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의 진짜 의미
■ 원어 제목: 반개희극 (半个喜剧, 빤거씨쥐)
■ 영어 제목: Almost a Comedy
■ 장르 : 코미디
■ 년도 : 2019
■ 감독 : 周申,刘露
■ 주요 배우 : 任素汐,吴昱翰,刘迅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2019년 12월 20일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반개희극(半个喜剧)>입니다. 한국에도 '스마트시네마'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인데, 한국에서 소개되었던 제목은 <내 남자친구는 착쁜놈>입니다. 나름대로 의역해서 제목을 정한 것 같은데, 아마 중국어 제목 그대로 직역할 경우 화제성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 같아 '한국화'한 제목인 것 같네요. 영화 내용과 찰떡으로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도 제가 중국에 있을 때 개봉했던 영화라 중국 영화관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12월 23일이었는데, 티켓을 찾아보니 상하이 인민광장 근처에 있는 영화관이네요. 영화를 보고 나니 비가 쏟아져서 비를 거의 맞으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쯤 되면 제게는 꽤나 사연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의 제목인 <반개희극(半个喜剧)>은 '반쯤 코미디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장르도 코미디로 분류되어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인물들이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 코믹한 편이지만 이런저런 중국 사회의 현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영화라 보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게 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믹 외에 다른 장르로 구분하기는 다소 어렵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다소 풍자적으로 붙여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영화 속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명의 여자, 두 명의 남자. 영락없는 삼각관계의 그림이고 실제로도 삼각관계가 나오죠. 여자는 독립적이고 My way로 생활하는 사회인, 남자 1호는 부잣집 출신에 부러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는 사람, 남자 2호는 시골 출신에 남자 1호 덕에 북경에 올 수 있었던 아티스트 지망생. 이렇게 단순하게 묘사했는데도 대충 이야기가 짐작이 가시지 않나요? 여자는 남자 2호에게 마음이 가고 남자 2호도 여자를 좋아하지만, 남자 2호는 남자 1호 눈치를 보느라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그림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중국 사회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호구(户口, 후커우) 문제 앞에서 이 세 명의 인물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느라 동분서주하는 장면 장면들이 '반쯤 코미디 같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 이 풍자적 제목의 배경입니다.
사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완벽하지만은 않습니다. 스토리는 나쁘지 않지만 인물들의 설정이 좀 과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해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런 느낌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카이신마화(开心麻花) 제작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카이신마화에 대해서는 지난 리뷰 중 하나인 <하락특번뇌(夏洛特烦恼)>에서 소개드린 바 있는데요, 본래 연극을 주로 하던 극단에서 출발한 제작사입니다. 스토리의 전개나 인물 설정이 과장되었다고 느끼게 되는 배경에는 본래 무대극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대본과 연기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대극으로 보았다면 문제없었을 수 있지만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약 1년 전부터 영화의 준비를 함께 해왔는데요, 한 줄 한 줄 쓰여있는 대본이 없이 감독이 준 상황 설정에 맞춰 연기자들이 먼저 즉흥 연기를 하고, 거기서 적절한 대사가 나오면 그 대사를 대본으로 옮겨 각본을 완성했다고 하니 극단 출신 제작사의 다소 극단적인(중의적입니다) 제작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쩌면 애초에 무대극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방금 언급한 그런 단점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상영 당시만 해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 영화는 최근 들어 다시 역주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또우빤(豆瓣) 플랫폼에서는 아직도 최근 인기 있는 코미디 영화 랭킹 7위에 들고 있죠. 이미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좀 의아하긴 합니다. 이 영화가? 왜?
역주행을 하는 콘텐츠들은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던 장점이 어느 순간 타이밍이 맞아 대중의 눈에 띈 경우가 많죠. EXID나 브레이브걸스도 다 그런 이유로 역주행을 한 것이고요. 이 영화가 중국의 대중들의 눈에 갑자기 띄게 된 이유는 그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2021년 지금을 살아가는 중국 대중들의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젊은 층이 늦게 결혼하는 현상이나 호구(户口, 후커우) 문제, 빈부격차나 베이퍄오(北漂, 지방에서 북경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슈 등, 지금 중국인들이 외면할 수 없는 키워드들이 다 담겨있죠. 영화는 이렇게 대중들의 눈에 띄어 역주행을 합니다. 중국 청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한 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참, 이 영화를 포함한 카이신마화 제작사의 영화에는 꼭 한 명 이상의 동북지방 방언을 쓰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중에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북경으로 와서 이래저래 고생하는 인물들이 많죠. 제작사 대표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 회사의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머릿속에 동북지방 말투가 윙윙윙 떠다닙니다. 이 지방 사람들이 말할 때 혀를 입에 잘 안 붙이거든요. 혹자는 입에 만터우(馒头, 중국식 빵) 조각을 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덕분에 외국인이 자막을 보지 않고 알아듣기는 좀 어려울 때도 있긴 하지만 아주 구수~한 동북지방 사투리를 들으시기에도 이 영화는 꽤나 적절합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요즘 참 역주행이 많네요. 역주행의 진짜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 <반개 희극(半个喜剧)> 이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체면 따윈 필요 없어. 난 네가 필요해" 남자는 왜 이 말을 그렇~게 늦게서야 말하게 되었을까?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연애 느낌 물씬 나는 영화. 보고 나니 베이징 말, 동북지방 말투가 머릿속을 맴돈다. 내용이 비교적 현실적인데, 인물 설정이 좀 과장되어서 스토리를 망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4점 준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