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페이(合肥) 지역연구 마지막 날
셋째 날, 허페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오후 4시쯤 고속철을 타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호텔에서 짐을 다 챙겨 서둘러 체크아웃을 했다. 셋째 날 오전 일정으로 잡은 곳은 한국에는 포청천으로 훨씬 유명한 북송 시대 청렴한 관료의 대명사, 포증(包拯)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정원, 포공원(包公园). 포-공원이 아니라 포공-원이다. 포공을 기리는 정원.
5월의 허페이는 4월 난징보다 더 더워서 짐을 들고 어떻게 또 일정을 소화해야 하나 걱정이 컸다. 난징에서는 운 좋게 총통부(总统府)에서 짐 보관소를 만날 수 있어서 가벼운 몸으로 구경할 수 있었지만, 포공원 안에는 공식적인 짐 보관소가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을 보관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편하게 구경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바이두를 열심히 뒤져보니 사설 짐 보관소(?)가 있다고 나왔다. 포공사 입구 앞에 있는 노점상 같은 곳이었는데, 일정 금액을 내면 짐을 보관해준다고 했다. 그 금액은 짐 개수에 따라 달라졌는데, 보관시간도 아니고 개수라니 좀 이상한 셈법이다 싶었지만 그 규모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래도 작은 노점상인지라 공간을 얼마나 차지하는지가 그 시간보다 중요했던 모양이다.
짐을 맡기고 우리는 우선 포공사(包公祠)부터 가보기로 했다. 이곳 포공원은 북송 가우 7년(1063년)에 지어졌는데, 전체가 강을 낀 원림(园林)의 형태로, 포공사(包公祠), 포공묘(包公墓), 청풍각(清风阁), 부장(浮庄)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처음엔 그저 포증의 사위가 장인어른의 유골을 고향에 묻어드리려고 시작한 이곳의 조성은 고향 사람들의 관심으로 꽤나 큰 공정이 되었다. 포증의 인생 속에 담긴 청렴하고 공정했던 철학을 사랑한 사람들 덕분이다.
포증을 기리는 사당인 포공사(包公祠)에 들어가면 철면무사(铁面无私)라고 적힌 편액이 하나 나오는데, 이 말이 포증의 인생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로 풀이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절대 사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 정도가 되겠는데, 포증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는 데서 온 평가다.
또한 바로 이곳에 '개작두를 대령하라' 짤로 유명한 바로 그 개작두가 있다. 사실 포청천 드라마를 유심히 본 적은 없어서 이 개작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작두는 종류가 3가지가 있었다. 용작두, 범작두, 개작두가 그것인데, 각각 처벌하는 대상이 다르다. 용작두는 황제의 친인척 중 나쁜 사람을 벌하는 작두이고, 범작두는 귀족의 친인척 중 나쁜 사람, 개작두는 서민 중 나쁜 사람을 벌하는 용도였다고 한다. 계급에 따라 작두를 나눠 쓰기는 하지만 모두 벌했다는 점이 중요하겠지.
포공원 주변에는 빠오허(包河)라고 불리는 강이 흐르는데, 강물에 떠있는 연잎과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그 이름은 아마도 포증의 성씨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걷다 보니 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다. 포증의 이야기를 돌로 만든 것 같은 작품인데, 얼굴 부분만 까맣게 변색이 되어 있다. 중국에는 관광지에 뭔갈 만지면 복이 들어온다는 썰(?)이 많은데, 예를 들어 미륵불의 배를 만지면 금전운이 좋아진다거나 발가락을 만지면 아이를 점지해준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아마 이곳의 포증 얼굴도 길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만져서 변색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소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곳에는 포증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밀랍인형관도 있다. 위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검은 얼굴의 남자가 포증이고, 이 스토리는 황제의 친인척을 벌하는 스토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개 관료가 저래도 진짜 살아남는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다소 무모한(?) 스토리였는데, 그만큼 포증이 간이 큰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강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청풍각(清风阁)이 등장한다. 청풍각은 사실 원래부터 있었던 누각은 아니고, 1999년에 포증 탄생 1000주년을 기념하여 허페이 시정부에서 만든 곳이다. 청풍각 안에는 송나라 스타일을 모방하여 만든 탑이 있는데, 탑에는 층마다 포증과 관련된 일화들이나 전시가 있고 위로 올라가면 허페이 시내를 조망할 후 있다. 탄생 1000주년을 기념하여 이런 건물을 조성해 줄 정도이니, 허페이에게, 또 중국에게 이 포증이란 사람의 이용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만하다.
이 청풍각의 몇 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시진핑 관련 내용들이 있고 관료들 모두 포증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장면 등이 있었다. 사실 포공원은 중국 관료들에게 청렴 정치 학습 기지로서 작용한다. 중국에서 부패정치 타도를 주제로 한 <인민적명의(人民的名义)>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화제가 되었을 때 중국의 많은 고위급 관료들이 차례차례 포공원을 찾은 일이 있는데, 이곳은 그 정도로 약간 체제적인 의의가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포증이 생전에 그것을 바랐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청풍각을 나와 또 조금 걸으면 포증과 그의 아내, 그 자손들이 묻혀있는 포공묘(包公墓)가 나온다. 묘지이니 별다르게 볼 것은 없겠다 싶었는데 재밌는 안내판을 찾았다. '샤오신띠화(小心地滑,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적힌 안내판에 한국어 번역이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미끄러'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 그려진 그림도 찰떡이라 정말 조심스럽게 미끄러져야 하는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번역기를 돌린 듯한데, 누군가 올바른 표현을 알려주면 좋겠네. 지금도 저 문구 그대로일까?
포공묘를 지나면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 부장(浮庄)이 보인다. 강물에 떠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그 이름을 갖게 된 부장은 막상 들어가 보면 길을 따라 조성된 정원과 벽, 창틀마저 강남지방의 정원 모습 그 자체로, 예쁘게 꾸며진 정원과 이곳에서 직접 가꾸는 것 같은 분재들이 있었다.
부장을 끝으로 개작두와 만났던 포공원 관람이 끝났다. 고위 관료에게야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손 치더라도 사실 일반 사람들에겐 그냥 큰 공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개작두 말고는 포청천에 대한 큰 인상이 없었던 내게도 사실 포공원에 대한 생각은 허페이 시민들의 그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드라마를 흥미롭게 봤던 분들이라면 나름의 소득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포공원 관람이 끝나니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허페이의 또 하나의 번화가라는 화이허루 보행가(淮河路步行街)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안휘성 요리를 전문으로 한다고 해서 식당을 골랐는데, 막상 가보니 약간 퓨전 요리를 하는 곳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하게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지금 그때 먹은 요리들을 다시 살펴보니 마파두부, 새우, 가지, 고기, 파인애플 밥 등 안휘성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네. 아무래도 처우꾸이위(臭鳜鱼)의 인상이 아주 깊게 남았던 모양이다.
밥을 다 먹고 기차를 타고 상해로 돌아가기 위해 허페이 역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날 허페이는 어제의 맑았던 날씨가 무색하게 약간 흐려지는 중이었다. 마침 역사에 간단한 음료를 파는 곳이 있어 들렀는데 황산에서 나는 마오펑(毛峰) 찻잎으로 만든 밀크티가 있다고 해서 시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허페이에 있는 거래선을 맡았을 때, 거래선 구매 담당자가 고향에서 직접 딴 찻잎이라며 이 마오펑 찻잎을 선물로 줬던 기억이 난다. 차 맛도 좋았지만 차를 마실 때마다 직접 딴 거니까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받아달라던 고객의 표정이 떠올라 고마움 반, 도리어 부담 반이었던 것 같다.
지역연구로 오기 전 허페이라는 도시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것은 이 글의 1편에서도 서술되어있다. 출장으로 온 곳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나처럼 늘 을(乙)의 입장에서 와야 하는 사람이라면? 다만 막상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처지가 되니 기차역에 있는 찻잎 그림을 봐도 이곳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따뜻함을 새삼 떠올리는 것이다. 당시에는 감사할 여유도 없었으면서. 이것이 지역연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 일종의 기억 세탁?
유난히 허페이 여정에 대한 글을 마치기가 힘이 들었다. 그만큼 이 도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복잡해서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나는 너무나도 멋진 옛 마을을 만났고, 꿈을 안고 달리는 청년을 마주쳤으며, 그 유명한 개작두를 마주쳤다. 삐까뻔적하고 유명한 도시에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박하고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도시에도 사랑할만한 구석(可爱之处)이 있다. 허페이는 내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허페이 2일 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허페이 여행, 끝! 오늘은 포공원(包公园)을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포공을 포청천이라고 부른다.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원래 개작두라는 건 악랄한 백성을 처벌하는 데 썼던 거란다. 작두에도 신분의 구분이 있었다니.... 몇 년 전 중국에서 <인민적명의(人民的名义)>라는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를 끌었는데, 많은 중국의 고위급 관료들이 이후 포공원을 다녀갔다고 한다. 현대 중국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충효/청렴/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공원에 한 표지판에 "미끄러짐 주의(小心地滑)"라고 적혀 있었는데, 한국어로 "조심스럽게 미끄러"라고 번역해둔 걸 봤다. 너무 웃긴다 ㅋㅋ 상해가서 숙제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