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페이(合肥) 지역연구 2일차 (2)
싼허구쩐(三河古镇)의 여운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시내의 소요진공원(逍遥津公园). 조조와 손권, 위나라와 오나라의 삼국판 17:1 전투라 불리는 합비 전투가 벌어졌던 곳인 소요진(逍遥津)이라는 곳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손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다리라든가, 조조가 활쏘기를 가르쳤던 곳이라든가, 당시 조조 휘하의 장수 장료의 의관총이라든가 하는 유적들이 남아있다.
입구에 청 광서제 때의 장원 루룬샹(陆润庠) 친필의 고소요진(故逍遥津)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이 공원은 사실 합비 전투 때에는 그저 나루터였고, 이후에는 돈 많은 사람들의 사유지였다가 신중국 성립 이후에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2007년부터는 무료 개방을 하고 있는데, 찾아보니 현재는 내부 공사 등으로 폐쇄된 상태라고 한다. 어째 코로나 발생을 기점으로 이런 공원들이 많이 폐쇄된 느낌이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니 누가 삼국지 관련 지역 아니랄까 봐 장료 동상이 서있다. 이곳에는 장료의 의관총인 장료묘 외에도 장료 전시관, 삼국 역사문화관 등도 함께 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던 시간에는 이미 전시관이 문을 닫아 보진 못했지만. 하지만 사실 이 공원의 진짜배기는 공원 면적의 40%를 차지한다는 호수 소요호(逍遥湖)다. 날이 맑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호수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더욱 예쁘게 보인다.
공원을 찾은 것이 딱 토요일 늦은 오후 즈음이라 공원에는 주말의 선선한 날씨를 즐기려는 허페이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원마다 있다는 그 각(角)들! 소요진공원에서 내가 마주친 서클은 아주머니들의 노래방 서클. 노래방 기기를 하나 설치해두고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고 계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중국에 있다 보면 그들의 그 자신감에 놀랄 때가 많다.
아쉽게도 장료의 흔적은 만나질 못했지만, 주말을 즐기는 허페이 시민과 하나 되어 시외버스의 찜통더위를 날릴 수 있었다. 적당히 돌아다니다 저녁때쯤이 되어 다음 장소로 이동해본다. 다음 장소는 허페이에 왔다면 꼭 들려봐야 한다는 곳, 롱샤거리다.
허페이의 닝궈루(宁国路)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윤계상이 연기한 장첸이 먹어 화제가 된 롱샤로 유명한 맛집거리다. 허페이에 오면 닝궈루는 꼭 가봐야 하고, 닝궈루에 왔으면 롱샤는 꼭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한 이 닝궈루에서 연결된 길 중 레이지에(罍街)라는 길 또한 각종 먹거리와 맛있는 샤오롱샤로 유명하다. 나 역시 허페이로 출장을 올 때마다 이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샤오롱샤를 먹으러 레이지에에 많이 갔고, 몇 군데 맛있는 샤오롱샤 집을 찾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오늘 가게된 집은 레이지에가 아닌 닝궈루에 있는 집, '라오셰롱샤(老谢龙虾)'다.
닝궈루 롱샤 미식가(宁国路龙虾美食街)라는 간판을 오른편에 두고 왼쪽을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이 라오셰롱샤(老谢龙虾)는 허페이에 처음으로 생긴 샤오롱샤 전문점이라고 한다. 레이지에에도 그 지점이 있는데, 이곳 닝궈루 지점은 좀 덜 붐비고 여유로웠던 기억이 있다.
입구에 이렇게 조리되고 있는 샤오롱샤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압도된다. 여기서 한 번 쪄진(?) 샤오롱샤들은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양념이 되어 식탁으로 올라온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마라맛, 매운맛, 마늘맛, 순한맛 등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날은 난징 지역연구 때처럼 스페셜 게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이 친구 역시 허페이에서 나고 자란 허페이 출신 친구로 이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동료다. 허페이 지역연구 일정을 짤 때도 이 친구의 조언을 많이 받았고, 고마운 마음에 저녁 한 끼 하기로 한 것이다. 식당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 덕에 한국인들끼리 갔다면 시키지 않았을 현지 음식들을 많이 시킬 수 있었다. 처우꾸이위(臭鳜鱼)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말리긴 했지만.
허페이에 왔으니 꼭 마셔야 하는 안휘성의 술 구징꽁지우(古井贡酒)와 함께 한 롱샤 먹방은 아쉽게도 위에 있는 몇 장 외에는 사진이 많이 없다. 그 이유는 사실, 샤오롱샤를 먹을 땐 앞치마와 비닐장갑 등이 필수인데, 비닐장갑을 들고 샤오롱샤를 까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손에도 기름기와 양념이 묻고, 그걸 일일이 닦아가며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는 것인데 샤오롱샤는 참 들이는 공에 비해 그 소득이 적다고 할까? 보람이 적은 음식 중 하나다. 열심히 까고 나서 나오는 살코기가 정말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되질 않으니 그 공을 들인 보람이 없다. 게다가 사실 양념을 어떤 맛으로 시키든 양념은 껍데기에 묻어 있으니 살코기는 결국 다시 또 양념을 찍어야 한다는 웃픈 현실.
이렇게 먹는 데 집중하는 손님에게는 샤오롱샤가 재미없는 먹거리일 수 있겠지만, 참을성 많은 중국인들은 샤오롱샤를 참 천천히, 알차게 먹는다. 까고 까고 또 까다 보면 질려서 배가 부르는 우리와는 달리, 다른 테이블에 있던 중국인들은 수다를 떨면서 하나씩 하나씩 샤오롱샤를 까고, 그렇게 깐 샤오롱샤 껍데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왠지 더 열심히 치열하게 먹지 않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
맛있게 롱샤로 배를 채우고 나오니 벌써 해가 졌다. 소화도 시킬 겸 향한 곳은 닝궈루에서 조금 걸으면 도착하는 레이지에. 닝궈루와 함께 각종 먹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거리로 알려진 곳이다. 거리 이름에 있는 한자 뇌(罍)는 중국어로 '레이'라고 발음하며, 고대 중국에서 술을 담았던 용기로 알려져 있다. 안휘 사람들이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술 마시는 것을 '쟈레이즈(炸罍子)'라고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썰이 있다. 아마도 안휘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는 행위가 일종의 여가 행위라서 이 거리에 이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에 그 글자가 있어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각종 디자인의 '레이'가 놓여있다.
레이지에에는 샤오롱샤나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도 있지만 다소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건물들도 있고, 또 괜찮은 펍이나 바도 있다. 허페이 사람들이 어디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지 묻는다면 아마 이곳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늘한 밤공기와 함께 허페이 사람들과 토요일 밤의 여유를 공유했다. 상해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 접해서 그런지 허페이의 저녁 시간은 유난히 여유롭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레이지에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잡은 택시기사가 우리의 동의 없이 다른 손님을 합승시켰던 일이 있었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 또한 타지에서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로 넘기는 걸로.
[허페이 2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허페이 2일차! 싼허고진 - 소요진공원 - 레이지에로의 일정이 모두 잘 끝났다. 싼허고진에 가면서 처음으로 중국의 시외버스를 타봤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사람도 별로 없었고, 후이파이(徽派) 고진은 그것만의 매력이 있었다. 상하이의 옛 마을과는 확실히 달랐다. 소요진 공원은 비록 예전 합비전투의 흔적은 없지만, 허페이 사람들의 주말 분위기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샤오롱샤와 현지 요리들 모두 맛있었고.. 허페이의 생활 리듬은 상하이의 그것만큼 빠르지 않은 것 같다. 내일의 최종회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