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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y 30. 2021

궁상스러웠던 나를 위로하는 여정

톈진(天津) 지역연구 1일차 (1)

비행기로 떠나는 첫 지역연구!


5월 넷째 주, 난징(南京), 허페이(合肥)에 이어 세 번째 지역연구를 계획할 시기가 되었다. 3, 4월이야 초기 정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어학당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지역연구를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는 7월이 오기 전인 5, 6월에는 한 달에 두 번씩은 지역연구를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앞선 두 차례의 지역연구의 목적지는 모두 개인적으로 전반부에 꼭 가보려고 했던 도시들이었는데, 다음 도시는 어디로 할 지에 대해서 사실 마음에 정한 바가 없었다. 그러다 '북방의 상해'라고 불리는 도시, 톈진(天津, 천진)을 떠올리게 되었다.


2012년 북경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사실 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어렵지 않게 가볼 수 있었을 도시, 톈진. 북경에서 기차로 얼마 걸리지 않기에 북경 교환학생들은 주말을 이용해 많이들 찾곤 하는 것으로 아는데, 교환학생 당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나는 다른 친구들이 갈 때 함께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으로야,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궁상떨지 않고 그냥 한 번 갔다 왔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나는 교환학생 등록금 및 생활비도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충당했던 처지여서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나서는, 잘~ 하면 출장으로라도 다녀올 일이 있었을 도시가 바로 이곳인데, 왜냐하면 회사의 생산 기지 중 한 곳이 톈진에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공장 오디트라도 나온다고 하면 영업으로서 한 번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기회가 나질 않았다. 솔직히 출장으로 가서 얼마나 그 도시를 제대로 볼 수 있겠냐마는. 그리고 마침 한 번 기회가 생겨 톈진에 출장을 다녀온 남편을 통해 간접 경험한 톈진은 미세먼지 자욱하고 공장 냄새나는, 그야말로 공업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그가 다녀온 톈진은 공업기지가 모여있던 고신 근처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이유들이 세 번째 지역연구의 목적지를 톈진으로 정하게 만들었다. 하나, 톈진은 직할시다 = 중국 지역전문가로서 지역연구로 한 번은 꼭 가봐야 한다. 둘, 남편의 평가를 들어보니 톈진은 생각보다 별 것이 없는 도시다 = 긴 기간을 잡지 않고 2박 3일만 잡아도 충분할 것이다. 셋, 톈진은 조계지의 비중이 상해 다음으로 많아 '북방의 상해'라는 별칭이 있다 = 거점도시인 상해와 비교하며 보는 맛이 있을 것이다. 넷째, 톈진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지역연구가 된다!


종합적으로, 5월 넷째 주의 지역연구는 어쩐지 운명적으로 톈진에 가게 된 느낌이 들었다. 궁상스러웠던 과거의 나를 위로할 겸, 5월 24일 나는 상해에서 톈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하는 날의 홍챠오 공항은 맑고도 맑은 날씨. 비행기를 기다리며 보는 창밖의 풍경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저 설렐 뿐.



혹시 국내선 공항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으실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써보자면, 보딩 하러 들어갈 때, 짐 검사 게이트의 출입문이 지하철역처럼 뭔갈 찍고 들어가게 되어있는 곳이 있고 직원이 직접 탑승권 및 서류를 검사해주는 곳이 있다. 당연히 찍고 들어가는 쪽이 줄이 짧다. 멋모르고 짧은 줄 쪽에 섰다가 뭔갈 찍고 들어가야 한다기에 여권을 찍으려고 하면 안 찍 힌 다. 그 게이트는 신분증에 칩이 숨어있는 중국인들을 위한 게이트이고, 중국인 신분증이 없는 외국인들은 직원이 직접 검사해주는 게이트 쪽으로 줄을 서야 한다. 손에 여권과 탑승권을 보이게 잘 들고 있으면 보안 요원이 수동 게이트로 안내해줄 때도 있지만 보안 요원이 놓치면 중국인들의 한심하다는 눈빛과 웅성거림을 견디며 수동 게이트를 찾아 헤매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줄이 짧은 곳은 다 이유가 있으니 요행을 바라진 마시길.


그리고 중국은, 국내선이 훨씬 빈번하긴 할 테지만 국제선이든 국내선이든 항공사나 비행기 사정에 따라서 게이트가 바뀌는 일이나 연착이 정말 잦다. 특히 연착의 경우에는 중국이 심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걱정을 꽤 했는데, 바깥 세계는 물론 자국 국민들마저 조롱하는 상황을 개선하고 싶었는지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은 생각보다 많이 겪진 않았다. (물론 있긴 있었다.... 곧 이곳에 쓸 일이 있을 것이다.ㅠㅠ) 어쨌든 이렇게 비행기 상황이 바뀌는 상황이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어플이 있는데, 바로 '페이챵쥰(非常准, '무척 정확하다'는 뜻)'이라는 어플이다. 게이트가 바뀌거나 연착의 상황이 있을 때, 비행기가 출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대략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지, 몇 시쯤 도착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나는 한국에서 고객사 내방이 있을 때 이 어플을 사용해봐서 미리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현지에서 여기저기 다녀보니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정보도 매우 정확한 편이었다. 추천! 아, 그렇다고 이 친구가 연착을 막아주진 못한다 ㅠㅠ



톈진의 따뜻한 인사


약 두 시간 반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톈진 빈해공항에 도착했다. 상해처럼 톈진의 날씨도 화-창. 저녁나절이라 온도도 그렇게 높지 않고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짐을 풀고 체크인을 하러 숙소로 향했다.


톈진의 하늘, 가운데는 택시 차창을 통해 찍어서 그런지 보랏빛이다


톈진에서의 숙소는 웨스틴 톈진이었는데, 과거 조계지 근처라 오대도(五大道), 서개교당(西开教堂) 등 톈진에서 둘러볼 만한 주요 명소들이 모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러 방에 들어갔더니 이런 쪽지가 놓여 있었다. 환영 메시지가 있는 것이야 그럴 수 있지만 손글씨로 써준 메시지라 따뜻한 환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 중에는 사실 이런 별 것 아닌 일에 자연스레 의미를 부여하게 되기 마련이다.



숙소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도 묘하게 따뜻했다. 날씨가 좋아서 더 좋았던 것이겠지만. 지금 보니 구름이 예술이다!




출출한 속을 채우는 톈진 요리(天津菜)


체크인 및 간단히 짐 정리를 마치고 일행과 다시 모였다. 저녁을 어디로 먹으러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톈진의 첫날 저녁이니 톈진 요리를 먹어야 할 텐데, 마침 숙소 근처에 평점이 나쁘지 않은 톈진 요리 전문점이 있어서 가보게 되었다. 이름은 꾸이위안찬팅(桂园餐厅). 조계지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있는 식당으로 꽤나 오래된 식당이었다. 동네 맛집인지 식당 앞에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리도 조금 대기하다가 드디어 입장하게 되었다.



자리를 약간 반지하로 된 룸에 무척 큰 원형 테이블에 앉히길래 세 명 밖에 안되는데 왜 이렇게 큰 자리를 주나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합석을 시킨다. 우리의 공간은 딱 세 명 자리, 나머지 공간엔 다른 팀이 앉았다. 속으론 내심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면 외국인 티를 내는 것 같아 일단 궁시렁대면서 착석. 여기서 또 하나 놀란 건, 한국의 관광지 맛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닐 씌워진 식당 테이블을 보게 된 점. 어쩐지 이 식당, 맛은 있는데 서비스나 환경이 별로라는 평이 있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찌 됐든 톈진에 왔으니 톈진 요리로 배를 채워보자! 랭킹에 있는 메뉴들을 보면서 몇 가지 요리들을 시켜보았다. 일단 마늘소고기볶음(黑蒜子牛肉粒). 톈진 요리의 한 종류인 이 요리는 중국과 서양이 조화를 이룬 요리라고 알려져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그리고 팔진두부(八珍豆腐). 팔보채와 두부를 함께 볶은 듯한 요리인데, 이 역시 톈진 사람들의 소울 푸드라고 한다.


이 두 톈진 요리 말고는 일행들과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골라봤는데, 하나는 부드러운 새우튀김(软炸虾仁). 후추 비슷한 것에 찍어먹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채소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시킨 노른자에 버무린 호박(蛋黄焗南瓜). 요건 계란 비린내가 좀 났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단짠 느낌이 있었다. 또 다른 채소 요리는 양배추 간장 볶음(酱爆圆白菜). 예상할 수 있는 그 맛.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식류로 시킨 튀긴 만터우(炸小馒头). 흔히 말하는 금은만두(金银馒头)에서 은을 모두 금으로 만든 버전이다. 겉바속촉! 연유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맛있고 톈진 특색 요리들이 있어 갈 만했지만, 서비스가 좀 별로고 내부가 번잡스러워서 추천하고 싶은 식당은 아니었다. 그래도 숙소에서 위치가 가까웠던 점은 괜찮았다. 그럼, 배도 채웠으니 이제 왜 톈진이 북방의 상해라 불리는지 알아보러 밖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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