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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10. 2021

상하이, 5월의 끝을 잡고

31일까지여서 다행이야

5월이 31일까지라 얼마나 다행인지, 상하이에 있던 그 해 5월 나는 매일 그런 생각을 했다. 5월 상하이는 늘 내게 가장 예쁜 하늘을 보여주었고,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 나를 늘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밤 사이 창문을 가리던 암막 커튼을 치고 창 밖에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어찌나 기분 좋던지. 아침이 오는 것이 설레고 하루하루 가는 것이 그렇게나 서운한 한 달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땐 한 달이 가장 짧은 2월을 제일 좋아했는데. 상하이는 참 나에게 그동안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해 준다.


아침 커튼을 걷었을 때 보인 하늘과 캠퍼스의 풍경. 미세먼지가 1도 없는 맑은 하늘


하늘 맛집에 가자!


5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남긴 5월 30일, 날씨가 너무 좋으니 수업이 끝나고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친구 집에서 가까운 취푸루(曲阜路)에 위치한 Joy City(大悦城)에서 보기로 했다. 한국인들에겐 샤오미의 집(小米之家)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곳인데 영등포 타임스퀘어처럼 이런저런 시설이 모여있는 멀티플렉스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하늘 맛집이기 때문! 얼마나 하늘 맛집인지 이곳에는 건물에 연결된 관람차가 있을 정도다. 물론 우리는 관람차를 타진 않았다. 관람차에 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세 번째 사진은 관람차 앞까지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새 조형물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새가 관람차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인 데다 뒤에 보이는 하늘이 너무 멋져서 아직까지도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 1순위에 꼽힌다. 날이 좋을 때 이곳 Joy City에 와보길 추천한다. 예쁜 상하이의 하늘이 당신을 반길 테니.


멋진 하늘도 봤겠다,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철저히 나 위주인 동베이 음식(东北菜). 친구는 상하이 토박이지만 워낙 착해서 내가 고른 거면 다 좋단다. 그래서 급하게 따중뎬핑에서 그나마 평이 괜찮은 편이었던 동북 요릿집에 가게 되었다. 14년이나 수록된 나름 오래된 가게인데 전체 평점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도 주변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일단 가보도록 한다.



철저하게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만 시킨 메뉴들. 지금 보니 주식(主食)이 너무 많다. 부추만두(韭菜盒子), 계란 볶음밥(蛋炒饭), 게다가 가운데에 놓인 마이샹슈(蚂蚁上树)도 사실상 당면 위주라 주식이나 다를 바 없고. 그나마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게 궈바로우(锅包肉)와 지삼선(地三鲜)인데 이것도 너무 안전한 메뉴들이다. 역시 중국에서는 음식 제대로 주문하는 게 제일 힘들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맛이 그저 그랬다.. 북경에 있을 때 먹었던 동북 음식과 비교하면 그 맛이 천양지차였다. 아무래도 남방에서 동북 음식을 먹는 건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그래도 친구와 상하이 말도 배우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먹으니 즐거웠다.



새 신, 새 옷과 함께 맞이하는 6월!


5월의 마지막 날, 날씨는 여전히 맑음! 주 4파의 시간표로 수업이 없던 금요일, 나는 상하이에서 새 신발을 사기로 했다. 이전까지 신고 있던 신발은 한국에서 신고 간 신발이었는데, 하루에 만 보, 이만 보씩 걷다 보니 너무 헤져서 신을 수가 없게 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발뒤꿈치 부분이 너무 헤져서 비 오는 날이면 발 밑부터 젖으니, 비가 자주 오는 상하이에 사는 내게는 이 신발이 여간 불편할 수 없었다. 온 지 두 달만에 신발이 해지다니! 그만큼 상해 생활에 충실했던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5월 마지막날의 난징시루


새 신발은 Feiyue 브랜드 것으로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지역전문가 중 이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벼워 보이는 데다 가격도 착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점이 좋았다. 아무래도 1년간 상하이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싼 가격대의 운동화를 사서 마음대로 신고 해지면 버리고 돌아가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신톈디(新天地)에 이 브랜드 운동화를 파는 매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나는 김에 가보기로 했다.


곧 이별하게 될 헌 운동화를 신고 신톈디까지 걸어가 운동화 매장에 도착했다. Feiyue 매장에 뭘 사러 온 것 자체가 처음이라 좀 생경했는데, 자세히 보니 발 뒤꿈치 부분이 없는 유사 슬리퍼 스니커즈부터 꽤나 고급지게 생긴 단단해 보이는 운동화까지 같은 Feiyue여도 그 형태가 다양했다. 그리고 그 라인업에 따라 가격대도 굉장히 다양했다. 앞서 말한 대로 편하게 신고 버리고 또 살 수 있는 운동화를 사러 온 거라 나는 매장에서 중간 정도 되는 라인업의 운동화를 골랐다. 가격은 149위안. 한국 돈으로는 삼만 원 못 되는 가격. 헌 운동화를 벗고 새 신발을 신어 본다.


그때, 익숙한 언어가 들려 옆을 쳐다보니 한국인 관광객이다.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계산대에서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가 우연히 들린 것이다. 요지는  대충 정말 싸다는 것. 그 말을 남기고 그들은 한 여섯 켤레 정도 되는 운동화를 양손에 들고 매장을 빠져나갔다. 여행에 와서 부피가 큰 무언가를 사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라 내심 놀랐다. 듣기로는 한국 Feiyue 매장에서 파는 가격이 중국의 두 배 이상이라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이렇게 중국에 와서 사는 것이 훨씬 싸단다. 직구 같은 것일까? 근데, 한국과 중국이 거리가 그렇게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대체 가격차가 왜 그렇게 많이 나는 걸까?


사실 이 Feiyue라는 브랜드에는 좀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Feiyue라는 브랜드는 사실 프랑스 소속이다. 처음 한국 수원 롯데몰에서 이 Feiyue 브랜드를 보고 "중국 브랜드가 한국에 이렇게 진출해있네?"라고 하니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거 프랑스 브랜드야~ 스니커즈 치고 엄청 비싸~" 아니,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저 표기는 한어병음 표기인데, 대체 어떻게 저게 프랑스 브랜드지?! 게다가 그 한국어 이름은 페이유에란다. 나름 프랑스어도 입문까지 배운 적이 있는 나는 저 표기가 프랑스어 표기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 대체 왜?!


일단 지금의 Feiyue 브랜드 디자인의 운동화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상하이 소재의 따푸(大孚)라는 이름의 공장이었다. 때는 1958년, 대약진 운동이 진행되던 시기다. 이 따푸라는 공장은 원래 군용 신발을 만들던 곳인데, 군용 신발의 디자인을 살짝 바꿔서 민간인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만들어 내놓은 것이 바로 가장 초기의 Feiyue 신발이다. Feiyue는 중국어로 飞跃, '비약'이다. 대약진 운동 시절에 만들어진 신발이라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다. 이 실로 정치적인 이름의 운동화는 당시 너무 잘 나갔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당시 상하이 패션피플들의 인싸템이 된다.


그런데 상하이에 이 운동화가 한창 유행하던 때, 동방의 나라에 무술을 배우러 온 한 프랑스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Patrice Bastian. 배우려던 무술은 안 배우고 이 친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하이 패션피플들을 관찰하는데, 그러다 이 Feiyue 운동화를 발견하게 된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상하이 사람들에게 대 히트인 이 운동화를 유럽에 가져가 팔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Feiyue 관련 회사에 해외 판매권을 요청해서 받아가는데, 그게 구두로만 받은 컨펌이었다.


이 청년은 그런 것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자국으로 돌아가 가격을 엄청 올려 이 운동화를 팔기 시작한다. 감이 좋았는지 사업 수완이 좋았는지 실제로 이 운동화는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결국 유럽의 인기 브랜드의 신분으로 동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럼 중국의 Feiyue는 어떻게 됐느냐! 계속 팔고 있긴 했다. 다만 각종 짝퉁이 등장하고 디자인이 낡았다는 이유로 장사가 잘 안 돼서 관련 회사가 부도가 났고, 브랜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 그때 중국인의 이 '유럽에서 왔다'는 브랜드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건 분명 중국 것인데 왜 세계에서 프랑스 브랜드로 유통되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중국에선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운동화 가격이 외국에만 나가면 두세배 뛰어있는 것도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최근엔 중국에도 국산 열풍(国潮)이 불고 있는데, 이 Feiyue 브랜드 역시 그 흐름에 따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밖으로만 나가면 프랑스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는 이 브랜드가 사실은 중국 것이다, 봐라, 브랜드 이름도 한어병음이지 않냐! 하며 열심히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세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 안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사실 그 프랑스 청년이 유럽에서 팔아제끼지 않았으면 이렇게 역수입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프랑스를 두둔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이 지적재산권 분쟁은 끝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중국 안에서는 중국 브랜드의 Feiyue가 판매되고, 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 브랜드의 운동화는 모두 프랑스 브랜드의 자격으로 판매된다. 실제로 네이버에서 '페이유에'를 검색하면 프랑스 스니커즈 브랜드로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유통되는 정품 Feiyue의 가격은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니, 비행기 타고 상하이에 여행 와서 겸사겸사 운동화도 사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것이다.


에고, 복잡하다. 암튼 중국에서 Feiyue를 사면 아래 사진처럼 DaFu라는 표기를 추가적으로 해놓음으로써 그 오리지널리티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분쟁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여하튼 운동화는 가볍고 디자인이 심플하고 싸서 좋다.


엄청 복잡한 Feiyue의 역사와 그날 산 미색-금색 운동화, 가볍고 좋았다!


편하게 신을 신발을 사고 나니 또 편하게 입을 옷이 사고 싶어 졌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옷 쇼핑을 하는데, 나는 온라인으로 옷을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좀 불편해서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집 근처가 번화가 난징시루이니 어느 집이든 들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만만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유니클로 정도였다. 상하이의 청담동인 난징시루에 유니클로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 구경을 하다 보니 아주 운명적으로 이것과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대만 타이베이에 출장을 갔다가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관련 테마 식당까지 갔던 캐릭터 구데타마! 중국에서는 딴황거(蛋黄哥, 노른자 오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캐릭터가 유니클로와 콜라보하여 티셔츠를 판매하는 모양이다. 혹시 몰라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국은 없단다. 중국에서만 살 수 있는 모양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게다가 딱 내가 찾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면 티셔츠가 아닌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친 나를 발견했다.


새 신발과 새 옷을 입고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될까? 잔뜩 기대가 되는 5월의 마지막 날이다.


*실제로 이 신발과 옷은 상하이에서 보낸 남은 시간 동안 나의 가장 친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가장 좋아하는 당도 30%의 허브 젤리 밀크티를 마시며, 5월 마지막 날의 상하이를 걷는다. 처음으로 Feiyue에서 운동화를 사고, 우연히 유니클로에서 구데타마를 만나 충동적으로 티셔츠를 두 장이나 샀다. 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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