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사랑니와 함께
3박 4일간의 충칭 지역연구가 끝나고, 상하이에 돌아왔다. 충칭에서는 날씨가 내내 꾸물꾸물하고 흐려서 약간 우울해질 뻔했는데 (날씨를 잘 타는 편), 상하이에 돌아오니 하늘이 개어 오랜만의 푸른 하늘을 만끽한다.
6월 11일, 이제 6월의 중순에 접어든 이 시점은 학기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즌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학기가 빨리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6월 초 정도가 되면 수업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기말 시험이나 보고서 일정이 공표된다.
어제 첫 기말 발표를 마치고 나니, 새삼 이렇게 즐거운 캠퍼스 생활도 곧 끝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앞선다. 학교 게시판에는 과목별 기말고사 시간표 옆에 졸업식 공지도 붙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비추던 햇살을 보며 교실로 향하는 것도, 학생들의 재잘재잘 수다로 가득 찬 학생식당에서 먹는 점심도 이제 곧 마지막이구나 싶다.
아무래도 정식 학부 수업이 아닌 어학당 수업이고, 세계 각국에서 온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은 곳이다 보니 필기로 기말고사를 보는 과목보다는 발표나 구술시험으로 평가하는 수업이 많았다. 그 일정도 하루에 두 과목 이상의 시험이 겹치지 않도록 학교에서 최대한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중국어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대학 수업을 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널럴하게 학기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널럴한 학기말인걸 어찌 알았는지,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잇몸이 팅팅 붓고, 머리까지 아플 정도의 욱신욱신한 통증. 사랑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일은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보통 2~3일 정도면 가라앉곤 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지역연구로 인해 비행기를 타는 일이 잦았고, 기압이 자꾸 변하면서 사랑니 근처 염증과 잇몸의 붓기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충칭에 다녀온 후 며칠간은 부은 쪽으로 좀 덜 씹고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엔 진짜 같다. 그동안은 알아서 잠잠해지던 통증이었는데 이번에는 점점 심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한 이틀 동안 너무 아파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외국에서, 그것도 중국에서 사랑니를 빼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랑니 때문에 한국에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터라, 급한 대로 홍췐루(虹泉路)에 있는 한인 치과를 찾았다.
염증 때문에 너무 부어 있을 때는 염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발치하는 것이 좋다던데, 처음 사랑니를 발치해보는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빼 달라고 하니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마취하고 발치를 진행했다.
비용은 800 위안, 한화로 15만 원 정도 하는 돈이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비용을 이야기하니 다들 미쳤다고 한다. 한국 의료보험 만만세라는 사실은 외국에 나와 보면 피부로 느낀다. 다만 비용을 한 번에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인지, 이후에 발치한 자리에 밥풀이 들어가고 좀 아프기도 해서 병원에 한 번 더 방문했을 때는 진찰 비용이나 약 처방 비용을 추가로 받지 않았다.
인생 첫 사랑니를 중국에서 빼게 될 줄이야! 사랑니를 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덕분에 잘 알게 되었다.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어쨌든 앓던 이를 빼니 후련한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참 다행히 학기가 끝나갈 때쯤 발치를 하게 되어서 며칠간 푹 쉬면서 죽만 먹고 폐인처럼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이럴 때는 또 몸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사랑을 알게 될 때쯤 나는 치아라고 해서 '사랑니'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사랑니를 '지치(智齿)', 즉 지혜의 치아라고 부른다. 영어로 사랑니가 Wisdom Tooth니, 중국어는 거기서 왔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나는 사랑니가 '똑똑한 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됐건 주인의 상황을 생각해 잘 기다렸다가 터져도 될 때 터져줬으니 말이다.
사랑니도 떠났으니, 이제 학기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둬 보자.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오랜만이야, 푸른 하늘아!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종강할 때가 되었다. 어제 벌써 첫 기말 보고를 마쳤다. 중국에는 "선시선종(善始善终)"이라는 말이 있다. 어쨌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캠퍼스 생활을 소중히 여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