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Jul 31. 2021

중국에서 맞는 단오절

향 주머니(香囊)와 쫑즈(粽子)

한국에서 근무할 때, 연초 가장 즐거운 일정 중 하나가 중국 및 대만의 법정 공휴일을 인터넷에서 찾아 달력에 표시하는 것이었다. 고객이 쉬면 아무래도 그들의 제조 라인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휴일 전에 물량 공급 일정을 당겨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상황을 파악해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면, 내면적인 이유는 사실 고객이 있는 나라가 공휴일이어야 한국에 있는 우리의 몸도 좀 편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중화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과 대만의 휴일에 관심도 많고,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그 일정을 잘 알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쉬지 않는 청명절이나 단오절을 중화권 나라는 공휴일로 정해두었고, 대만의 경우 중국과 국경일이 다르며, 2월 28일에 얼얼빠(二二八)라는 특수한 공휴일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이 국경절(国庆节)이나 춘절(春节)은 워낙 길게 쉬니 논외로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휴일로는 청명절과 단오절을 꼽을 수 있겠다. 쉬는 기간은 길지 않지만 휴일에 껴있으면 꼬박꼬박 대체휴일도 있고, 휴일이 별로 없는 상반기 틈새에 껴있어 중간중간 숨 돌리기를 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청명절과 마찬가지로 19년 단오절도 상하이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다니던 어학원에서 단오절 맞이 이벤트로 단오절 중국 풍습 중 하나인 향낭(香囊, 향 주머니) 만들기를 기획하여 참여해보게 되었다.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우러 다니는 학원이다 보니 중국 문화나 풍습을 체험하는 활동들이 종종 열리곤 했는데, 그중 하나였다. 실제 단오절은 휴일이기 때문에 학원이 휴무이니 그 이틀 전쯤 진행된 행사였다.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 단오절 활동을 참가하러 학원으로 왔다. 활동 장소에 도착하니 자리마다 아래 사진과 같이 향낭을 만들 준비물이 세팅되어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천과 고무줄, 그리고 향낭 속을 채울 향료가 전부였는데, 실제로 만들기를 할 땐 바느질 재료도 필요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생님께서 중국 단오절의 유래와 관련된 고사를 소개해주셨다. 음력 5월 5일이라 보통 양력으로는 6월에 있는 단오절은 사실 중국 외에도 한국, 일본에도 있는 동아시아권 보편적인 명절이다. 중국은 그 시작이 상고시대부터였다고 주장하니 그 기원은 중국에 있었을지 몰라도 문화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또 지역이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것이다 보니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의 단오절은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이 마침 일본인과 한국인인 데다 이전에 한국이 유네스코에 단오절을 등재했던 사건이 있어 중국인 선생님이 설명하기 난처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가치판단을 쫙 빼고 그저 중국의 단오절에 대해서만 잘 설명해주셨다.


중국 대표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서는 단오절의 유래를 상고시대까지 가서 찾고 있는데, 사실 현재 중국의 단오절 문화를 만든 주인공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屈原)을 빼놓을 수 없다. 나라에 극히 실망하여 기나긴 시 <이소(离骚)>를 남기고 강에 빠져 자살한 굴원, 그런 굴원을 존경하고 안타까워해 대나무 잎에 밥을 싸 강물에 던져 물고기가 그의 시신을 뜯어먹지 못하게 막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열리는 용주(龙舟, Dragon Boat) 대회.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굴원의 시 <이소> 중 한 구절을 소개해주셨다. 그 길이 멀고 아득해도 끝까지 자신의 이상 속의 군주를 찾겠다는 구절인데, 막상 이런 시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한 그의 삶이 안타깝다. 단오절 자체가 굴원의 넋을 기리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단오절에 일반적인 휴일마냥 "뚜안우제콰이러(端午节快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표현으로는 "휴일 잘 보내세요(假期愉快)" 정도가 있겠다. 이런 점은 청명절도 마찬가지다.



단오절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듣고, 본격적으로 단오절 풍습 체험으로 향낭(香囊) 만들기를 시작했다. 우선 놓여있는 천을 접어서 선을 따라 봉하고 뒤집은 다음, 끈과 향료를 넣고 봉합을 해주면 되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바느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실과 시간 이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바느질을 상하이에 와서, 그것도 이런 계기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삐뚤빼뚤, 엉망이다.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옆에서 손을 보태주셔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역대로 음력 5월이 되면 날이 습해지고 더워지기 시작해 모기도 많아지고 역병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악한 기운들을 물리치고 즐거운 일들과 함께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라는 의미로 양력 6월의 시작인 단오절에는 이렇게 향낭, 즉 향료를 넣은 주머니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 드라마 <연희공략(延禧攻略)>이나 <견환전(甄嬛传)>을 보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표로 직접 수를 놓은 향낭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 안에 기원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실제로 당시에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표, 혹은 짝사랑을 고백하는 물건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천 속에 향료를 넣기 전, 살짝 향기를 맡아보았는데 쑥 냄새도 나고 모기향 냄새도 나고, 복잡한 향이 났지만 전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만든 향낭은 가져가서 안방 문에 걸어놨는데, 그 향이 은은하니 오래가서 좋았다. 정말 모기까지 쫓아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것 하나, 선물할 것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향낭을 만들고 있는데 강의실 구석에서 뭔가가 끓고 있는 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단오절에 빠질 수 없는 간식거리, 쫑즈(粽子)를 찌고 있는 것이었다. 쫑즈라는 것은 대나무 잎에 속을 넣은 찰밥을 넣어 단단하게 뭉쳐서 쪄낸 음식인데, 그 유래는 굴원이 강에 빠졌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를 존경했던 많은 사람들은 물에 빠진 그의 시신을 물고기들이 먹지 않게 하기 위해 미끼를 투척하기로 하는데,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이 쫑즈라는 것이다.


단오절에 쫑즈를 먹는 풍습은 중국 전역에 퍼져 있지만, 아무래도 지리적 환경이 다르다 보니 찰밥 안에 넣는 속이 그 지역별로 다르다고 한다. 북방은 대추나 팥, 설탕 등을 넣은 단 맛 위주라고 하면, 남방은 아무래도 날이 덥고 음식이 상하기가 쉽다 보니 계란 노른자 절임(咸蛋黄), 절인 고기(咸肉)를 넣는 등 짠맛 위주라고.


체험해보라고 학원에서는 두 종류의 맛을 모두 준비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둘 다 내 입맛엔 안 맞았지만 그나마 단 맛이 나았다. 아무거나 안 먹는 그런 고급진 입맛은 절대 아닌데, 단 맛 쫑즈는 막상 그다지 달지 않고 심심해서 그냥 밍밍한 찹쌀밥을 씹어먹는 느낌이었고, 계란 노른자 절임이 들어있던 짠맛 쫑즈는 짠맛 더하기 노른자 비린내가 진동하여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그 기대 섞인 눈빛이란. 특히 남방 출신이 많았던 학원 선생님들은 대부분 노른자 쫑즈를 극찬하며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음, 한 번 정도는 먹어볼 만하겠지만, 두 번은..... 먹지 않으련다.


향낭과 쫑즈와 함께 한 단오절 이벤트는 학창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바느질 체험과 맛의 새로운 영역 개척으로 상하이 생활의 한 페이지를 즐겁게 장식했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오늘 오후에 학원에서 만든 향낭! 천이 정말 예뻤고 향기도 좋았다. 사악한 기운을 없애주고 즐거운 일만 생기게 해 주길...!


        

매거진의 이전글 극과 극, 상해 먹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