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Aug 15. 2021

충칭까지 와서 돌이라니!

충칭(重庆) 지역연구 3일차 (1)

충칭까지 와서 돌이라니!


충칭에서의 셋째날. 오전 첫 일정으로 잡아둔 곳은 대족석각(大足石刻)이라는 곳이다. 역시 충칭 교외에 있는 곳이라 어제 예약해둔 빠오처를 한 번 더 이용하기로 했다. 앞서 우롱(武隆)에 가기를 그렇게 원했던 일행이 가고 싶어 하던 또 다른 여행지인 이곳은, 이름부터 진한 '돌'의 향기가 풍겨온다.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고, 세계 8대 석굴 중 한 곳이고, 충칭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곳이고.. 등등등 그가 열심히 이곳에 왜 가봐야 하는지를 피력하는 동안 내 머릿속엔 하나의 단어만 떠오른다. '제2의 우롱....?'


충칭까지 와서 돌을 봐야 한다니. 당시 솔직한 나의 심정은 이랬다. 앞서 우롱(武隆) 편에서도 말했지만, 자연환경 위주의 관광명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 멀리 갈 수 있는 기동력도 확보된 상황이고, 충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연환경 역시 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기에 충칭에 대해 공부하는 차원에서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곳은 충칭 교외 따주현(大足县)에 위치한 여러 곳의 산에 당, 송 때부터 조각된 석조 조각물이 모여 있다고 하여 따주스커, 즉 대족석각(大足石刻)이라고 불린다. 특히 이곳에 있는 마애석굴이 중국에서 가장 정교하기로 소문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불교 조각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불도 모두를 포괄하는 조각물들이 모여 있어 당시의 문화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조각들은 크게 바오딩샨(宝顶山, 보정산), 베이샨(北山, 북산), 난샨(南山, 남산), 스먼샨(石门山, 석문산), 스쫜샨(石篆山, 석전산), 이렇게 다섯 곳의 산에 퍼져 있는데, 그중에서 바오딩샨에 그 집적도가 가장 높아 관람객들은 주로 이곳을 방문하곤 한다.


숙소에서 바오딩샨까지는 빠오처를 타고 편도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정. 그래도 어제의 우롱처럼 네 시간을 주구장창 차 안에서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아침부터 꿈꿈하던 날씨에 불안했던 예상이 적중되어, 바오딩샨에 도착하니 이미 땅은 온통 젖어 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우산을 써도 어떻게든 젖게 되는 보슬비 류의 비라서 오히려 더 성가셨다. 이런 관광지에서는 꼭 비가 올 때마다 비닐 우비라는 아이템이 매점에 등장하는데, 나는 챙겨간 양산 겸 우산이 있어서 그냥 그걸 사용했다. 비닐 우비는 이후 시안(西安) 등지를 여행할 때 사 입게 되니, 그때 후기를 남겨보도록 하겠다.


입장권과 바오딩샨 표식


우산을 썼음에도 왜인지 머리카락은 젖어 있는 기묘한 현상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구매한 입장권. 인당 115위안으로, 역시 한 만 오천 원에서 이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의 이런 관광지에서 이렇게 표를 구매하고 난 뒤에는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보면 표에도 작게 쓰여있긴 하지만, 하도 불법적으로(?) 관광지에 잠입해 들어오는 관광객이 많아 중간중간 새로운 스팟이 나올 때마다 검표를 다시 진행하는데, 이때 입장권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표를 이미 샀으니 검표를 다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입장권을 가지고 몇 번의 돌문을 지나가면 드디어 석굴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유불도에 조예가 깊거나 불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사실 석굴이나 조각 자체를 보고 어떤 종교적인 의미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대략 각각의 조각물이 어떤 의미로 만들어졌는지는 조각물 이름이 소개된 안내판 옆에 있던 QR코드를 찍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료로 가이드를 받지 않아도 이렇게 휴대전화만 있으면 손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물론 그 설명이 중국어만 있었다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위에 보이는 석굴은 유본존십련도(柳本尊十炼图)라고 하는데, 유본존의 열 가지 고행을 표현한 석굴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조각들을 돌에다 정교하게 새긴 것도 신기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조각 밑에 깨알같이 그 그림이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글로 적혀있는 부분이 나는 더 인상적이었다. 옛 중국에서는 불경을 필사하면서 마음 수련을 하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조각하고 글을 쓰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내세를 위한 구복 과정이었을지 궁금하다.



이 석굴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신과 함께>로 알기 쉽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십구재 전까지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에 나왔던 각종 대왕들이 거울과 저울 등을 가지고 어떻게 그 사람의 행방을 결정하는지 등의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된 결과가 바로 옆에 또 석굴로 표현되어 있다.



위에 보이는 부분은 그래도 꽤 좋은 평가를 받아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구품의 일부를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고, 다들 평화로운 분위기에 온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사십구일의 과정을 지나 조금 더 옆으로 가보면 이렇게 바퀴처럼 생긴 조각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윤회판(轮回盘)이란다. 마지막엔 이 바퀴를 돌려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동물도 있고.... 다양하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다 보고 뒤를 돌아보니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석굴이 있었는데, 이미 들어간 사람이 꽤 많았다. 왜 그런고 하니...



바로 이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수관음(千手观音). 전해지기로 대족석각에 있는 이 금박 천수관음은 1007개 손이 있다고 한다. 유명 관광지일수록 미리미리 여행 공략을 숙독하고 다이제스트로 보길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미 입장권을 가지고 이곳에 온 순간 바로 이 천수관음 앞으로 직행한다. 어벙한 우리는 반 박자 늦게 이 관음보살 앞에 선다.


남송 시대쯤 만들어졌다는 이 천수관음에 대해 2000년대 들어 컴퓨터 기술로 그 손의 개수를 세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830개밖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그가 1007개 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청나라 때 어떤 세공인이 이 관음상에 금박을 씌우려고 갔다가 겸사겸사 팔의 개수를 세었는데 1007개가 나왔다고 해서란다. 컴퓨터의 셈이 잘못된 이유는 아무래도 알고리즘에 따라 팔을 세다 보니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팔들은 누락될 수 있어서라고. 뭐 800개든 1000개든 팔이 많은 건 많은 거니까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상관없겠지만 저작권자인 중국의 입장에선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여기서는 사실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천수관음, 천수관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그 수많은 팔이 주는 기묘한 조형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 팔 하나하나에 뭔가 물건을 하나씩 다 쥐고 있었다. 이후에 찾아보니 사람들이 관음보살에게 하도 다양한 소원을 빌어서 그 나약한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려다 보니 점점 다양한 도구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팔마다 다른 도구가 들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송나라 때 만들어졌으니 송나라 때에도 이미 사람들의 욕망은 부처가 다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 어느 시대든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이곳의 명물로 손꼽히는 또 하나의 조각상이 바로 위에 보이는 석가열반성적도(释迦涅槃圣迹图)다. 반신와불상인 이 석상은, 높이가 5 미터, 길이가 31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신와불상이란다. 그 규모도 규모지만 나는 이 석상을 보면서 석가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이미 세상의 혼돈이나 불길은 머릿속에 전혀 남지 않은 그 평화로운 느낌이 눈매와 입가에서 느껴졌다.



본 게 그다지 많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출구가 나왔다. 출구 앞에는 오른쪽 사진처럼 안내문이 있다. The Dazu Rock Carvings라는 영어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홍보하는 것 안내문이다. 돌조각이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이런 안내판도 돌에 새겨 만들어놓았다. 조각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보지 않으면 사실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보고 넘어가서 너무 빨리 관람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혹시 중국어를 잘 못하는데 이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미리 관련 서적을 보고 배경지식을 좀 공부해둘 것을 추천한다. 안 그러면 남는 것이 금박 천수관음 하나밖에 없는 관람이 될 수 있다.



수국으로 기억될 성수사(圣寿寺)


출구를 빠져나와 특이한 지붕을 가진 풍경을 보며 조금 이동하다 보면 성수사(圣寿寺)라는 절을 발견한다. 남송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절은 중국에선 밀종(密宗),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진언종이라고 알려진 불교 종파의 사원이다. 남송 시대 조지봉(赵智凤)이라는 승려가 만들었으나 전란으로 인해 오래 가진 못했고, 결국 명청대, 또 20세기까지도 재건한 후의 모습이 지금 볼 수 있는 사원의 모습이다. 바오딩샨에서 볼 수 있는 석각 중 대부분이 이 성수사의 승려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향을 피우는 연기와 냄새에 숨 쉬기 힘들어지는 것은 여느 사원에 갔을 때와 같지만, 종파가 티베트 불교 계열이라 그런지 향뿐 아니라 아래와 같이 길상등(吉祥灯)이라고 해서 초를 밝히는 보시도 가능하다. 한 개에 5 위안이라고 하는데, 영험한지는 모르겠다. 원래 영험한지 아닌지는 다 마음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이곳은 아무래도 종파가 중국의 주류 종파와는 다소 달라서 그런지 사원 전체적으로 지붕 모양이 정말 특이하다. 입구의 지붕과 처마는 마치 크게 성난 배추도사의 수염 같고(헙.. 좋은 비유가 떠오르지 않아 죄송합니다), 어떤 곳에는 태국이나 미얀마 쪽을 떠올리게 하는 지붕 장식도 보인다.



하지만 이 성수사를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수국'이다. 지역연구를 갔을 때가 마침 6월 초라 그런지는 몰라도 사원 안쪽으로 색색의 수국이 가득 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침 내리던 비도 그쳐 가고 있어 물기를 머금은 수국 잎이 더 청초하게 느껴졌다. 수국이 있어서인지 사원 전체의 인상이 상하이에서 나들이할 때 보았던 정안사(静安寺)의 모습과 비슷한 듯 달랐다.


혹시 이후에 성수사를 찾을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6월 초쯤 사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원에 오게 되면 입구에서만 머물지 말고,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머리가 어지러운 입구의 향내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사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으로 들어와야 이 절의 마스코트인 수국도 볼 수 있다. 가끔 경내를 지나가는 승려분들이 주는 현실감은 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은 역시 두 발로 건너야 제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