식을 파는 집 말고는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함정)


아마도 그림이나 사진이 없는 메뉴판이 있던 식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따중뎬핑 어플의 도움으로 추천요리 위주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주로 쌀이나 찹쌀로 만든 요리가 특색인지 쌀가루 갈비(米粉排骨), 누룽지(锅巴) 등에 추천 표시가 많이 붙어있었다. 일단 추천을 받고 있는 갈비 요리와 농가 특색 누룽지(农家特色锅巴), 그리고 혹시 이 메뉴들이 실패할까 무서워 시키기로 한 항상 안전한 메뉴 후이구어러우(回锅肉), 시키고 보니 너무 고기만 시켰다 싶어 양심에 찔려 추가한 야채볶음 싼허샤오차오(三河小炒), 마지막으로 지역 특산물 중 하나인 쌀술(米酒)까지 주문 완료.


결론적으로는, 후이구어러우를 시킨 것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곳 싼허의 음식이 우리들의 입맛엔 그다지 맞지 않았던 탓이다. 전날 먹었던 처우꾸이위(臭鳜鱼)처럼, 한 번 정도 먹어본 것으로 족할, 그런 맛이었다. 다만 막걸리와 유사한 쌀술 미지우(米酒)는 괜찮았는데, 막걸리보다는 좀 알코올의 비중이 높은지, 아니면 낮술이라 그런 것인지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약간 취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중국 요리에 곁들여 마시는 술이라 좀 더 도수가 높은 것일지도.



식당에서 나름대로 현지 느낌 물씬 나는 농가 요리(农家菜)를 경험하고 나서, 다시 구쩐 구경에 나서 보는데, 간판 중에 유난히 쌀 미(米) 자가 많이 보인다. 이곳이 쌀의 교역을 많이 해서 그랬던 것인지, 쌀로 된 음식들이나 음료, 간식거리 중 유명한 것이 많은데, 점심때 먹은 미지우(米酒)가 그렇고, 지금 눈앞에 보는 미쟈오(米饺)가 또 그렇다. 싼허구쩐에 가면 꼭 미쟈오를 먹어보라는 말이 있어 간판이 눈에 띈 김에 먹어보려고 주문을 했다. 중국 특유의 왠지 안전해 보이지 않는 비닐봉지에 방금 튀겨 뜨거운 미쟈오를 담아주는데, 환경호르몬을 생각하면 먹으면 안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쌀 만두라는 뜻을 가진 미쟈오는 쌀가루를 섞어 만든 피에 소를 넣어 튀긴 만두다. 옛날 태평천국 군대가 싼허에 머물렀을 때, 지역 주민이 군인들에게 만들어주었는데 그 맛이 뛰어나 큰 사랑을 받았다는 음식인데, 싼허구쩐 안에 수많은 가게에서 이 미쟈오와 감주(식혜)를 팔고 있었다. 그 맛은... 음, 떡볶이 찍어먹고 싶은 맛? 야끼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 나의 맛 표현력이란. 다만 갓 튀긴 건 절대 꼭 꼭 식혀서 드시기 바란다. 너무 뜨거워서 입 다 델 가능성 농후.



이제 대충 구쩐에서 할만한 먹거리 관련 경험은 끝난 것 같고, 거리를 좀 걸어본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싼허구쩐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모두 휘파 건축물의 특징인 마터우챵(马头墙, 마두장)을 가지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터우챵은 처마가 까치의 꼬리처럼 치솟아 있는 것이 특징인데,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의 사이사이를 구분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옛날 마을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그 화재의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는 역할도 해줬다고 한다. 지금이야 화재를 막을 수 있는 현대적인 방법이 많이 마련되어 있어 그 기능상의 의의는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 특별한 모양이 싼허구쩐에 다른 강남 수향 마을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주가각(周家角)의 건물들 참조)



강남 수향 마을들과 생김새는 달라도 이곳도 나름 이름에 강 하(河)가 들어가는 물의 마을인지라, 물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마을을 흐르는 강들과 그 주변에 자라난 우거진 나무들이 싼허에 푸르른 녹음과 시원함을 선사한다. 푸른 하늘과 그 위를 수놓은 흰 구름, 하늘로 뻗은 마터우챵과 흰 벽의 건축물들, 그리고 강 위를 떠내려가는 배. 이보다 완벽한 풍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싼허구쩐에 있는 건축물들은 흰색, 회색, 검은색, 갈색 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주변 풍경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싼허구쩐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망월각(望月阁)과 그 주변에 있는 아치형 다리들을 만날 수 있다. 총 7층으로 이루어진 망월각은 아마 밤 풍경이 더 아름다울 듯싶었는데,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하여 들어가 보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맞은편에 있던 화려한 다리에 눈이 더 갔는데, 아마 후에 유지보수를 하면서 정자 같은 모양을 더 첨가했을 것 같긴 하지만, 망월각과 함께 구쩐에 고풍스러운 모습을 더해주고 있었다.



싼허구쩐에는 유명인 몇 명의 옛 주거지가 남아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중국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쩐닝(杨振宁)의 옛 집에 가보기로 했다.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냈던 양쩐닝의 유일한 중국 거처였고, 그것이 이 작고 작은 허페이의 싼허이니, 싼허 사람들이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사실 문송한 나는 이분의 존재를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 비록 미국에서 상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싼허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값은 어학당 학생증이 인정되어 반값인 15위안.


전시실에는 양쩐닝이라는 분의 생애와 그간의 업적 등을 정리해두었고, 그의 이론과 관련된 과학적인 체험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 깊은 내용은 잘 알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오면 공부가 될만한 점들이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중간중간 지붕 위에 보이는 작은 장식물이었는데, 별 모양, 풀잎 모양 등 공간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수놓아진 것이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는 천상 문과인가 보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싼허구쩐 우체국(三河古镇邮局)이 나온다. 진짜 우체국은 아니고, 싼허구쩐의 모습을 담은 엽서를 팔고 직접 이곳에서 내용을 적어서 우체통에 넣고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부쳐주는 곳인데, 역시나 젊은 여성들이 가게 안에 가득했다. 밖에 나와 보니 동상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갑자기 부채를 꺼내더니 스윽 편다. 사람이었다. 더운지 도통 그늘 밖으로 나오질 않는데, 그의 사진을 찍는 것은 무료지만 그와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이후 청두(成都)의 콴자이샹즈(宽窄巷子)에서도 동일한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그때는 콤비였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관광지마다 있는 행위예술가인 모양이다.



싼허구쩐에 유명한 물건은 무엇이 있냐고 하면 첫째는 깃털 부채요(제갈량이 들고 다니던 그것?!), 둘째는 소 뿔로 만든 빗(牛角梳)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 상호들 중에 먹거리를 파는 곳은 쌀이 쓰여있는 곳이 많은 반면, 소품을 파는 곳은 빗이 쓰여있거나 털이 쓰여있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이 있는데, 바로 아래 사진. 소 뿔 빗을 파는 곳이었는데, 바닥에 산더미 같이 소뿔이 쌓여있었다. 빗을 실제로 구매하진 않아서 정말 이 뼈를 갈아서 빗을 만드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혹시 관광객을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놓아둔 것은 아닌지, 약간의 의심이. 하지만 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머릿결에 좋다고 한다, 저 빗이.



빗 가게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얼롱지에(二龙街, 이룡가)라는 길이 나온다. 보통 길 이름에 용이라는 글자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아 그 사연이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송 태조 조광윤과 그다음을 이은 송 태종 조광의(후에 피휘로 조경으로 개명)가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을 다닐 때 이곳에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이들이 차례차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여 2마리의 용이 다녀간 길이라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고. 생각보다 싼허라는 곳, 옛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곳이었던 듯하다.



슬슬 마을 구경을 끝내고 돌아가 볼까 하던 찰나, 내 눈에 들어온 무언가. 바로 마터우챵 아래의 흰 벽 구석구석마다 그려진 작은 그림들. 난초의 그림도 있고 산수화도 있고, 채색까지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안휘성 건축 양식의 특징인지, 아니면 그저 흰 벽이 아까워 그림으로라도 치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비슷한 느낌의 그림을 나는 약 2달 후 윈난(云南)에서 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작은 곳에서까지도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옛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는 아니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옛 마을이 주는 아름다움에 눈뜨다


먹어봐야 한다는 것들도 모두 먹어봤고, 구쩐 한 바퀴를 모두 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때가 되니 역시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긴장감을 뚫고 시외버스를 타고 나와서까지 오게 된 곳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구경하는 내내 더워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도,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올 때만큼 찜통 같은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나기가 어쩐지 아쉽다.


생각해보면 기묘하다. 음식이 특별히 맛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느 곳들처럼 볼거리가 빠방하게 많았던 것도 아니고, 풍경이 기똥차게 멋졌던 것도 아닌데, 나는 이곳이 참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여기를 다녀간 후 나는 지역연구를 갈 때마다 주변 어디에 옛 마을이나 옛 성이 있는지 항상 찾아보고 갈만한 곳이 있으면 꼭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다녀온 곳이 샨시(山西, 산서)의 핑야오(平遥, 평요)였고, 꾸이저우(贵州, 귀주)의 칭옌구쩐(青岩古镇, 청암고진)이었고, 샤오싱(绍兴, 소흥)의 안창구쩐(安昌古镇, 안창고진)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만큼 이곳이 좋았을까? 좋았던 것에 굳이 이유를 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이유를 꼽아보자면 아마 그전에 갔던 소위 수향 마을들이 다 좀 실망스러웠기에 기대치가 많이 낮아져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치바오주가각 글 참조) 내심 여기도 이전에 갔던 그곳들과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과 분위기에 압도당했을지도.


또 나를 사로잡았던 점은 그 소박함과 아기자기함이었다. 건물마다 보이는 마터우챵과 그 사이사이 그려진 작은 삽화들, 또 지붕마다 작게 장식되어 있던 소박한 액세서리들. 흰 벽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니 정갈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길이 넓었고, 주말이었어도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소위 상업화가 덜 되어 있었다. 관광지 음식의 코를 찌르는 냄새도 없었고, 호객꾼들의 시끄럽고 과장된 호객 행위도 없었다. 아, 사실은 이런 것이 옛 마을이 주는 느낌이구나! 이런 매력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도 나는 누군가 허페이에 대해 물으면 싼허를 꼭 이야기한다. 허페이가 볼품없다고 여기기 전에 이곳을 꼭 가보라고. 안휘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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