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Jan 10. 2021

Happy Circus, Happy Holiday

청명절 연휴 첫날 (2)

(전편에서 이어짐)


인생 첫 서커스는 과천에서 본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의 일인데, 연기자들의 엄청난 평형감각에 한 번 놀라고, 각종 동물들의 화려한 묘기에 두 번 놀랐다. 당시에는 아직 어려서 무대 뒤 그들의 처우가 어떤지, 어떤 노력을 하는지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극한 직업이었겠다 싶다. 글을 쓰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동춘서커스단은 한국의 첫 서커스단임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을 겪다 겨우 회생해 요즘은 안산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서한(西汉) 때부터 마희(马戏)라는 이름의 공연예술이 있었다는데, 당시에는 그저 말 위에 사람이 올라가서 묘기를 부리는 등의 '말을 데리고 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뜻으로 마희(马戏)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마희와는 별개로 중국에는 잡기(杂技)라는 공연예술 장르가 따로 있는데, 고공 묘기나 유연성 묘기 등 사람들의 곡예와 묘기의 통칭이다. 이후 서양에서 서커스(Circus)가 유입됐을 때 그 내용이 마희(马戏)와 잡기(杂技)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중국에서는 이를 마씨(马戏, 마희)로 번역하게 된다. 지금은 마씨와 잡기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찾아간 상해마씨청(上海马戏城)은 중국 최대 규모의 서커스 상설 공연장이다. 주로 서양 관광객용 상해 여행 패키지 관광 코스에 이 극장이 꼭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대극장에서 진행하는 <ERA-时空之旅(시공지여, ERA-Intersection of Time)>와 중극장(中剧场)에서 진행하는 <欢乐马戏(환락마희, Happy Circus)>, 두 개 공연이 번갈아 진행되는데, ERA의 경우 서양 서커스 전개 방식과 기술을 융합한 공연이라고 하면 Happy Circus는 전통 중국 서커스 공연의 양식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왼쪽 중극장이 Happy Circus, 오른쪽 '2번' 표시된 지점이 ERA 공연장


원래 보고 싶었던 공연은 사실 대극장의 ERA였다. 하지만 19년 4월 5일 시점, 대극장은 아직 내부 유지보수 중이었고, 중극장 공연만 예매가 가능했다. 아쉬운 대로 중극장 공연을 예매했다. ERA는 리모델링 끝나고 볼 것을 기약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예매하고, 공연 전에 현장에서 티켓 교환을 했다. 앞에서 7번째 줄이었는데, 표값은 160위안(한화 약 3만 원 정도).



중극장이라 그런지 공연장 규모가 크지 않았다. (대극장은 1,400석 정도 규모) 그리고 관람객들이 대부분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공연 내용이 주로 동물들이 참여하는 서커스라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ERA까지 다 본 후의 결론은 아무래도 표 값 때문인 것 같다. ERA는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려면 600위안(한화 11만 원 정도)은 주어야 하는데, Happy Circus는 그 3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에 볼 수 있고, 공연장도 크지 않아 어디 앉아도 잘 보이는 편이다. 당연히 공연의 질은 대극장의 그것이 훨씬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Happy Circus 정도가 딱 적당하다.


Happy Circus(欢乐马戏)의 주인공은 대부분 동물이다. 동물 학대의 이슈가 있어 다른 국가의 서커스에서는 동물 관련 종목을 이미 많이 삭제했다고 하는데, 중국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이다. 관점의 차이인데, 일단 중국은 국가 차원으로 서커스단(잡기단, 杂技团)을 운영하고 잡기 공연자에 대한 처우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인간 연기자에 대한 처우가 나쁘지 않은데, 서커스단 안에서 동물이 학대를 당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인간의 친구인 동물을 서커스에 이용해 먹는다는 관점으로 보면 반대해 마땅한 일이지만, 동물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조련해 연기자로 쓰는 것이라면? 생각해볼 문제다.


하지만 개개인의 관점은 다르므로, 혹시 상술한 이유로 동물이 참여하는 서커스 공연을 불편해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래 사진들은 보지 않으시기를 추천한다. 아, 참고로 본 공연은 촬영을 금지하지 않는다. 플래시를 터뜨려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입장이며, 오히려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홍보해달라고 부탁한다.


개, 물개, 곰, 원숭이부터 호랑이와 진정한 의미의 마씨까지!


동물의 무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잡기단의 일원들이 등장해 다양한 묘기를 펼치는데, 주로 공중묘기가 많다. 남자 두 명이 나와 커다란 굴렁쇠 안과 밖에서 선보인 묘기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중간에 둘 다 바깥을 보고 도는 부분이 있었는데,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묘기인지라 좀 무서웠다. 오른쪽 사진은 굉장한 미녀가 나와서 줄에 매달려 묘기를 부리는 것이었는데, 플라잉 요가와 폴 댄스를 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하늘한 붉은 옷을 입고 나온 연기자분이 마치 선녀 같았다.



특히 감명 깊었던 굴렁쇠 묘기를 짤막하게나마 영상으로 공유한다. 공연 막바지에는 수많은 아동 관중들을 위해 짤막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상해를 여행하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곳의 또 다른 서커스 'ERA Intersection of Time'은 같은 해 5월 19일에 결국 관람을 하게 되는데, 그 후기는 이후에 올려 보도록 하겠다.


Happy Holiday에 Happy Circus 관람을 마치니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가게 된 곳이 티엔즈팡(田子坊).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으니...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이미 입구부터 우리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 이 광경. 상해에 처음 온 것도 아니고, 티엔즈팡도 결코 처음이 아니었는데 유동인구를 제한하려고 입구를 틀어막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그만 들어갔어야 했는데.... 다른 일행들이 티엔즈팡이 처음이라 기왕 온 김에 들어나 가보자고 입구로 발을 옮긴 순간,


티엔즈팡 曰 "그만 오라고 했지?"


인산인해(人山人海)란 이런 것일까? 티엔즈팡에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안에 있는 길들이 정말 좁은데, 그 좁은 길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걸어간다고 생각해보라. 마치 통근길 지하철에 바퀴가 없고 사람의 다리가 바퀴가 되어 움직이는 꼴이다.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은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 돌아 나갈 수도 없다. 진퇴양난. 거기에 골목 구석구석 풍겨오는 초두부(臭豆腐) 냄새까지 콜라보를 이루니, 초두부 냄새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던 일행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던 슬픈 오후 되시겠다. 이 뒤로 이 일행은 티엔즈팡에 다신 가지 않았다. 여러분, 청명절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지만 티엔즈팡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여기! 토끼 윌리엄의 영국식 찻집(兔子威廉的英式茶屋). 2017년에 연 곳으로 찻잎, 티백, 인퓨저 등 차와 관련된 상품들을 판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이곳 티엔즈팡이었지만, 이후 쑤저우(苏州)에도 분점이 있는 것을 알고 들렀던 기억이 있다. 동양차, 서양 차, 퓨전 블렌딩 티까지 다 파는데, 마음에 드는 찻잎 몇 캔을 Customize 해서 선물상자에 담을 수도 있어서 선물용으로도 좋다. 상해에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추천하곤 하는 곳이다. 현재는 티엔즈팡의 이곳과 북경에만 분점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일까, 19년엔 분명 쑤저우에 있었는데.



사람에 떠밀리느라 거의 토할 것 같은 상태가 된 일행을 긍휼히 여겨, 우리는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 나가 보기로 했다. 중간에 보이는 골목으로 슬쩍 빠져나가니 희망이 보인다. 희망의 끈을 붙잡고 다행히 탈출에 성공! 티엔즈팡에 대한 슬프고도 무서운 기억을 지워줄 어딘가를 가야 하는데, 가까운 곳 중에 갈만한 곳을 생각하다 고른 것이 신톈디(新天地, 신천지).


해가 아직 덜 졌을 무렵이라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티엔즈팡에 비해서는 길도 넓고, 면적도 더 넓은 신천지에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까 거기보단 낫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니까. 정신이 좀 드니 배를 채울 시간이 되어 메뉴를 고민하다가, 집에서 혼자는 절대 못 먹을 고기를 먹기로 했다. 중국에서 보내는 첫 연휴의 첫날을 좀 고급지게 보내보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한 야끼니꾸 겸 이자카야. 이름마저 '건배(여기서는 칸빠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다.


무려 상해에서 와규로는 1등인 집이다!


상해는 분명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고,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구역도 있고, 일본 지배 시절 '중국인과 개는 오지 마시오'라고 당당하게 써붙였다는 공원까지 있었다는데도(아니 어쩌면 그래서!?), 일본에 대한 우호도가 높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장기 거주를 한 적이 없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상해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분명 긍정적이다. 역사적 배경은 차치하고, 일본의 것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여기거나 좀 더 고급지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상해에는 일본요리를 잘하는 집이 꽤 있다. 이런 점은 어떻게 보면 대만, 특히 타이베이와 유사하다. 이 이자카야는 메뉴판부터 굉장히 일본 느낌이었는데 맛도 괜찮았다. 다만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고 정말 선술집과 유사하니까 왁자지껄 먹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밥을 먹고 나오니 해가 저물어 신천지의 조명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밥만 딱 먹고 들어가기가 왠지 좀 아쉬운 연휴 첫날. 적당히 한 잔 할 만한 곳을 찾는데, 대부분 이미 만석이다. 겨우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것도 안쪽엔 자리가 없고 테라스석밖에 앉을자리가 없었다. 좀 쌀쌀하지만 뭐 어떠랴? 분위기를 즐기기엔 야외 자리도 괜찮다! 그리고,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되는데...


오른쪽 음료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름은 '녹색 화원(绿色花园)'. 오이가 들어간 칵테일이라고 적혀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순전히 호기심으로 주문한 그 친구. 그리고 그가 자리로 왔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컵 안쪽을 두르고 있던 긴~ 오이. 그리고 한 입 마셨을 때 그 입안 가득했던 오이 맛.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순수 100% 오이의 맛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바를 지면을 빌어 소개하려고 보니, 폐업했다! 보아하니 중국인들도 오이 칵테일은 불호였나 보다.



그림 같았던 따닝공원, 손에 땀을 쥐었던 서커스 관람, 압사당할 뻔 한 티엔즈팡, 분위기 끝판왕 신천지. 청명절 연휴의 첫날은 이렇게 꽉꽉 찬 일정을 소화하고 끝났다. 집에 오는 길에는 동네 탐색을 좀 하려고 늘 다니던 정문 쪽 길이 아니라 단지 후문 쪽 길로 돌아 들어왔다. 도중에 과일가게와 작은 동네 마트를 발견했는데, 과일가게에서 컷팅된 과일 몇 종을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20위안(한화 3,500원 정도)에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냉큼 사 왔다. 파파야와 골드 키위, 그리고 딸기. 이렇게 청명절 연휴 첫날이 저문다.


이 과일 가게는 이후 내가 자주 가는 가게가 된다. 대부분 컷팅된 과일을 구매하긴 했지만, 비타민 보충은 중요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