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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ug 22. 2021

충칭은 처음도 끝도, 너야

충칭(重庆) 지역연구 마지막날

스타벅스가 한산한 도시, 충칭


충칭에서의 마지막 날. 4일차 나의 일정표에는 분명 오전에 임시정부 같은 충칭의 명소들을 돌아본다고 적혀있는데, 정작 그 계획들 중에 실행된 것이 없다. 전날 술집거리 지우졔(九街)에서의 현지 탐험(?)이 너무나도 즐겁고 뜻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개의 도시 충칭에서의 마지막날 아침은 묵직한 숙취와 함께 느긋하게 시작되었다.


오전 시간은 삭제되었지만, 우리에겐 아직 점심을 먹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충칭의 마지막을 함께할 점심식사는?! 역시 훠궈로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기승전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이 도시에서는 어쩐지 처음도 마지막도 이 음식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지막 식사로 정한 훠궈 집은 충칭에서 로컬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훠궈 체인, 저우스슝(周师兄).



첫날 갔던 훠궈 집과 다르게 여긴 세 가지 탕(锅底) 선택이 가능하다. 충칭에 와서 처음 먹어본 오리 창자(鸭肠)를 또 시키고, 이런저런 고기와 야채를 넣어서 훠궈를 먹고 있으려니, 충칭에서의 3박 4일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도시가 벌써 이만큼의 추억을 내게 남겼구나 싶다. 그리고 그 아련함이 배가되는 시간은 바로 다 먹고 계산하러 나갈 때. 정말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시켰는데도 인당 비용이 얼마 안 나온다. 먹을 때마다 놀라는 충칭의 훠궈 가격.


다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해방비 근처가 온통 젖어 있다. 우리가열심히 훠궈를 먹고 있던 사이에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비가. 전날도 보슬비가 계속 왔었고, 이날도 아침부터 꾸물거리더니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싶다. 어쩔 수 없이 비가 좀 그칠 때까지 어딘가 들어가 있을 요량으로 생각해낸 곳이 결국 스타벅스.


만만한 게 카페다 싶어서 그렇게 한 건데 한편 좀 걱정이 된다. 충칭 사람들도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모두 스타벅스로 몰려들면 어떡하지? 상하이에서도 소나기가 오면 보통 가장 먼저 자리가 차는 곳이 스타벅스였기 때문에 든 걱정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있던 곳은 충칭의 번화가 해방비였으니.


하지만 완벽한 기우였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자 보이는 텅텅 비어있는 의자들. 사람도 세네 명 앉아있을까 말까였다. 신기하다. 인구가 그렇게 많다는 충칭이고, 갑작스럽게 비가 와서 피할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왜 스타벅스에 사람이 이렇게 없지?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방금 식당에서 배가 터지게 먹고 나온 훠궈가 인당 만 원 정도였는데,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면 오천 원이 나온다. 훠궈 집은 길에 널리고 널려서 경쟁이 치열한 탓에 가격도 전반적으로 싸고, 양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데, 스타벅스 커피값은 길에서 요깃거리로 사 먹는 충칭 소면보다도 비싸다. 충칭 사람들이 과연 비를 피할 요량으로 스타벅스를 들를 마음이 들까? 차라리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챠오쇼우(抄手) 하나 시키지 않을까?


찾아보니 스타벅스는 중국의 모든 도시에서 동일가를 적용하여 가격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선 도시든, 이선 도시든, 그 도시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가 전략을 갖고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도시에 사람은 많아도, 스타벅스는 한산한 그런 도시가 충칭이었다. 


하지만 중국 스타벅스 MD는 인정, 정말 귀엽다



안개도 지우지 못했던 도시, 충칭


언덕의 도시, 비의 도시, 안개의 도시.. 별명도 많고, 그만큼 매력도 무궁무진했던 충칭을 뒤로하고, 다시 옷장 안 제습제가 기다리는 상하이로 돌아간다. 충칭에서의 3박 4일 일정은 사실 빡세지는 않았지만, 교외로 나가는 일정이 많아 차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해서 체력적으로 좀 지쳤던 면이 있었다. 또 그 때문에 정작 충칭 시내의 명소들을 제대로 둘러볼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처음으로 빠오처(包车)도 해보고, 스타벅스에서 잘못 나온 음료로 클레임도 걸어보고, 9년 만에 홍야동(洪崖洞)도 다시 만나고, 사람에 치여 길 가다 아무 술집에 들어가 앉아도 보고, 처음 해본 일도, 오랜만에 해본 일도 많았던 즐거운 지역 연구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놀라게 했던 건, 훠궈의 가성비. 누군가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먹고 나면 한국에서 쌀국수 먹기가 싫어진다는데, 나는 충칭에서 훠궈를 먹고 나서 하이디라오(海底捞)는 절대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안개의 도시, 충칭, 하면 으레 소설 <무진기행>의 안개 자욱한 풍경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역연구로 오기 전 내게 충칭은 출장 때 호텔 창문으로 본 안개 자욱한 장강의 전경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지역연구 중에도 내내 안개와 비가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충칭이 개성이 없고 모호한 도시인 것은 절대 아니다. 언덕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비탈길과 언덕이 많아 그 어떤 도시보다 또렷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머물고 있던 도시가 산지가 거의 없는 상하이였던 내게 충칭은 상하이와는 완전히 다른 입체감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사람들도 그랬다. 여름밤의 더위와 습기를 이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충칭은 오히려 밤에 훨씬 활기를 띠는 도시였다.


사람도, 매력도 꽉꽉 차있던 도시, 충칭(重慶)은 아직도 그렇게 활력이 넘칠까? 다시 한번 쳰쓰먼대교에 서서 반짝반짝 홍야동을 바라보고 싶다.


충칭에서 상하이로,



[충칭 4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충칭 여행, 끝! 해방비, 홍야동, 대족석각, 츠치커우, 보정사, 쳰쓰먼대교, 마라훠궈, 샤오몐, 마라챠오쇼우.. 반리지, 마라마화... 산의 도시, 비의 도시, 그리고 안개의 도시. 산의 도시이기 때문에, 충칭은 입체감이 가득한 도시였다. 미녀도 많았지만, 먹거리도 너무너무 많았다. 게다가 가성비도 정말 좋았다. 그래서 술을 안 먹은 날이 없었지만......ㅠ 게다가 이번 여행 메이트 중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있었다.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충칭 시내를 제대로 돌아보질 못했다. 다음엔 그럴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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