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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ug 01. 2021

그냥, 훠궈 먹고 싶어서

충칭(重庆) 지역연구 1일차 (1)

날도 습한데, 훠궈나 먹으러 가자!


1년 중 가장 좋았던 한 달이었던 5월이 지난 상하이는 점점 덥고 습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는 습한 냄새가 났고,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훅 들어오는 습한 공기에 어질어질했다. 슬슬 중국 남방에 있는 지역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습제를 쟁여놔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물먹는 하마. 중국에도 다양한 형태의 물먹는 하마가 있었는데,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나는 옷장 거치형 물먹는 하마를 잔뜩 사재기했다. 며칠만 걸어놔도 금방 물이 꽉꽉 찼다. 북경에 있을 때는 건조해서 코피가 날 정도였는데, 상하이에 오니 남방의 습함을 드디어 체험하는 셈이었다.


이렇게 습한 날씨에 중국인들이 꼭 먹곤 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훠궈(火锅)다. 한국에도 이제 많이 보급된 이 중국식 샤브샤브는 사실 매운 홍탕을 곁들여 먹어야 제맛인 요리인데,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이 홍탕이 몸안에 있는 습기를 빼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추나 화쟈오 같은 맵고 얼얼한 식자재가 열을 내면서 몸안의 습기를 없애준다는 이유로 날이 습해지면 중국인들은 훠궈를 찾는다. 물론 날이 추울 때 몸 녹일 겸 찾기도 하지만.


그리고 중국에서 이 훠궈로 이름난 도시가 바로 충칭(重庆, 중경)이다. 왜 훠궈 하면 충칭이 떠오르는지를 알려면 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바로 덥고, 습하다는 것이다. 습하고 더우니 그야말로 훠궈를 먹기 딱 좋은 도시다.


충칭은 명실상부 중국의 4대 화로(火炉) 도시 중 한 곳이다. 이 4대 화로 도시는 본래 우한(武汉), 난창(南昌), 난징(南京), 충칭(重庆)이었다가 시간의 변화에 따른 기후의 변화와 화로 도시들의 후속 조치(?)로 서서히 바뀌어 지금은 충칭(重庆), 푸저우(福州), 항저우(杭州), 난창(南昌)으로 정의된다고 하는데, 충칭은 과거의 분류든 현재의 분류든 공통적으로 속해 있는 도시다.


또 충칭은 습한 도시다. 중국은 도시마다 특색이 뚜렷해 각종 별명이 붙어 있는데, 이 도시에 붙는 별명이 이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해서 우성(雨城),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해서 무성(雾城)이라고 불리는 충칭. 비와 안개가 잦다니 당연히 습할 수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이 충칭에 미인이 많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로 꼽는 것이 날은 덥지만 비가 많이 와서 해가 잘 들지 않아 탄 피부를 가진 여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편, 넷플릭스에도 있는 <어그레시브 레츠코>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한 등장인물이 어마어마한 부자라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곧장 전용기를 타고 그곳에 가서 먹고 온다는 말이 나온다. 라멘이 먹고 싶어서 전용기를 타고 후쿠오카에 가는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단오절을 낀 연휴, 훠궈가 먹고 싶으니까 훠궈의 본산 총칭에 가는 것으로! 아쉽게도 전용기 같은 화려한 물건은 없지만, 대신 우리에겐 중국 어디든 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끊을 권리가 있었다.



충칭의 기억, 해방비(解放碑)로 간다


이번에 가는 충칭이 내 첫 충칭은 아니다. 대학 때 학과 답사로 가본 적도 있고, 출장으로 가본 적도 있다. 전자는 펼쳐보면 너무나 즐거운 기억이고 후자는 너무나 펼쳐보기 싫은 짠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두 방문을 통틀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두 해방비와 함께다. 충칭 시중심에 위치해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해방비(解放碑). 답사 때는 돈은 없었지만 이것이 진정한 해방인가 싶어 즐거웠고, 출장 때는 돈은 어느 정도 생겼지만 진정한 해방은 언제 오는가 싶어 막막했던 기억들. 이번에 가서 만나는 해방비는 나에게 또 어떤 느낌을 들게 해줄런지.


18년 7월 충칭 출장 때 해방비의 모습과 출장보고 쓴다고 KFC 햄버거를 우걱거리며 호텔에서 찍은 창밖 모습


19년 6월 6일, 해방비를 만나러, 또 훠궈를 먹으러 충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출발하는 날 상하이의 날씨는 다행히 아주 맑음. 이번엔 지난 톈진 여정에서와 같은 연착은 만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상하이를 떠나 충칭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비행기 창 밖으로는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성(雨城)이라는 별명에 맞게 구름 낀 하늘을 보여주는 충칭. 비만 내리지 말아라.


상하이 상공(좌)과 충칭 상공(우)


충칭에 도착해 비행기를 내려 짐을 찾으러 가는데 포스트마다 이렇게 귀여운 곰돌이가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국내선이 주로 착륙하는 곳이다 보니 정말 전국의 각 도시를 가는 항공편이 많다. 짐을 찾고 숙소까지 어떻게 갈지 알아보니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한 것 같아 가보기로 한다. 충칭의 지하철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기도 했고, 특히 아래 사진처럼 이렇게 One-way ticket(单程票)을 끊어 사진을 찍는 게 지역연구를 기념하는 하나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하철이 꽤나 잘 되어 있어서 한 번의 환승만으로 숙소가 있는 해방비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8시가 넘은 시간이라 해는 다 졌고, 창밖엔 밤이 찾아와 있었다. 숙소가 장강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라 창밖 야경이 나쁘지 않아 사진을 찍었다. 짐을 좀 정리하고 일행들과 다시 만나 늦은 저녁을 먹으러 움직인다. 저녁을 먹기로 한 곳은 해방비 근처 한 훠궈집. 이렇게 다시 해방비를 만났다.



18년 7월, 아직 해가 있을 때 만났던 해방비 근처에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는데, 19년 6월, 해가 다 지고 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시간에 만난 해방비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렇다고 여름밤이 특별히 선선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열대야와 같은 열기가 대기 중에 여전히 가득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뙤약볕이 없으니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해방비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들게 해 주었냐고? '아, 이것이 진정한 해방이구나!' 하는 생각?!


중경의 랜드마크 해방비의 원래 주인은 사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다. 본래 이것이 세워진 계기는 손중산 선생의 기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40년, 정신적 지주였던 손중산(쑨원) 선생이 돌아가신 날을 기리고자 만들어졌던 이것이 현재의 '해방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45년. 만들긴 만들었는데 그 시작이 중화민국, 즉 국민당 정부와 소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손중산 선생이라 좀 거슬렸던지 이 기념비를 항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의 '해방비'로 개명하기로 했단다.


누구의 것임이 무엇이 중요하랴. 사람들이 이 기념비를 보고 무엇을 떠올리느냐가 중요하지. 그것이 지금 나에겐 '해방'이라는 두 글자인 셈이다.



아무리 늦었어도 저녁은 훠궈!


해방비 근처 흥성거리는 거리를 지나 발을 멈춘 곳은 훠궈집.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어갔지만 그래도 충칭에 도착했는데 첫 끼니를 거를 순 없다는 생각에 가게 된 곳이었다. 사실 충칭, 그것도 해방비 근처에 훠궈집은 정말 많다. 그리고 웬만하면 대부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이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가게 이름은 빠쟝쥔(巴将军) 훠궈집. 충칭 지역의 옛 이름이 파(巴, 중국어 발음은 '빠')이니 빠쟝쥔이면 충칭 장군 뭐 이런 뜻이겠다. 1751년부터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사실 이름 붙이기 나름이고, 어쨌든 우리에게 중요한 건 평점이다. 4.8점이면 아주 우수하다.


일단 충칭에 왔으니 충칭 맥주부터 시키고, 훠궈탕과 각종 재료들을 주문한다. 진짜 충칭식으로 먹으려면 사실 백탕·홍탕 반반씩 있는 원앙궈(鸳鸯锅)는 시키면 안 되겠지만, 위가 좋지 않은 맵찔이, 내가 끼어있는 오늘 저녁에는 아쉽지만 백탕이 곁들여진 반반탕을 시켜야 한다. 찍어먹는 소스도 참기름 베이스의 캔 형태의 특제 소스에 개인 취향대로 파나 고수 등 부재료를 첨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충칭식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북방식의 마쟝(麻酱) 소스를 더 선호해서 따로 준비했다. 가게 한 켠에 각종 부재료를 직접 담을 수 있는 셀프 코너가 있어 편하다. 특이한 건 거기 쏸라펀(酸辣粉)도 준비가 되어 있다. 매콤 새콤한 면인데 감칠맛이 돌아 식전에 입맛 돋우기 좋다.


고기나 야채를 취향대로 시켰는데, 처음 보는 재료가 상에 올라와 눈이 휘둥그레진다. 경험자가 주문한 것인데, 거위 창자(鹅肠)란다. 한 줄 한 줄이 무척 길어서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일단 국자 하나를 집어 탕에 넣고 거위 창자 한 줄을 국자 속에 넣어 몇 초 간 익힌 후 바로 건져내서 먹으면 그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알려준 방법대로 익혀서 입에 넣으니 꼬들꼬들한 것이 식감이 특이하다. 내장을 먹는 것 같기보다는 해삼 같은 해산물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 충칭이나 청두 등 사천 지역에서는 훠궈를 먹을 때 야채를 먼저 탕에 넣지 않는다고 한다. 먼저 고기를 넣어서 배불리 먹고 나서 그 국물에 야채 등 부재료를 넣어 익혀 먹는단다. 고기가 먼저 들어가 있던 탕이라 육수로 변한 탕에 재료를 넣으면 그냥 탕에 넣는 것보다 더 맛있다나. 생각해보면 훠궈를 먹으러 가서 홍탕에 야채를 먼저 넣어 버리면 고추기름 등이 야채에 배어 지옥의 야채로 변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은 야채를 탕에 넣고 오래 익혀서는 안 되고, 고기를 다 먹고 필요한 만큼만 쏙 넣어 슬쩍 데쳐 먹는 사천식 방법이 훠궈를 잘 먹는 진짜 방법일런지도 모르겠다.


충칭에서 훠궈를 먹을 때 사실 가장 놀라게 되는 건 계산서를 받았을 때가 아닐까. 고기도 잔뜩 시키고 맥주도 원 없이 먹었는데 정작 인당 75위안, 즉 만 원 초반대의 금액밖에 나오질 않았다. 응, 충칭에 와서 훠궈를 먹겠다는 결정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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