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 둘째날 (1)
가열차게 돌아다닌 연휴 첫날을 뒤로하고, 둘째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 너무 무리해서 돌아다녔으니 둘째날 일정은 푹 자고 브런치부터 시작하기로 결정! 함께 상해 나들이를 하기로 한 지전가 동료의 폭풍 검색으로 쟝쑤루(江苏路) 근처 괜찮아 보이는 브런치 집을 발견하여 가보기로 했다. 이 카페, 이름이 마음에 든다. 저우션(走神). 한국어로 하면 '멍 때리는' 카페. 영어 이름은 'Head in the clouds'. 이 이름도 괜찮네. 2호선 쟝쑤루 역에서 내려 좀 걸어야 찾을 수 있다. 어렴풋한 기억에 찾기가 좀 어려워서 많이 헤맸던 것 같다.
에그 베네딕트나 아보카도 샐러드, 요거트 같은 다소 탈중국 한 메뉴가 맛있다고 해서 시켜봤는데, 맛은 괜찮았다. 다만 연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았고, 카페 이름처럼 멍 때리기에 그다지 적합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평일 오전에 오면 브런치 즐기면서 멍 때리기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따중뎬핑에서 직접 자리 예약도 할 수 있는 듯하니, 차라리 예약을 하고 오기를 추천한다.
아아, 어쩌면 노동절 연휴 둘째날의 계획은 이 카페에 들어찬 많은 사람들을 보고 수정을 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곳의 인파가 그저 이곳이 인터넷에서 유명한 그야말로 왕홍(网红) 음식점이라 그런 것이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큰 착각이었고, 이 인파는 오히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리고 치바오(七宝)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타게 되는데....
치바오 라오지에(七宝老街). 상해 민항구에 있는 옛 마을로 그 모습은 수향(水乡)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 (수향에 대해서는 예전 매거진 글 참고) 후한 때 형성된 마을로 명청대에 이르러 번화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이 대체로 명청대부터 남아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위치적으로 홍챠오 공항에서 가까운 편이고 상해 도심에서도 지하철로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라 수향은 가보고 싶은데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까지 갈 시간이 없는 경우 주가각과 함께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다. 왕복 시간으로 하면야 주가각의 반절 정도밖에 안 되니, 오히려 위치적으로는 더 좋을지도.
치바오에 가게 된 계기는 사실 단순했다. 노동절 연휴에 상해를 떠나고 싶지는 않은데, 막상 상해에서 좀 교외에 있는 곳에 가보려고 하니 찾게 된 곳이 이곳. 무엇보다 상해 지하철 9호선 치바오(七宝) 역에 내리면 바로라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에 탑승한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과자와 과일 등 간식거리를 잔뜩 들고 지하철에 타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상하게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 이들 모두 치바오에 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비록 지하철로 갈 수 있다 하더라도 앉아서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치바오 라오지에의 대문에 도착.
입구를 지나 조금 걸으니 정말 중국의 어느 곳이나 다 들어와 있다는 스타벅스 발견. 옛 마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스타벅스도 기와집의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예원에 있는 그것과 비교하면 좀 촌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니 갑자기 분위기가 홍대 주차장 거리. 사람이 너무 많다! 왠지 오늘 사람 구경만 하고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
그냥 걸을 때는 사실 잘 몰랐는데, 막상 그 위치까지 가보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있었는지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수향 마을을 둘러볼 때 대체로 사람이 몰려있는 곳은 강과 강 사이, 다리 위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딱 '수 향' 두 글자가 느껴지는 풍경을 찍을 수 있기 때문. 바로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 방금 눈앞에 사람 머리가 잔뜩 보였던 것도 결국은 다들 다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 왼쪽 사진만 봐도, 자세히 보면 앞쪽에 있는 다른 다리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을 볼 수 있다.
본격 치바오 라오지에를 구경하려고 하니, 음, 정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길이 너무 좁아서 구경을 좀 해보려고 해도 인파에 밀려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좁은 길에서 또 초두부(臭豆腐) 냄새는 어찌나 나는지, 머리가 다 아파올 지경이다. 이쯤 되면 약간 다운그레이드 된 톈즈팡(田子坊)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청명절에 톈즈팡 갔다가 패퇴한 기억이 떠오른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그때도 연휴였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나가다 보니 큰 나무에 빨간 끈이 잔뜩 매달려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중국어로는 치푸따이(祈福带, 복을 기원하는 끈)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치바오 라오지에에 치바오쟈오쓰(七宝教寺)라는 옛 사찰이 있어 거기서 사온 리본을 큰 나무에 달아둔 것 같다. 옛 사찰이 위치한 곳에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소원도 학업, 재물, 연애, 자녀, 그리고 액운 방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재미있는 건 대체로 다 8글자 길이의 리본인데, 어떤 경우 16글자 길이의 리본도 있다.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쓰여 있는 그 리본은 아마도 8글자보다는 비쌀 것이다. 결국 내가 얼마나 이 소원을 위해 돈을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구복을 할 자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 맞냐고요....
아, 안 되겠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기로 한다. 퇴로는 라오지에의 변두리로 해서 바깥 길로 나오는 것. 아무래도 라오지에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다 보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일반 사람들의 삶이 더 잘 보인다. 초두부 냄새도 살짝 없앨 겸, 발길을 옮겨본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치바오의 사람들. 자전거 따르릉 소리. 아- 살 것 같다.
치바오 외곽길을 따라 걷다 보니 치바오 천주교당(七宝天主堂)을 발견했다.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은 십자가와 이국적인 건축물. 종교는 없지만 이런 곳에서는 어쩐지 엄숙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1866년에 세워졌다는 이 천주교당은 1949년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해 퇴각할 때 훼손되었다가 82년에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입구에 있는 분리수거 관련 빨간 표어와 천주교당 옆에 놓인 중국 국기가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기 전엔 몰랐는데 걷다 보니 또 재밌는 발견을 하나 했다. 치바오에는 교통대의 또 다른 캠퍼스, 치바오 캠퍼스가 있다! 본래 상해 농학원(上海农学院)이었다는 이 캠퍼스는 교통대에 편입되면서 지금은 기술 단과대학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이 온 친구도 교통대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지라 학교 간판을 보고 둘 다 깜짝 놀랐다.
이제 외곽으로 좀 돌았으니 다시 치바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여전히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라오지에을 구경할 각오는 아직 안 된 것 같고, 인파를 조금 피해 절 구경을 하러 가보기로 한다. 치바오쟈오쓰(七宝教寺)로.
치바오쟈오쓰(七宝教寺). 본래 송쟝 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우송쟝(吴淞江) 강물이 하도 범람해서 3번이나 그 위치를 옮기면서 현재 위치인 치바오까지 왔다고 한다. 현재 치바오라고 불리는 이곳도 사실 이름이 없었는데, 이 절이 들어오면서 치바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하니 사실은 마을보다 이 절이 훨씬 유명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치바오가 태평천국 군과 청나라 군대, 서양 군대의 격전지가 되면서 절은 그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심지어 중학교가 들어서기까지 했다. 이후 2002년이 되어서야 홍콩의 한 건축가에 의해 복원되었고, 지금 볼 수 있는 건물은 다 그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절이 전체적으로 좀 급조된 것 같은 색감을 가지고 있다.
치바오쟈오쓰의 탑을 보러 가는 길에, 붕어 밥 주기 체험을 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아무 먹이나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연못 옆에 아예 금붕어 먹이를 파는 가판대도 있었다. 물고기가 중국인들에게 어떤 상징이 있는지는 이전에 한 번 설명했었지만, 이렇게 절에서 대놓고 물고기 먹이를 팔면서 먹이주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니, 좀 독특하다. 이것도 영리 모델의 일종일까? 어쨌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붕어 연못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7층짜리 탑이 하나 나온다. 이름하야 치바오탑(七宝塔). 치바오에 있는 탑이라 7층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층마다 모시는 보살이 다 다르다고 한다. 사실 이 탑의 원래 이름은 더 멋진데, 바로 칠보유리영롱탑(七宝琉璃玲珑塔)이다. 왜 이런 영롱한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탑 근처에 어떤 불상이 하나 서 있는데, 여기는 또 기가 막히다. 시주함에 QR코드가 붙어있고, 디지털 시주를 하시라고 장려하고 있다. 이 기막힌 광경은 사실 이후에 곳곳을 돌아다니며 늘 만나게 되었는데, 편리하긴 하지만 글쎄.. 난 아직 아날로그가 좋다.
절 관람이 끝나고 이제 다시 치바오 라오지에로 가야 한다. 인파가 좀 줄었을 거라 생각한 나의 생각은 완벽한 오산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치바오를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좁은 길에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면서 숨도 막혀가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날씨도 덥다. 공황장애라는 게 이런 것일까?
그때 사람들마다 손에 빨간색 주스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왕홍 음료라고 판매하고 있는 양메이(杨梅, 산딸기와 유사한 과일) 주스. 더운 날씨에 숨도 막혀오고 목도 마르고, 뭘 사 먹자니 편의점 같은 것도 안 보이고 해서 발길은 마치 좀비가 된 것처럼 양메이 주스를 파는 가판대로 향하고 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런 것일까? 양메이 주스는 정말 완벽하게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나중에 들으니 양메이 자체가 갈증 해소와 더위 극복에 도움이 되는 과일이라고 한다.
양메이로 목을 좀 축이고 향한 곳은 상해 현지 피영희(皮影戏, 그림자극)와 관련된 박물관인 치바오 피잉예술관(七宝皮影艺术馆). 피영희라 함은 동물의 가죽이나 종이로 만든 인형으로 그림자극을 하는 것인데, 중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전통 예술 장르 중 하나다. 영화 <인생(活着)>에 보면 주인공 푸구이가 이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면적이 워낙 넓은 만큼, 피영희의 양식이나 특징도 지역마다 다른데, 크게는 북방과 남방으로 구분한다. 남방 중에서도 치바오의 피영희는 상해 지역 그림자극의 발원지로 이곳 치바오에서는 그 발원지로서의 가치를 담아서 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치바오 그림자극은 이미 7대까지 전수된 공연예술이다. 아무래도 현대로 들어오면서 그 전통적인 가치가 좀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박물관을 통해 후세에도 그 예술을 알리고 있다. 치바오 그림자극의 인형들은 색채가 화려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자 인형들이 모두 그 색채가 화려한 편이었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5위안. 2층 정도 되는 박물관인데, 표만 사면 자유롭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사실 이 박물관에 지금도 크게 감사하는 건, 너무 더웠던 5월 2일의 오후에 이 박물관이 나타나 주어서 덕분에 더위와 인파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치바오를 떠올리면 더위와 답답함, 양메이 주스, 그리고 이 박물관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돌아가려는데 한 장면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당신의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留下你的足迹)"라는 일종의 방명록 작성을 부탁하는 문구 옆에 사람들이 남겨둔 운동화 '발자국'들. 틀린 행동을 한 건 아니고 그 말 뜻과 딱 맞긴 한데, 중국인들 참 이럴 때 보면 해학적이다.
그림자극 박물관을 참관한 뒤 나와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역을 찾아 나섰다. 라오지에에 더 있다가는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인파는 점점 몰리고 이대로 계속 구경하려고 했다가는 아무것도 보질 못하고 사람에게 시달리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의 말대로다. 치바오는 상해 도심에서 오기에 접근성이 좋은 편인 유사(类似) 수향마을이고, 홍챠오 공항과 한인타운과 가까워 편하게 찾을 수 있다. 수향을 가보고 싶은데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오기에 괜찮은 곳인 것도 맞다. 일반적인 다른 수향마을은 주가각처럼 왕복 4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거나, 아니면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위에 적은 이유로 방문객은 정말 많은데 라오지에 구역 내 길은 정말 정말 좁다. 톈즈팡의 수향마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여유 있게 구경해보고 싶어서 왔는데 막상 뭘 봤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파에 떠밀리는 체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휴일에는, 특히 연휴에는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중국의 각지를 다녔지만 치바오처럼 이렇게 숨 막히게 인파가 몰리는 경험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만큼, 좁다.
연휴가 끝나고 상해를 떠나 다른 곳을 다녀온 다른 지전가 동료들이 갔던 곳들에 사람이 얼마나 몰렸는지, 인파가 얼마나 됐는지, 사진까지 보여주며 그 무용담을 자랑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치바오를 떠올렸다. 그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길과 사람들의 찡그린 표정, 양메이 주스의 시원함과 다리 위에서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상해라는 도시를 정말 사랑하지만 여전히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면 하나는 톈즈팡이고 하나는 이곳 치바오다. 트라우마란 게 참 무섭다.
'글을 보아하니 주가각(周家角)도 별로고, 치바오(七宝)도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럼 어딜 가야 하나요?' 매거진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다. 상해에서 꼭 수향 마을을 보러 가고 싶다면, 나는 신창(新场)을 추천한다. 바로 영화 <색, 계(色, 戒)>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그곳이다. 꼭 탕웨이 때문은 아니고, 거리로 치면 주가각과 치바오의 중간 정도 되고, 무엇보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옛 마을의 모습을 꽤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창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글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딱 하나, 치바오는 가고 싶으면 꼭 평일에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