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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09. 2021

여기가 네덜란드야 중국이야?

청명절 연휴 첫날 (1)

중국 대륙에는 1년 중 크고 작은 휴일이 꽤 있다. 중국의 휴일인 원단(元旦, 양력 1월 1일), 춘절(春节), 청명절, 단오절, 중추절, 국경절 등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 쉬는 국가공휴일이다. 대만 친구들 중에는 이 점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말로는 하나의 중국이라고 하지만 휴일은 아쉽게도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만은 연휴라고 할만한 명절이 사실상 춘절과 중추절 정도다. 나머지 휴일들은 다 하루씩밖에 없다.


그리고,  날이 왔다. 중국에   처음으로 맞는 연휴, 청명절 연휴(清明节 小长假)! 청명절은 음력 4 4일인데, 전후로 이틀 정도를 붙여서 3일을 쉰다. 청명절, 단오절은 보통 이렇게 3일을 쉬는데,  정도 쉬는 휴일을 중국어로는 소장가(小长假)라고 한다. 7 이상 쉬는 정말로 ~ 연휴(长假) 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는 날은 '작은 연휴' 칭하는 것이다.


청명절 연휴 첫날의 화창한 모습

한국에 있을 땐 보통 이 시기에 휴가를 쓰곤 했다. 거래선이 쉬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청명절 연휴에 휴가를 쓰고 여행으로 중국을 와본 적은 있지만 막상 중국에서 연휴를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연휴가 금, 토, 일 3일인 상황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을 가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국가공휴일에 중국의 어딘가를 여행했다간 자칫하면 관광객에게 압사당해 비명횡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상해에 있자. 다만, 연휴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자.’는 쪽으로 났다. 그렇다면 첫날엔 무엇을 할 것인가! 일단 상해에서 서커스를 보기로 했다. 상해 지하철 1호선에는 상해마씨청(上海马戏城)이라는 지하철역이 있는데, 여기에 서커스를 볼 수 있는 전문 공연장이 있었다. 원래 이 공연장에는 ERA-시공지여(时空之旅, ERA Intersection of Time)라는 유명 서커스 공연을 매일 진행하는데, 아쉽게도 19년 4월 5일 이 시점에 이 공연을 하는 공연장이 내부 유지보수 중이었다. 대신, 중극장(中剧场)에서 하는 환러마씨(欢乐马戏)라는 공연을 예매했다.



관람을 위해서는 어플을 통해 우선 예매를 하고, 당일 공연 전 현장에서 실물표로 교환이 필요했다. 함께 공연 관람을 하기로 한 분들과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상해마씨청 역으로 향했다. 2시 공연이니 아직 좀 시간이 있어 우선 고픈 배를 달래보기로 했다. 역 근처에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어 어떤 음식이 있는지 좀 보고 정해 보기로 했는데, 마침 손님도 적당히 있고 먹을만해 보이는 광동 요릿집이 있어 들어갔다.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주문을 태블릿으로 받는 곳이었다. 게다가 태블릿 속 대부분의 메뉴에는 사진이 있었다. 중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이것이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인지, 한자만 빽빽한 메뉴판을 경험해본 분이라면 알 것이니. 빠르게 메뉴를 훑고 주문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딱 좋았다. 하가우(虾饺), 창펀(肠粉), 리우샤바오(流沙包) 등 딤섬들과 면까지 챙겨 먹으니 배가 불러왔다. 맛도 나쁘지 않았으니 크게 고민하지 않고 들어간 것 치고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밥도 든든하게 먹고 배가 부른데, 아직도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날도 좋은데 이런 날 카페 안에 있기는 아쉽고, 근처에 적당한 카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일단 바이두 지도를 켠다. 일단 내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주변에 갈만한 곳을 찾아본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이런 상황에는 보통 공원이 시간을 보내는 후보지가 된다. 아니 이럴 수가! 그 조건들에 딱 맞는 곳이 보인다.



공연을 보기로 한 곳은 지도 속 2번 상해 마씨청, 처음엔 마씨청이 저렇게 큰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옆에 공원이 있다. 따닝 울금향 공원(大宁郁金香公园). 울금향이 중국어로는 튤립이니 따닝 튤립 공원이겠다. 공연장과도 멀지 않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딱 적당하다 싶어 얼른 공원 입구를 찾아 들어가 본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이 풍경!


따뜻한 색감의 튤립과 이름모를 푸른 꽃이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그림 같다


꽃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지만, 그래도 튤립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튤립의 외형상의 특징은 뚜렷하다. 터키 지역에서 가장 먼저 심기 시작한 꽃이라고 하는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터번을 닮았다고 해서 터번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 'tulipa'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단다. 이름이 꽃의 외형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옛사람들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한편 그의 중국 이름이 울금향(郁金香, 위진샹)인 것은 이날 처음 알았다. 그 유래가 무엇인고 하니, 중국의 남방 지역에는 옛날부터 귀한 약재로 쓰이던 생강과의 약물 울금(郁金)이 있었는데, 처음 중앙아시아에서 튤립이 들어왔을 때 그 뿌리가 울금의 모습과 유사했다고 한다. 피는 꽃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울금의 그것을 연상시켰는데(사실 꽃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울금의 꽃은 백합과 유사하게 생겼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향이 특별했다고 한다. 울금과 비슷하지만 향이 특별하다는 의미로, 그 이름이 울금향(郁金香)이 되었다는 썰.



알고 보니 이 날, 따닝공원에서는 튤립 꽃 축제(郁金香花博会)를 하고 있었다. 공원의 주된 테마가 튤립이라 보통 3월에 튤립을 심고, 4월 중에 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 축제를 노리고 이 공원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고, 공원 자체가 우리의 당초 계획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공원에서 축제를 하고 있다니! 항상 이런 우연한 만남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처럼 멋모르고 축제의 열기 속에 빠져든 이방인과는 달리 공원에는 이미 수많은 중국인들이 청명절 연휴의 시작을 튤립 축제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큼직한 호수 주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축제답게 천진, 대만, 티베트, 운남 등 각 지방의 특색 음식들을 파는 곳들도 있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을 공략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형 이벤트도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역시 축제의 꽃은 튤립! 축제 기간답게 색색깔의 튤립이 우리를 반겼다.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풍차와 조형물은 덤.



공원 곳곳을 보며 튤립을 감상하는 동안 감탄사만 나왔다. 도심 속에 이 정도 규모의 공원이 있다는 것도 (늘 그렇듯이) 나를 놀라게 하는데,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튤립이 그 넓은 공간 도처에 심어져 있다니. 마치 융단처럼 깔려 있는 색색의 튤립들이 현실감을 잃게 만들었다. 공원 밖 마천루가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이곳이 정말 네덜란드 어느 시골마을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회사에서 할인권을 주는 에버랜드도 귀찮다고 잘 안 가던 사람이었다. 차도 없고, 괜히 사람 속에 부대낄 것 같아서. 가까운 지역에서 하는 대형 튤립 축제도 가서 보지 않던 사람이, 상해의 어느 공원에서 우연히 발견한 튤립들에 마음을 뺏긴 것이다. 차이는 마음의 여유가 아니었을까? 멋진 풍경이 있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그 풍경이 마음에 들어오지, 여유가 없다면 그 어떤 멋진 풍경을 마주해도 눈 앞에 놓인 스스로의 고민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그 어떤 감회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날 나는 너무나도 우연히,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떤 공간에 들어갔고, 그 공간에서 화려한 색을 뽐내는 튤립 밭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 회사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고민이 없던 나의 마음은 그런 멋진 풍경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손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우연한 만남과 마음의 여유가 만나 튤립 축제는 4월 5일 청명절 연휴의 시작을 그야말로 아름답게 치장해 주었던 것이다.


이날 찍은 사진 중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두 컷이 있어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실어본다. 화면을 꽉 채우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잎 사이사이를 비추는 햇빛이, 빈 공간을 채우는 초록빛 줄기와 이파리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어떤 특수효과를 쓴 것만 같은 사진. 아름다운 꽃들로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다음 일정인 서커스를 관람하러 마씨청으로 향해 본다.



(청명절 연휴 첫날,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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