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Aug 14. 2021

강은 역시 두 발로 건너야 제맛

충칭(重庆) 지역연구 2일차 (2)

충칭의 힙한(?) 식당


긴 시간의 우롱 관광을 끝내고 다시 장장 4시간의 빠오처를 타고 충칭 시내로 들어왔다. 아침 7시에 나가 점심때쯤 우롱을 한두 시간 본 게 전부인데, 빠오처 8시간의 여정을 빼고 나니 이미 저녁시간이 되었다. 차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시간을 보낸 터라 사실 점심에 먹은 차오쇼우가 아직 소화가 안 된 기분인데, 여행에서 한 끼를 놓치면 또 얼마나 아쉬운지 알기에 일단 저녁을 먹으러 가 본다.


저녁 식사 장소로 선택된 곳은 충칭 시내의 구이타이추팡(鬼太厨房). 빠오처를 타고 오는 길에 일행이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랭킹 높은 식당. 특별히 어떤 지방의 요리가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요즘 힙하다는 프라이빗 키친(私房菜)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사실 오기 전에는 프라이빗 키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일반 주택에 식당을 차려 운영되는 곳을 그렇게 지칭하는 것 같다. 중국어로는 쓰팡차이(私房菜). 실제로 이 구이타이추팡도 위 사진처럼 주택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식당을 찾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구불구불 복잡한 충칭 골목을 한 세 바퀴째 돌았을 때야 비로소 입구를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식당으로 영업하는 곳 외에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이라 소음 문제가 좀 있는지 엘리베이터에는 "이웃들이 살고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프라이빗 키친답게 인테리어 같은 부분들도 꽤나 세련되게 잘해놔서 깔끔하고 좋았던 식당이었다. 홍샤오로우(红烧肉), 새우, 굴소스 브로콜리 볶음, 징쟝로우쓰(京酱肉丝), 족발탕, 구운 갈비, 토끼고기 등 특이한 요리들을 나름대로 많이 시켰는데 이상하게 식사 후 찍어놓은 사진이 두 장 밖에 없다. 하나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할 때 '오리발(鸭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허페이(合肥)에서도 마셔봤던 찹쌀술(糯米酒)이다. 사진으로 남긴 기록은 몇 장 없지만, 충칭에 가게 되는 분이 있다면 한 번 가봐도 좋을 힙한 식당이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아직 영업도 하고 있고, 랭킹도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장강을 건너는 가장 좋은 선택, 쳰쓰먼대교(千厮门大桥)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서니 해가 다 졌다. 배가 차니 식당이 있던 주택가가 이제 좀 눈에 들어온다. 어둑어둑한 주택가가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충칭스럽다. 해가 이만큼 졌으니 아무래도 야경을 보러 좀 더 밖을 방황해야 할 것 같다.


지극히 충칭다운 모습의 주택가


그때 일행들 사이에서 장강(长江)의 야경을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아직 '충칭' 하면 떠오르는 멋진 야경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네이버에서 충칭을 검색하면 전날 저녁에 봤던 홍야동(洪崖洞)의 야경이 찍힌 멋진 사진이 나오곤 하는데, 이상하게 막상 홍야동에서는 그런 멋진 풍경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사진에는 반짝이는 홍야동의 전경이 찍혀 있는데, 홍야동의 정말 멋진 야경을 그 사진처럼 전경으로 볼 수 있으려면 홍야동 건너편에서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강을 건너가지?


충칭이라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강(长江)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람선을 타고 강의 북쪽, 즉 쟝베이(江北)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강의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두 루트 모두 우리 숙소가 있던 해방비 근처 챠오톈먼(朝天门)에서 시작된다. 아래 두 사진 중, 왼쪽에 있는 별 세 개 중 두 번째 별에서 맨 윗 별로 올라가는 것이 첫 번째 루트라고 하면, 오른쪽 사진의 파란색으로 표시된 루트가 바로 케이블카 루트다.



사실 처음 우리가 장강을 건널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두 번째 루트였다. 아무래도 케이블카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에 대한 약간의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묵고 있는 숙소에서 케이블카 예약도 잡아준다고 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숙소 로비에 앉아 있던 차였다.


그때 눈앞 스크린에 보이는 네 자리의 숫자. 저게 뭐지? 눈을 크게 뜨고 그 밑에 있는 글자를 읽으니 이렇게 쓰여 있다. "케이블카 대기 인원".... 그러니까, 몇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지금 케이블카를 타려고 대기를 걸고 있다는 것인가? 순간 이 플랜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빨리 플랜 B인 유람선 루트를 찾아본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방금까지 케이블카로 강을 건너는 것의 좋은 점을 찬양하고 있었던 우리가, 이젠 유람선을 탄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며 역시 유람선으로 가는 루트가 야경을 보기는 최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후기가 보인다. 유람선은 비용에 비해서 환경도 좋지 않고, 담배 크리를 맞을 확률도 높다는 이야기.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두 발 뒀다 뭐해?


그래, 남는 게 시간이요, 체력이라고, 두 다리로 직접 장강을 건너는 루트가 있는데 왜 그렇게 가지 않는다는 말인가! 사실은 별로 젊지도, 주어진 시간이 많지도 않은 우리들이었지만, 저녁에 먹은 오리발이 우리에게 강을 건널 용기를 주었는지 그땐 갑자기 걸어서 강을 건너는 게 무척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두 발' 루트가 바로 장강을 건너는 숨겨진 방법이었다. 그리고 강도 건너고 야경도 보기 가장 적합한 루트라고 판단된 다리가 바로 쳰쓰먼대교(千厮门大桥)였다. 그리고 우리는 무작정 바이두 지도를 켜고, 쳰쓰먼대교의 시작점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위 사진을 보고 '햐아- 다리가 참 멋지네'라고만 생각하셨다면 그 아래 그 멋진 다리를 건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보시라. 왼쪽 사진이 바로 다리를 건너는 시작점, 챠오톈먼(朝天门)이고, 오른쪽 사진이 그 챠오톈먼에서 다리 쪽을 내려다본 모습이다. 이 인파를 보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지만 이런 인파에 둘러싸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뒤를 돌려고 몸을 돌리면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 당혹스러움을. 이럴 때 방법은 딱 하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고 콩나물시루가 되어 직진하는 것. 그렇게, 우리는 콩나물이 되었다.


콩나물이 된 후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막상 콩나물이 될 각오를 하고 다리까지 펭귄 걸음으로 아장아장 내려오자, 이제야 좀 더 주변 풍경을 마음 놓고 볼 여유가 생겼다. 강 건너편의 충칭, 그리고 다리 주변으로 보이는 충칭은 구불구불한 차도와 그 위를 달리는 차들, 밝은 빛을 뿜는 마천루들로 가득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보는 충칭은 마치 푸시에서 푸동을 바라보던 그 풍경과 유사했다. 특히 충칭 대극장(重庆大剧院)은 그 특이한 외관과 색색의 LED 조명으로 건물의 이름을 몰랐던 우리들조차 바이두를 꺼내 이름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충칭 대극장(重庆大剧院)의 모습


어느덧 콩나물시루는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뭔가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LED로 치장된 벽이 강 건너편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까이 가서 그 글씨를 읽어보니 "충칭, 천리를 가고 크고 넓음에 이르리라(重庆,行千里,致广大)"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뭔가 의미가 있는 말인가 해서 찾아보니 18년 3월 제13회 전국 인민대회의 충칭 대표단 회의에서, 충칭 시위원회 서기인 천민얼(陈敏尔)이 충칭의 캐치프레이즈로 이 구절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원문은 "중경행천리, 가이치광대(重庆行千里,可以致广大)"라고 하는데, 그 해설이 일품이다. '천(千)'과 '리(里)'를 합치면 충칭의 '중(重)' 자가 되고, '광(广)'과 '대(大)'를 합치면 충칭의 '경(庆)' 자가 된다고 해서 생각해낸 파자(破字)식 어구인 것이다. 비록 간체자의 파자이지만.



건너편에 도착했으니, 이제 우리가 방금 건너온 쪽의 야경을 보고, 이제 다시 우리의 숙소가 있는 건너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돌아가는 루트로 가기 위해 다리의 시작점으로 향하는데, 이런 풍경이 보인다. 아! 저 풍경이다. 충칭 하면 나오는 야경의 그 모습. 건너편 홍야동(洪崖洞)의 화려한 야경이 쳰쓰먼대교(千厮门大桥)의 모양과 마천루의 불빛과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스카이라인과 기울어진 것 같이 보이는 홍야동의 모습이 입체감의 도시 충칭을 잘 드러낸다. 왜 충칭 하면 이 풍경을 떠올리는지 알 것 같다.


충칭, 제가 찍었습니다!


한참을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건너편의 저 황홀한 야경을 바라보면서.


라고 적어두니 뭔가 굉장히 낭만적인 장면일 것만 같지만, 실상은.. 저 풍경이 다 보이는 지점까지 왔는데, 다리 쪽 난간에 도무지 자리가 나질 않았다. 빈 틈이 조금만 있으면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이걸 위해서 두 다리로 콩나물이 되는 수모까지 참고 건너왔는데! 정말 난간에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아무래도 충칭에 여행 온 사람이 우리 같은 한국인만은 아닌 모양이다. 중국 내에서도 많은 여행객이 몰리는 도시답게 야경을 보고 흥분한 많은 중국인들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결국 한참을 멍 때리고 나서야 겨우 약간의 틈이 보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비집고 들어가 저 멋진 야경을 찍었다. 이렇게 쉽게 자리를 내주고 싶지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서 있진 못하고, 결국 뒤이어 온 중국인의 기세에 밀려 자리를 내주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가져다준 충칭 두 글자


원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게 마련 아니겠는가. 이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바로 저 뒤에 보이는 충 칭 (重庆) 두 글자에 있다.


다시 돌아가는 다리를 건너던 우리 콩나물 무리에게 보인 저 건물의 전광판. 안경 회사랑 피트니스 센터 홍보물이 나오길래 그저 광고만 나오는 전광판이겠거니 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거기서 갑자기 충칭 두 글자가 등장한다. 앗! 후다닥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보려는데 이미 전광판의 글자는 안경 회사 광고로 바뀐 상태.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관광객의 압박도 참아내면서 우리는 충칭 두 글자에 집착해본다. 왜냐고? 언제 또 저기 충칭이 걸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겠나 싶어서. 사실 다리 난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겨우 사진을 찍었을 그때 저 사실을 알았다면 좀 더 기다려서 성공했을 텐데, 아쉽지만 다시 돌아갈 순 없다. 이거라도 찍은 데 만족하면서 강을 건널 수밖에.



마무리는 충칭 포장마차


강을 건너 다시 해방비 근처로 왔는데, 이상하게 충칭의 밤은 아직 한창이다. 마침 어제저녁에 숙소 근처에서 봐 둔 포장마차가 생각나서 그리로 향한다. 충칭식 꼬치구이를 파는 곳이었는데, 이미 몇 테이블이 차 있어서 믿음직스럽다. 물론 중국의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땐 위생 같은 건 약간 포기하고 먹어야 하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내 위장이 튼튼한지 나는 길거리에서 사 먹고 탈이 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불에 굽는 중국식 바비큐를 중국어로 샤오카오(烧烤)라고 부르는데, 충칭의 샤오카오는 다른 지역과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저렇게 꼬치째 구운 뒤 그냥 내오는데, 여기는 일단 다 구워진 고기나 채소를 한 번 더 향신료 등에 버무려준다. 그래서 꼬치구이의 맛보다 쯔란 같은 중국식 향신료의 맛이 좀 강해 간이 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간이 세다면 뭐다? 안주로 딱이다! 그래서 맥주가 술술 들어가는 장점 아닌 장점(?)도 있다. 아마도 맵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충칭의 입맛에 맞춘 조리법이 아닌가 싶다.


오늘의 맥주는 충칭 츈셩(重庆纯生). 옆집에서 팔고 있던 수박도 잘라서 꼬치구이와 함께 먹으니 일품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다른 충칭 시민들을 벗 삼아 이틀 간의 충칭 일정을 복기하며 일행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숙소도 바로 앞이니 거리낄 것은 없다.




[충칭 2일차 일정]



매거진의 이전글 우롱(武隆)의 존재감을 압도한 만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