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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24. 2021

극과 극, 상해 먹거리

얼마 전 회사 상사께서 상하이로 출장을 나가신다면서 내 자리에 오셔서 상하이에서 뭘 먹고 와야 하는지 물어보신 적이 있다. 명색이 상하이에서 1년을 살았던 사람이니 뭔가 깔쌈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내게 오신 것인데, 시원하게 답을 못 드려 뻘쭘했던 기억이 난다.


상하이에 맛있는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음식, 다른 지역에서는 못 먹을 음식을 찾자니 잘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랬다. 유명하다는 게 요리 따자셰(大闸蟹)가 있지만 이건 사실 상하이 요리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강소성 일대의 유명한 요리인 셈이고, 그렇다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총요우빤몐(葱油拌面)을 추천하자니 이건 또 너무 서민 음식이고. 엄밀히 말하면 상하이라는 도시의 요리는 결국 강소성, 절강성 요리와 그 맥을 같이 하니 상하이 요리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고. 결국은 그나마 생각나는 샤오롱바오(小笼包)를 추천드렸다. IFC몰에 가면 있는 러신황챠오(乐心皇朝)의 오색찬란 샤오롱바오를 말씀드리며.


상하이라는 도시는 지금이야 베이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수도로 대접받고 있지만 그 도시 자체의 특별한 역사가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전에는 강소성의 일부였을 뿐이니. 사실 이 도시만의 특별한 음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상하이라는 도시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말 '하이나바이촨(海纳百川,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말)'처럼 다양한 도시, 국가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한 곳이기에, 이 도시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보단 이 도시에 얼마나 다양한 음식이 모여있는지를 생각하는 편이 상하이엔 훨씬 맞는 명제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상하이에 있을 때 못 먹어본 나라나 도시의 요리가 없었다. 일본 요리는 물론이고 한국, 동남아, 유럽, 인도까지 다양한 국가의 요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물론 진짜 구현도 높은 그 나라의 요리를 찾으려면 발품을 좀 타야 하긴 했지만 우연히 들어가 봤는데 셰프가 그 나라 사람이라든가 하는 즐거운 조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요리들보다 나의 입을 사로잡은 건 역시 상하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로컬 맛집들. 그 지역의 재료, 그 지역의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든 요리는 당연하게도 맛있었고 당연하게도 가격이 착했다.


묘하게도 6월 초 사진첩에 있는 사진들이 절반은 하늘 사진, 절반은 음식 사진이어서 또 한 번의 사진첩 털이를 해본다. 힙한 분위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부터 외국인 손님 한 명 없는 로컬 식당까지 그 분위기는 극과 극이지만 그 갭 또한 상하이다.




#1. 시작부터 이탈리안. 다른 지역전문가들과 월말 비용 정산 및 한 달 간의 활동 정리를 위해 모였을 때 먹은 것들. 5월 정산 모임은 창핑루(昌平路) 근처에서 하기로 했기에 창핑루 역 근처의 이탈리안 식당을 갔다. 파스타와 샐러드, 리조또, 피자 등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탈 중국적인 맛이 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글을 쓰려고 이곳의 이름을 찾아보려 했는데 잘 검색이 안 된다. 혹시 그새 문을 닫은 것일까? 맛은 괜찮았지만 가성비는 그다지. 아무래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정안사 근처 동네다 보니 물가가 좀 비싼 것 같다.



#2. 2019년 6월 4일, 예전에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과장님께서 마침 상하이에 살고 계셨는데, 귀국 전 친히 밥을 사주겠다고 하셔서 모인 자리였다. 이분은 흔히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고 묘사되는 주재원 배우자셨는데, 이미 중화 영업을 하다가 남편분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상하이로 오신 케이스라 다른 주재원 배우자들과 비교하면 월등히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약 4년간 상하이 골목골목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쌓은 데이터베이스가 참 많으셨다. 우리가 모였던 이 식당 역시 그 데이터베이스 중 한 곳이었는데, 프랑스 조계지에 있는 식당이다 보니 분위기도 좋았고, 평일 낮에 생맥주와 함께 곁들여 먹는 요리가 참 맛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식당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같이 먹는 분이 너무 부러워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나 보다.



#3. 요리의 이름은 총요우훈툰(葱油混沌). 이전 글에서 소개한 총요우빤몐(葱油拌面)의 훈툰(만두) 버전이다. 파 기름을 잘 내는 식당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는 메뉴. 게다가 만두는 나의 최애 요리다. 상하이에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요리가 훈툰이나 물만두가 아닐까 싶다. 곳곳에 '라오상하이 훈툰(老上海混沌) 가게'가 워낙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간편 요리 가게(小吃店)의 단점이 하나 있다면, 상호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가게도 로컬 주민들이 많이 오는 가게였는데, 막상 식당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그냥 라오상하이 훈툰 가게였을지도.



#4. 하하하, 이번엔 가게 이름을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마침 간판 사진을 찍어놨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에선 안 찍은 간판 사진을 왜 찍었냐면, 여길 데리고 온 친구가 상하이에서 여기 샤오츠(小吃), 특히 궈티에(锅贴)가 제일 맛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친구 집 근처니까 상당히 주관적인 평가일 순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찾았을 때 가게 안엔 이미 사람들로 만석이었고, 우리는 공원 식당에서처럼 또 모서리 자리로 끼어 앉아 먹어야 했다. 아무래도 로컬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원랜 한국의 군만두와 유사한 궈티에를 먹으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품절이어서 난샹 샤오롱(南翔小笼)과 당시 내 최애였던 총요우빤몐(葱油拌面)을 시켰다. 샤오롱바오가 9위안에 면이 7위안이니 둘이서 16위안에 한 끼를 뚝딱 하는 셈인데, 한국 돈으로 3천 원도 채 안 되는 돈이라 확실히 로컬 사람들이 오는 식당은 물가가 싸다는 느낌이 든다. 맛도 그럭저럭 괜찮으니 가성비 갑이다!



#5. 이색 식품. 사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사진을 찍었던 물건이다. 상하이에서 식자재 마트에 갔을 때 발견한 것인데, 이름은 씨아폔(虾片), 즉 새우칩이다. 말 그대로 이걸 튀기면 우리가 아는 그 알새우칩이 된다고 한다! 원형은 이렇게 젤리 같은 색감이었다니, 이미 알고 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신기해서 공유.



#6. 드디어 등장, 초두부! 루쉰공원 앞에 있는 집인데, 지나갈 때마다 냄새도 힘들어하는 주제에 한 번 먹어보고는 싶다고 하는 이 한국인을 보고 상하이 친구가 데리고 가 준 가게다. 후난 창샤(长沙)가 초두부의 고향으로 유명해 중국 전역에는 창샤 초두부(长沙 臭豆腐)라는 이름의 상호가 아주 많은데, 아쉽게도 창샤에 가보질 못해서 실제 그곳에서 먹는 초두부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진 못했다. 원조는 원조라고, 소문에는 창샤에서 먹는 게 훨씬 냄새가 심하다고는 하던데.


처음 가본 초두부 가게 앞은 이미 그 향긋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초두부 몇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약간 매콤한 양념장 국물을 뿌리고 고수와 쏸차이(酸菜) 같은 고명을 얹어주는데, 초두부 구성을 어떻게 할지 손님이 정할 수 있다. 추측컨대 초두부는 발효 정도에 따라 일반 두부와 비슷한 색깔의 '순한 맛', 검은색 표면을 가진 '진한 맛'으로 나뉘는 것 같은데, 순한 맛 100%, 진한 맛 100%, 혹은 반반도 가능하다. 두 종류의 두부를 비교해보기 위해 반반으로 주문했다. 순한 맛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냄새도 별로 안 나고 그냥 두부조림 먹는 맛이길래 용기를 내 진한 맛 한 입을 먹었다가 그대로 뱉을 뻔했다. 순한 맛은 괜찮다. 친구는 순한 맛만 먹으면 초두부를 먹은 게 아니라며 구시렁대었지만.



#7. 내가 상하이에 있을 당시 왕홍(网红, 인터넷 스타) 아이스크림이라며 여기저기 올라왔던 아이스크림이다. 샹강허지(香港合记)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계란 노른자 아이스크림(双蛋黄雪糕)인데, 사실 그냥 모양만 그렇게 생겼고 노란 부분이 망고맛 같은 다른 과일맛으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알고 샀다. 하지만 웬걸? 한 입 베어 무니 그냥 계란 맛이었다. 말 그대로 계란 맛. 중국, 특히 남방에는 이 계란 노른자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출시된 아이스크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인 내 입맛에는... 계란 비린내가 났다. 그래도 이 아이스크림에 도전한 뒤 위챗 모멘트에 글을 쓰자 많은 친구들이 중국인이 다 되었다며 칭찬해주었다. 한국이었다면 인스타용 아이스크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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