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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ug 07. 2021

충칭(重庆)과 중경(重慶) 사이

충칭(重庆) 지역연구 1일차 (2)

꽉 찬 매력, 충칭(重庆)과 중경(重慶) 사이


중국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배우는 한자와는 다소 다른 모양의 간화(簡化)된 한자, 간체자(简体字)를 접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때로는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기뻐하는 사람은 본래 알고 있던 한자가 많지 않아 어차피 새로 외워야 하기 때문일 테고,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은 이미 한자를 많이 알고 있어 오히려 간체자를 새롭게 외워야 하여 그런 것일 테다. 나의 경우는 간체자로 계속 중국어를 배워왔기에 회사 업무로 대만에서 쓰는 번체자(繁体字,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와 대부분 같다)를 접하고 얼마간의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의 지식인들과 정부가 간체자를 제정, 보급하게 된 배경은 당연하게도 문맹률 때문이었다. 어떤 사상이나 지식을 전파하려 해도, 무언가를 가르치려 해도, 문맹률이 항상 큰 장애가 되자 원래보다 간단한 문자를 만들어 문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줄여보려고 한 것이다. 중국 친구도 대만 친구도 모두 접하는 나로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간체자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획이 많고 쓰기 복잡한 번체자보다는 현재 보편화된 간체자가 일상생활에는 훨씬 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문자 그 자체'로서의 번체자와 간체자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번체자를 선호한다. 사실 한자가 오랜 기간 동안 변천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자의 본래 모습인 번체자에는 그 한자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다. 즉 그 한 글자만으로도 자체적인 균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체자는 어떤 규칙을 정해 이 글자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변형시킨 결과물이다. 그래서 간체자는 글자 자체가 불균형하다는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예로 사랑 애(愛)의 간체자인 아이(爱)에는 마음(心)이 빠져있다. 어찌 사랑하는데 마음이 없을 수 있으랴. 불균형의 극치다.


간체자가 가득한 종이를 보다가 번체자가 가득한 종이를 봤을 때 느껴지는 '진짜 중국'을 읽는다는 느낌은 차치하고, 어쨌든 현대 중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가 선택한 문자, 간체자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가끔, '아- 번체자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지명 중에는 충칭(重慶과 重庆)과 랴오닝(遼寧과 辽宁)이 그렇다. 충칭의 명물 홍야동(洪崖洞)에서 획획이 꽉 찬 '중 경' 두 글자를 만났을 때, 볼거리 먹을거리로 가득 찬 이 충칭이라는 도시는 간체자보다는 역시 번체자가 어울린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경사(傾斜)의 도시, 충칭


훠궈로 배를 채우고 나니 어느덧 10시가 넘어간다. 그래도 충칭이라는 새로운 곳에 왔으니 그냥 숙소에 들어가긴 좀 아쉬운 마음에 충칭의 밤거리를 좀 방황해보기로 했다. 낮이 워낙 더운 도시라 늦은 밤까지 불을 켜놓은 곳이 꽤 많다. 밤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다가 홍야동(洪崖洞)이 떠올라 그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침 식당에서도 멀지 않다.



홍야동의 풀네임에는 민속풍모구(民俗风貌区)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사실 여기도 옛날부터 있었던 곳은 아니고, 2000년대 들어서야 새롭게 조성된 곳이다. 본래 성문이었던 홍야먼(洪崖门) 자리에 충칭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채워 넣어 만든 일종의 옛 거리다. 경사가 심한 곳에 조성된 이곳에는 각종 식당과 전통 완구 및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 등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장강을 마주하고 있어 건물 위로 올라가면 장강의 물결과 쳰쓰먼대교(千厮门大桥)를 볼 수 있다.


홍야동에서 바라본 쳰쓰먼대교와 경사지에 세워진 홍야동 건물


밤 11시가 다 되어가 밤이 깊은 시간인데도 홍야동엔 야식과 놀거리를 찾아 나온 충칭의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생각해보면 대학 때 답사로 충칭에 왔을 때 홍야동에 온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낮에 왔던 터라 지금과는 그 풍경이 사뭇 달랐다. 아무래도 홍야동에 오려면 밤에 와야 하는 것 같다. 아마 낮에 오면 더워서 제대로 구경하기도 힘들 것이다.


충칭을 처음 와본다면 홍야동은 분명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하면 홍야동은 그저 관광지화 되어 있는 옛 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톈진의 고문화거리(古文化街), 상하이의 예원상성(豫园商城) 같이 소문난 잔치에 막상 볼거리는 없어 실망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만약 홍야동의 화려한 야경이 궁금해서 이곳에 와보려고 한다면 직접 홍야동에 오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앞에 있는 쳰쓰먼대교(千厮门大桥)에서 볼 것을 추천한다. "불식여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不识庐山真面目, 只缘身在此山中)"이라는 말이 있듯 진짜 홍야동의 야경은 홍야동 안에서는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쳰쓰먼대교에서 본 홍야동의 모습은 곧 다른 글을 통해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홍야동을 빠져나와 충칭의 밤거리를 걷는다. 어째 길이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다. 산에 기대 만들어진 도시라 하여 붙여진 충칭의 또 다른 별칭 산성(山城)처럼, 충칭은 비탈길과 언덕이 많고 경사로가 잦다. 앞서 머문 홍야동을 대표하는 특징이 바로 경사면에 세워진 건축물들이라는데 그것이 또한 충칭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양식이기도 하다고 하니 이쯤 되면 충칭은 경사의 도시, 입체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의 도시, 충칭


경사로를 따라 걷다가 빛이 너무 고운 과일을 만나 잠깐 발을 멈춘다. 이름은 진씨메이(金西梅)라고 쓰여있는데, 살구 정도의 크기의 열매에 그 색깔이 형광 주황색이라 얼핏 보면 웬 탱탱볼 같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형광 탱탱볼 같은 과일이라니! 그 정체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주변에 사 먹는 중국인들이 많지 않아 약간의 경계심을 갖고 사 먹지 않았다. 괜히 길거리 음식 도전했다가 타지에서 배탈이 나면 큰일이니까. 나중에 찾아보니 19년 당시 충칭의 왕홍(网红, 인터넷 스타) 과일이었다고 하는데 생과일은 아니고 프룬을 설탕에 졸여서 만든 가공품이란다. 색은 화려한데 막상 먹어보면 너무 달아 한 입 먹고 버릴 정도라고 하니, 안 사 먹길 잘했다. 그러고 보면 과일이 탱탱볼 같은 질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먹기 싫어지긴 한다. 하지만 그 빛은 정말 고왔다. 진짜로.



밤의 도시 아니랄까 봐 꼬치구이 같은 야식을 파는 유사 포장마차가 눈에 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충칭 시민들이 여름밤의 더위와 습기를 이겨내기 위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맥주 한 잔씩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피곤하고, 내일쯤 한 번 이 포장마차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여기 껴서 같이 꼬치 좀 뜯어줘야 진짜 충칭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충칭 1일차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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