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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11. 2021

중국 공원엔 없는 게 없다

어린이날은 공원에서

상하이에 있으면서, 또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정말 다양한 중국의 공원을 만났다. 강을 끼고 있는 큰 규모의 공원부터 정말 그 동네 사람이 아니면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규모의 공원까지, 중국에는 한 도시에만 여러 곳의 공원이 있었다. 문득 내가 살았던 서울을, 수원을 떠올렸다. 가용면적이 넓지 않은 이유에서겠지만 공원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한국의 도시들. 국토의 면적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 어디든 가까이에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원이 항상 있다는 점에서 나는 중국인들이 참 부러웠다.


중국의 공원엔 나무와 풀과 꽃, 연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만큼 다양한 볼거리들이 공원이라는 공간 안에 모여 있다. '화개장터'의 가사처럼, 정말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써클 같은 의미의 '각(角)', 각종 요리를 파는 식당과 찻집부터 다양한 동물이 모여 있는 동물원, 심지어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공원까지! 2019년 6월 1일, 중국의 어린이날(儿童节), 나는 중국에서 공원의 신세계를 만났다.



이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러 왔다고?!


마침 토요일이었던 2019년의 어린이날. 나는 예의 상하이 토박이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루쉰공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며 공원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이 친구는 주말만 되면 집에서 지하철역 한 정거장 정도 거리의 루쉰공원까지 와서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란다. 그래서인지 루쉰공원은 이 친구에겐 또 다른 집 같아서, 공원 곳곳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이날 친구가 나와 약속을 잡은 시간은 오전 8시. 토요일 오전 8시에 친구를 만난다니, 주말엔 모름지기 낮잠인데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일찍 일어난 보람이 있을 거라는 친구의 끈질긴 설득에 당했다. 이른 아침이니 조용한 분위기일 것을 예상하며 공원에 도착한 것이 8시 조금 못된 시간. 웬걸?! 공원이 너무 떠들썩하다. 입구부터 들썩들썩,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을 예상한 건 완벽한 오산이었다. 중국인의 아침은 훨씬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공원 안으로 들어와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친구가 조금 늦을 것 같단다. 집도 가까우면서 나보다 늦다니!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일단 먼저 공원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날카로운 검들 들고 춤을 추는 무리였다. 일명 '검무각(剑舞角)'. 맨 앞에 리더로 보이는 분이 하는 동작을 다른 분들이 같이 따라 하는 형식이었는데, 옷까지 갖춰 입고 검무를 추니 꽤나 그럴싸했다. 게다가 그 동작의 합이 꽤나 잘 맞아서 아무래도 이 모임을 오랫동안 지속해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집에서부터 저 옷을 입고 나온 걸까? 아니면 공원에서 갈아입은 걸까? 이상한 포인트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검무를 한참 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쿵쿵짝 쿵쿵짝 약간 뽕짝 느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 섹터에서 진행하는 광장무(广场舞) 모임이었다. 입구 근처의 좋은 자리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역사가 오래된 서클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큰 면적을 차지하고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는 심지어 강사를 소개하는 깃발이 있었다는 점이다. 깃발에는 이 모임의 선생님 격인 친궈핑(秦国平) 선생을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공원 유일의 교사 자격이 있는 선생님, 상하이 공원에 있는 선생님들 중 유일하게 공개 무용 대회에서 수상한 선생님...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분의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 중에는 이 화려하게 소개된 글이 한몫하는 듯했다.


그때 기다리던 친구가 왔다. 내가 이 무용 모임이 굉장히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고 하자 이건 가짜라며, 진짜는 더 안으로 들어와야 있다고 한다. 일단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본다.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오면 족구장 자리가 있는데 이 옆이 바로 친구가 말하는 '진짜 광장무 모임'이 있는 곳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된다는 이 모임의 선생님이 친구랑 잘 아는 사이였다. 꽌시 때문에 진짜라고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들어보니 이 모임도 대단하다. 아예 이 모임을 위한 단체 채팅방이 있고 그 안에서 노래와 그 노래에 맞춘 춤 동작 영상이 공유되면 회원들이 미리 연습을 하고 토요일에 이곳에 모여서 춤을 춘다고 한다. 오래 참석한 참가자가 많은 건지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대다수는 리더의 동작을 보지 않고도 외워서 춤을 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매주 한 번 있는 이 모임이 어쩌면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활력소일지도 모른다. 공원은 그런 즐거운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시할 뿐이다.



출출하면 오세요, 공원 식당


광장무를 한참 구경하니 슬슬 출출해졌다. 친구가 점심은 본인이 사겠다고 한다. 평소에 좀 과하다시피 돈을 아끼는 친구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니 적잖게 놀랐는데, 공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데려간다. 이른 시간이지만 식당은 이미 만석이고, 심지어 줄까지 서 있다. 일단 줄 뒤꽁무니에 얼른 가서 서본다.


친구 말로는 이 식당에서 가장 유명한 건 사실 입구에서 파는 빠오즈(包子)라고 한다. 고기, 야채, 버섯 등 다양한 종류의 빠오즈인데, 맛도 맛이지만 가성비가 짱이란다. 지나가다 들고 가는 사람을 봤는데 크기가 정말 크고 속도 실한데 값도 무척 착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좋은 메뉴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금방 동나는 메뉴라고. 실제로 이날도 우리가 갔을 때 이미 빠오즈는 없었다. 아쉽지만 빠오즈 말고 다른 메뉴를 먹기로 한다.


줄에서 기다린 지 얼마가 지났을까?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가려는데 먼저 주문을 해야 한단다. 알고 보니 선주문, 선불 식당. 게다가 외국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메뉴에 그림 하나 없는 글자 투성이의 식당. 갑자기 주문을 먼저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당황스러운데 한자 투성이의 메뉴판에서 먹을 걸 빨리 고르려니 너무 쫄린다. 게다가 뒤에서 줄을 선 수많은 상해 시민들의 압박은 또 어떻고. 결국 친구의 추천으로 상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면 요리라는 총요우빤몐(葱油拌面)을 골랐다. 한국어로 하면 파 기름 비빔면인데 상해인들에게는 소울 푸드 같은 요리란다. 그에 더해 친구가 또 다른 소울푸드 셩졘(生煎)과 춘권을 시켰다.


주문은 끝났는데, 다음 난관에 봉착했다. 식당에 자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다 먹어도 나갈 생각들이 없다. 시킨 메뉴는 금방 나올 것 같은 메뉴인데, 메뉴 나오기 전에 자리 못 잡는 것 아닌지 불안해하던 찰나. 친구가 성큼성큼 구석 자리로 향한다.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서 뭔갈 먹고 있는 테이블이었는데 테이블 모서리에 빈 의자 하나가 있었다. 친구가 옆 테이블에서 빈 의자 하나를 더 가지고 온 뒤 그냥 합석을 해버린다. 워낙 혼잡한 식당이니 이런 경우엔 그냥 합석해도 된단다. 아마 중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끼리만 왔다면 선뜻 하지 못했을 합석 시도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자 시킨 메뉴가 다 준비가 되었는데, 가져다주는 서비스는 또 없어서 친구가 이번에도 직접 가서 요리를 가져왔다.



셩졘(生煎)은 흔히 셩졘빠오(生煎包)라고 하며, 위쪽은 호빵, 아래쪽은 군만두 같은 만두다. 고기 호빵인데 위쪽은 촉촉하고 아래쪽은 구워서 바삭바삭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속은? 육즙이 가득 찬 고기 속. 상하이엔 샤오양셩졘(小杨生煎)이라는 이름의 체인점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느낌의 셩졘은 이 브랜드의 것을 먹으면 된다. 다만 셩졘을 먹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절대 한 입에 다 넣거나 반을 스윽 베어 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샤오롱바오를 먹을 때처럼, 겉껍질을 살짝 물어 안에 있는 육즙을 먼저 먹고 그다음에 베어 먹는 것이 현명하다. 내 입을 지키려면 말이다. 상하이는 어디서 셩졘을 먹어도 다 맛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춘권. 사실 춘권이라는 음식은 베트남 음식이라고만 생각했어서 상하이에서도 파는지는 몰랐는데, 친구가 상하이식 춘권도 먹을만하다고 시켜주었다. 먹어보니 알고 있던, 혹은 한국에서 먹어봤던 춘권과는 좀 달랐다. 구체적으로 뭐가 달랐냐고 하면, 속이 달랐던 것 같다. 한국에서 먹어본 춘권은 주로 야채와 당면? 위주였다고 하면 이곳에서 먹은 춘권은 만두처럼 고기도 들어있었다. 개인적으론 한국 춘권이 더 맛있었다. 친구가 사는 거니까 일단 맛있다고 엄지를 보여주었지만.


그리고 총요우빤몐(葱油拌面). 아, 이날 이후 나의 상하이 최애 음식은 총요우빤몐이 되었다. 사실 처음 메뉴가 등장했을 땐 이게 무슨 요리인가 싶었다. 그릇에 흰색 면만 담겨있는 채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릇을 보고 있자 친구가 일단 비벼보라며 비비는 동작을 한다. 그래서 젓가락으로 그릇을 뒤적이니 아래쪽에 파 기름과 간장이 들어있는 듯한 소스가 나온다. 그 소스와 면을 휘적휘적 비비고 한 입 입에 넣자, 환상! 값이 싸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뭐 딱히 든 것도 없었다. 이름 그대로 파 기름과 간장과 면뿐이었다. 고명이라고 하면 파 기름 만들다가 실수로 들어간 것 같은 파 몇 조각 정도? 그런데 그 면이 그렇게 맛있었다.


그 뒤로 상하이에서 이 면요리를 파는 식당에 갈 때마다 꼭 이 메뉴를 시켜봤는데 이 공원식당만 한 맛을 내는 가게가 없었다. 면 한 젓가락에 주문할 때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합석의 굴욕이 모두 잊히는 그 느낌! 공원 부속 식당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걸까? 까다롭다는 상하이 사람들이 이 식당 앞에서 줄을 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원 안에 동물원도 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친구가 이번엔 동물원에 가잔다. 갑자기 웬 동물원인지 이상해하고 있는데, 우리가 있던 공원 근처 다른 공원인 허핑공원(和平公园) 안에 동물원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공원 안에 동물원 이래서 그냥 아이들이 갈만한 정도의 소규모 공원을 생각하며 허핑공원에 가게 되었다.



허핑공원은 여느 공원처럼 입장료가 없지만, 이 동물원만큼은 10위안(한국 돈으로 이천 원 미만)의 입장료가 있다. 정확한 명칭은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섬(动物岛). 뭐가 됐든 생각보다 굉장히 정식 동물원인 것 같아 약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훙커우구에 있는 공원인 허핑공원은 본래 일본군이 쓰던 탄약고가 있던 자리였다. 신중국 성립 이후 국가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공원을 만들고 그 이름을 티란공원(提篮公园)이라고 지었는데, 1959년 건국 10주년을 기념으로 이곳에 평화의 비둘기 상을 세우게 되면서 공원의 이름을 허핑공원(和平公园)으로 바꾸었다. 다만 이렇게 평화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기 위한 개명 작업을 거쳤던 공원인데 막상 문화 대혁명 시기 이 평화의 비둘기상은 파괴되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정확히 어떤 계기로 이곳에 동물원이 들어서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하이에서 상해 동물원 외에 동물원이 조성되어 있는 공원은 이곳 허핑공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중간에 동물원 사업을 계속할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유지 여부에 대한 설문을 했던 것 같은데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동물원을 유지해줄 것을 요구하여 결론적으론 아직까지 동물섬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토끼나 기니피그 같은 작은 동물 외에도 꽃사슴, 염소, 심지어 호랑이까지 있었다. 공원에 부속으로 있는 동물원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동물원보다 접근성도 좋고 사람도 적은 편이라 구경하기 참 좋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이 친구!



화려함의 극치, 공작! 하지만 동물원에서 그가 꼬리 깃을 모두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일단 수컷만 이런 화려한 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게다가 일반적으로는 꼬리를 내리고 있다가 뭔가에 자극되었을 때만 올리기 때문에 또 확률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날은 운이 좋았다. 공작 우리를 지나갈 때 마침 이 친구가 꼬리를 펴주었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은 중국인이고 외국인이고 가릴 것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원에 동물원만 달랑 있으면 재미없지! 그 옆에 바로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설탕공예 가게. 설탕 녹인 물을 국자로 미세하게 떨어뜨려서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동물원 옆이라고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준다. 사실 중국에서 이런 류의 물건을 사본 적이 없었는데 이것도 기분이라고 한 번 사봤다. 맛은 딱 예상 가능한 그 맛이지만 공원에서 마주친 즐거운 이벤트라는 생각에 더 달게 느껴진다. 이후 상해 동물원을 가보긴 했지만, 허핑공원의 동물원은 그 존재만으로 정말 상하이에선 특별한 곳이다.



사진은 없지만, 놀이공원도 있어요


식당에 동물원까지 이미 충분히 다양한데, 놀라운 공원 부대시설에는 놀이공원도 있었다. 루쉰공원에서 봤던 것인데, 회전목마, 회전 UFO 등 놀이기구가 꽤나 다양했다. 공원 안에 붙어있는 부속 시설이라 별도의 입장료는 필요 없고 놀이기구 등 시설을 이용하고 싶으면 그에 대한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친구의 종용으로 (나는 고소공포증에 놀이기구를 무척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딱 한 번 이곳에서 회전 UFO 기구(중국어로는 '날으는 회전 의자(旋转飞椅)')를 탔는데, 정말 너무 무서웠다. 놀이기구 자체도 내게는 무서운 것이지만, 이 기구에 안전장치가 상당히 허술했다. 인당 한 자리씩 앉는데 안전벨트가 헐렁헐렁, 안전벨트가 뭔가 헐거워서 내릴 때까지 손잡이를 꼭 잡고 타느라 내릴 때가 되자 손바닥이 시뻘겋게 변했다. 입장료가 싼 대신 안전에 대한 보장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이 놀이공원은 사진이 없다. 왜냐고? 놀이기구가 너무 무서워서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하이 시민들에게는 싼값에 놀이공원의 느낌을 즐길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중국을 다니다가 여유가 된다면 주변 공원에 들러보길 바란다. 생각지 못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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