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Aug 02. 2021

음식남녀 (饮食男女)

본능에 대하여


■ 원어 제목: 음식남녀 (饮食男女, 인스난뉘)

■ 영어 제목: Eat Drink Man Woman

■ 장르 : 드라마 / 가정

■ 년도 : 1994

■ 감독 : 李安

■ 주요 배우 : 郎雄,吴倩莲,杨贵媚,王渝文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음식남녀(饮食男女)>입니다. 이전에 소개드렸던 작품 <색, 계(色, 戒)>의 감독인 리안(李安)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죠. 1994년 미국에서 개봉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년 1월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또우빤에서 평점 높은 중국 영화를 도장깨기 해보자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1994년에 나온 영화인데 아직까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니! 어떤 영화이길래 그런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죠.


영화는 디테일하고 맛깔나는 요리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아버지의 직업은 셰프. 딸들과 함께하는 만찬에서 먹을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죠. 특히 생선에 칼집을 낸 뒤 칼집 사이사이로 기름을 흘려 부어 튀겨내 생동감 있게 튀어 오르는 모습을 만들어낸 쏭슈꾸이위(松鼠桂鱼)를 만드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요리는 실제로 리안 감독이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라고 하니 그 레시피를 상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첫 장면을 보고 저는 이 영화가 '요리'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부터 보세요. '음식남녀'라니! 이 얼마나 요리 영화로 오인하기 쉬운 제목입니까?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죠. 영화의 제목인 '음식남녀'는 '음식'이 '남녀'를 수식하는 형태로 읽혀서는 안 되며, '음', '식', '남', '녀'가 각각 하나의 단어로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음'과 '식'은 합쳐진 명사가 아니라 각각 마시고 먹는, 동사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거죠.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시면 이런 오해는 바로 풀립니다. 'Eat', 'Drink', 'Man', 'Woman'. 이 얼마나 정직하고 정확한 번역인지요!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은 응당 어떻게 읽혀야 할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 고전의 한 구절을 알아두셔야겠습니다. 그건 바로 '음식남녀, 인지대욕재언(饮食男女,人之大欲在焉)'이라는 말이죠. '먹고 마시는 것과 남녀 간의 일, 인간의 욕구는 거기에 있다'라는 뜻의 이 말은 <예기(禮記)>에서 나온 말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식색, 성야(食色, 性也)'라는 말이 있겠네요. 이 말들이 바로 이 영화의 출발점입니다. 다른 얘기로, 이 영화는 인간 본연의 욕구, 즉 본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요리 영화인 줄 오해할 만큼 요리 장면이 잔뜩 나왔으면서, 또 갑자기 웬 본능? 의아하게 여기실 분들이 계실 텐데, 영화는 '미각'과 '성욕'을 저울질하며 나이가 어리든 많든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는 재미를 해칠 수도 있어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아버지의 미각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서사라면, 그 세 명의 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본인이 추구하는 이성을, 혹은 이상을 만나는 것이 이야기의 작은 서사죠. 그리고 리안 감독의 영화답게 이 모든 서사에서 버려지는 인물이 없고 디테일합니다.


영화는 두 시간 정도 길이입니다.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궁금한 마음도 있었지만, 90년대 대만의 거리와 지금 기준으론 레트로 하게 느껴지는 배우들의 착장을 보는 맛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시간이 없어 볼 엄두가 안 난다고 하시면, 한국 방송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나왔던 부분만 다시 보기로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현직 셰프들이 패널로 등장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본능을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특별하게 풀어낸 영화, <음식남녀(饮食男女)>. 그럼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새해 첫 영화. 또우빤 평점 높은 영화들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음식남녀, 인지대욕이라.. 아버지가 미각을 회복하는 것은 남녀 간의 애정이 생겼기 때문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반개희극(半个喜剧)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