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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Sep 04. 2021

매일을 행복하게

글씨는 마음에 안 들어도

사랑니 사건(?)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어느덧 6월 19일이다. 발치 자리가 아프고 붓기도 잘 빠지지 않아서 정말 며칠 동안 매일 죽만 데워먹었다. 그래도 며칠 그렇게 보내고 나니 이제 발치한 쪽으로도 조금은 씹을 수도 있게 되었고, 기말고사도 있으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서예 수업에 간다. 그동안 단오절 연휴다 지역연구다 사랑니다 각종 이유(라고 적고 핑계라고 읽는다)들로 학원 수업을 계속 미뤘었는데, 더 이상 미루면 진짜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오랜만에 다시 먹물 부스트 하기 위해 가기로 했다. 가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가면 수업은 재밌다.


오늘 수업에서는 지난 시간까지 가로획, 세로획을 배운 데 이어 비스듬하게 왼쪽으로 내리는 획인 피에(撇)를 배웠다. 이 획도 종류가 다양해서, 약간 평평하면서 왼쪽이 살짝 내려가는 핑피에(平撇),핑피에보다 조금 더 기울어지게 쓰는 시에피에(斜撇),그리고 기울기가 조금 더 커져 마치 세로획을 긋듯이 쓰는 슈피에(竖撇),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지난번 어렵사리 붓을 사서 집에서 숙제로 연습한 덕분에 수업 시간에 연습한 글자들에 '괜찮다'는 뜻인 체크가 몇 개 붙었다. 그래도 여전히 별 표는 없다. 선생님이 은근히 솔직하시다. 이제 쓰는 한자에 획수가 좀 늘어나다 보니, 부수 간의 균형을 맞춘다거나 상하고저를 맞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날 내가 배우고 있는 게 단순히 글자 쓰기가 아니라 예술의 한 종류라는 것을 느낀 건, 아름다울 가(佳) 자를 쓸 때였다. 원래 내가 알던 이 글자는 사람 인 변에 오른쪽에 두 개의 흙 토 자를 쓰면 되었는데, 서법으로 배울 때는 오른쪽에 우선 네 개의 가로획을 긋고 위에서 찍어내리듯이 세로획을 그어야 했다. 그렇게 쓰니 원래 알던 그 글자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이것이 서법에서의 일종의 '예술적 허용'이라고 하셨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예술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근데 어째, 내가 쓴 글자는 왜 이렇게 안 예쁘지?


아름다울 佳를 아름답다 하지 못하고...




6월 17일의 상해. 벌써 상해에 온 지 3달이 지났다. 학교를 가려고 늘 지나는 육교에서 하트 모양처럼 생긴 꽃잎을 발견했다. 하늘에 구름은 또 왜 이렇게 예쁜지. 하루라도 허투루 보내지 말라는 하늘의 뜻 같다.



다음 지역연구 일정을 짠다고 다른 지역전문가 오빠들과 집 근처 스타벅스 로스터리 공방에 모였다. 평일 저녁의 로스터리 공방은 낮이나 주말과는 사뭇 다르게 무척 한산하다. 자리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잡아서 기분도 좋으니 모처럼 특이한 메뉴를 시켜본다. 뭔가 드립 커피 샘플러 같은 것인데, 과일 같은 것도 주고, 크림도 준다. 각각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만은 부자가 된 것 같다.



상해의 청담동, 난징시루는 카페에 견공이 앉아있는 일도 종종 볼 수 있다. 낮의 난징시루도 시끌벅적하고 좋지만, 개인적으로 밤의 난징시루를 더 좋아한다. 배달 오토바이가 시도 때도 없이 인도를 침범하는 낮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길가 가로등도 은은하고, 건물들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서 밤 산책하기는 딱이다. 앓던 이도 뽑았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고,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자. 비록 글씨는 마음에 안 들어도.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오늘 핑피에(平撇), 시에피에(斜撇), 슈피에(竖撇)와 관련된 글자들을 배웠다. 중국어를 그렇게 오래 배웠어도, 아름다울 가(佳)의 오른쪽이 두 개의 흙 토 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럼 여기서 문제, 왜 나의 아름다울 가(佳) 자는 하나도 안 아름다운가 ㅠㅠ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글자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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