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重庆) 지역연구 2일차 (1)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안개의 도시 무성(雾城) 답게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장강의 풍경 속에 뿌연 안개가 껴 있다. 어젯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색색의 야경을 선사하던 충칭은 새벽 동안 간밤의 열기를 식히고 차분하고 선선한 아침 공기를 선사한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한다. 차를 대절하여 충칭 교외에 있는 우롱(武隆, 무륭)에 가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롱까지 가는 데는 편도만 차로 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도 패스하고 아침 7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 대절한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다.
지역연구를 하면서 차를 대절하여 어딘가를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한정된 시간 동안 그 지역을 좀 더 심도 있게 체험하려고 한다면 차를 대절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다. 특히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말이다. 그동안 다녔던 지역연구는 주말을 껴서 가는 비교적 짧은 지역연구였기 때문에 시도할 엄두를 못 냈지만, 이번엔 그래도 공휴일이 있는 3박 4일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차를 대절해 도심에서 좀 벗어나 보기로 했다.
차를 대절하는 것을 중국어로는 빠오처(包车)라고 한다. 쌀 포(包) 자를 쓰는 빠오라는 글자는 중국어에서는 동사로 '책임을 지다'라는 뜻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된 '대절하다, 전세 내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뒤에 '차'라는 뜻의 처(车)라는 단어를 붙이면 차를 대절한다는 뜻이 된다.
빠오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주로 사용했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여행 어플 씨에청(携程, Ctrip)의 관련 메뉴에서 일정을 입력하고 빠오처 예약을 하는 방법, 또 하나는 묵게 되는 숙소를 통해 빠오처 업체나 택시업체를 소개받아 대절을 하는 방법. 전자는 비용 계산이 비교적 투명한 플랫폼을 통해 하게 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편리한 편이지만 지역에 따라 예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반면, 후자는 아무리 작은 지역이어도 예약이 잘 되지만 비용 협상 등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번 충칭 일정에서 대절한 차는 씨에청을 통해 예약을 진행했는데, 일정을 입력하고 미리 탑승 인원이나 선호하는 차량 등을 정해 예약을 하면 기사님 연락처가 플랫폼을 통해 통보되고 일정 당일 기사님과 연락해 만나 당일 일정을 진행하면 되어서 비교적 편리했다. 차량 대절 비용에 대한 영수증은 씨에청 플랫폼을 통해 발행받을 수 있고, 추가로 드는 통행료나 주차료 등은 그때그때 지불 후 영수증을 잘 보관하면 된다.
기사님을 만나 일행들과 차를 타고 우롱(武隆)으로 향한다. 장장 4시간에 달하는 일정. 부족한 잠을 좀 채운다고 생각하고 눈을 붙이니 어느덧 거의 도착해간다. 아무래도 지형이 험한 곳으로 가는 일정이다 보니 창 밖 풍경들이 산 넘고 물 건너는 느낌의 풍경이다.
우롱 앞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막상 들어가면 안에 식당이 없어서 밖에서 먹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따중뎬핑 어플을 켜서 주변 식당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곳은 주변에 산밖에 없는 정말 전형적인 관광지라 사실상 선택할 수 있는 밥집이 별로 없었다. 그냥 보이는 집 중에 손님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먹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별로 큰 고민하지 않고 척 봐도 관광지 식당 같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이 식당에서 파는 메뉴들은 정말 전형적인 충칭의 요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천요리들. 대부분의 요리들의 이름에서 짙은 고추기름(红油)의 냄새가 났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러 들어간 집이었기 때문에 주식(主食)에 있는 요리들을 주로 시켰는데, 특히 충칭샤오몐(重庆小面)이나 후이궈러우(回锅肉) 같은 음식들이 정말 상하이에서 먹는 것과는 달랐다. 역시 요리는 그 본거지에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요리를 먹는데 반주가 빠질 순 없지. 여기는 또 어제 마신 것과는 다른 종류의 맥주 충칭 자이(重庆崽儿)가 있어서 시켜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내 인생 중국요리를 하나 만나게 된다. 그 이름은 홍요우차오쇼우(红油抄手).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차오쇼우(抄手)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만두, 훈툰(馄饨)과 같은 것인 줄 몰랐다. 그저 추천 메뉴 랭킹에 있길래 충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인줄 알았을 뿐이다.
사실 차오쇼우(抄手)라는 음식은 상하이에서 훈툰(만두)이라고 부르는 요리를 중국의 서남지역, 즉 쓰촨 등지에서 부르는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다만 그 요리 앞에 홍요우가 붙었으니, 쓰촨 성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추기름을 듬뿍 부어 매운맛을 첨가한 훈툰이겠지.
왜 같은 요리를 어디는 훈툰이라 부르고 어디는 차오쇼우라고 부르냐는 데는 여러 가지 속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속설을 살펴보면, 하나는 이 만두의 모양이 팔짱을 낀(중국어로 '팔짱을 끼다'는 차오쇼우(抄手)라고 한다) 사람의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고, 또 하나는 만두피가 하도 얇아서 끓는 물에 넣고 팔짱을 끼는 사이에 모두 익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그 훈툰과 같은 요리라는 것!
그런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홍요우 차오쇼우에는 새우만두를 넣기도 하고 고기만두를 넣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 차오쇼우의 얇은 피가 고추기름의 매콤함을 적절하게 흡수해서 만두소의 감칠맛과 고추기름의 매콤함이 조화를 이루어 정말 하나도 느끼하지 않고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만두를 맛볼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식당이 결코 무슨 유명한 맛집이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정말 과장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충칭 하면 이 홍요우 차오쇼우가 떠오를 정도로 너무나도 맛있었다.
여담으로, 한국에 온 뒤로 이 홍요우 차오쇼우의 매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며 이 음식을 파는 다양한 식당을 대부분 가보았지만, 충칭에서 맛봤던 이 홍요우 차오쇼우 만한 맛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뒤에 소개할 우롱에서 정말 장관이자 절경을 보고 왔는데, 아직까지도 우롱 하면 그 멋진 풍경이 아니라 차오쇼우가 생각난다. 이쯤 되면 우롱이, 충칭이 울겠다.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던(?)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제 진짜 우롱을 보러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갓 지난 황금 시간대라 들어가려는 차들이 참 많았는데, 주차장의 인파를 뚫고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표는 인당 125위안. 한화로 한 2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표를 샀다고 바로 입장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시간대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지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우롱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데? 그 풀네임은 우롱 카르스트 풍경구(武隆喀斯特景区).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카르스트 지형'을 가진 곳이다. 아마 중고등학교 때 과학이나 한국지리를 배웠다면 들어봤을 바로 그 카르스트 지형 말이다. 물에 녹기 쉬운 암석, 특히 석회암 성분이 많은 대지에 빗물이 닿아 불규칙적인 용식이 벌어지면서 만들어진 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은 우리나라의 단양, 제천, 영월 등지의 석회동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중국의 카르스트 지형 지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계림산수갑천하'의 구이린(桂林)인데, 이곳 충칭의 우롱 역시 숨겨진 명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이곳이 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트랜스포머 4>의 촬영 때문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자로서 우롱이라는 곳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중국의 여행지가 배경으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실제로 우롱은 입구에서부터 아래와 같이 트랜스포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내 취향엔 그다지 맞지 않는 여행지다. 일단 나는 자연 풍경만을 보는 여행지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멋진 풍경에 입을 떡 벌리고 연신 함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연 풍경을 보는 곳보다는 인문 환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더 내 취향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지 않았다. 로봇에도 관심이 없다. 충칭 지역연구에서 이곳을 가보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트랜스포머>의 광팬이었던 일행 때문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편도 4시간이나 걸리는 이곳을 차까지 대절해가며 가는 일정을 어레인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편도 4시간을 쓰면서까지 이곳에 왔다는 것이며, 이미 와버린 이상, 즐겁게 즐겨야 한다(既来之, 则安之).
한참을 입구에서 줄을 서가며 우리의 차례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입장을 했는데, 아니, 무슨 내리막이 또 있다. 그리고 그 내리막의 끝에 뭐가 있었냐고?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웬 엘리베이터? 보아하니 이걸 타야 진짜 우롱을 만날 수 있는 모양이다. 지형이 가파른 곳이라 오르막 내리막 기복이 심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인파를 따라 쭉 아래로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방금 우리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의 모습이 보인다. 저 길이를 내려왔구나.
이제부터는 카르스트 지형인 우롱의 면모를 관찰할 시간이다. 표면에 구멍이 뚫리거나 파여 들어간 돌들이 많고, 중간이 뻥 뚫려있는 벽도 많다. 사람들은 그 특이한 모양들에 하나씩 이름을 지어 별칭으로 부르고, 그 앞에서 설정샷도 많이 찍는다. 특히 칼 같이 생긴 틈이 있으면 어김없이 주먹 쥔 손을 앞으로 쭉 펼쳐 칼을 들고 있는 듯한 설정샷을 찍고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찍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대로 큰 재미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사진사 앞에서 주먹을 앞으로 쭉 내밀어 칼을 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사진들을 보고 혹자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가는 관광지 장가계(张家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장가계를 가보지 않아 동등 비교는 힘들지만, 추측컨대 장가계가 여기보다 좀 더 관광지로서 편의시설도 많고 잘 되어 있을 것 같다. 우롱은 그저 풍경을 보고 감탄하면서 쭉 걸어야 하는, 체력소모가 꽤 심한 코스다. 그래도 다행인 건 끄트머리까지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전기차 관람차가 있어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멋진 곳이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주마간산으로 볼 수밖에 없듯이, 나에겐 우롱이 그랬다. 사진을 참 여러 장 찍어두었는데 막상 지금 글을 쓰려고 보니 넣을 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풍경이 멋지고 자연의 신비가 대단하고 이런 사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행 타입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이곳의 사진 중에 꽤나 맘에 들었던 사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래 사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우롱의 풍경을 보러 내려가는 계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런 풍경이 보였다. 험준한 절벽들과 그 사이에 난 좁은 길 한쪽에 조성된(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은 후대에 만들어진 곳이다) 건물들. 개인적으론 이 풍경이 우롱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마지막 사진 자리에 넣어본다.
독자분들 중에 우롱에 가볼 분들이 계시다면, 덥다고 해서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지 마시고, 꼭 오래 걸어도 편한 운동화를 신기를 추천한다. 또 인증샷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미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사진을 찍으면 멋질지에 대해 공부하고 가시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중국 사이트 중에는 이곳의 여행 공략서를 올려둔 곳이 많은데, 거기에 있는 정보들도 참조할 만하다.
아무튼, 우롱은 홍요우 차오쇼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