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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Oct 19. 2020

아이를 좋아하지만 엄마는 무서워

그 친구의 파양 소식을 듣고 어린왕자를 생각하다 

주말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17년부터 약 2년간 매주 토요일 했던 보육원 봉사활동에서 만난 5살짜리 아이가 위탁가정과 꽤 잘 맞아 입양을 가게 되었는데, 막상 얼마 되지 않아 파양되어 보육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입양 결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똘똘하고 웃음이 많던 이 친구를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보호자를 만나 함께 생활하는 것이 훨씬 좋으니 마음으로 응원했는데 파양이라니! 위탁가정에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는 해도 솔직히 그분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보육원에서도 위탁가정에서 아이를 파양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을 아이에게 그대로 이야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얘기한다고 해도 아이를 어디까지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몰라 일단 아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이는 계속 물어본다고 한다. 


"저 언제 다시 그 집 가요?"


사실 보육원에 있던 친구가 위탁가정을 만나 입양을 가고 나서 다시 파양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심지어 같은 보육원에서 만났던 7살짜리 아이는 이미 2번의 파양 경험이 있었다. 파양이 무슨 이직도 아니고 '경험'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너무 화가 나지만, 현실이 그렇다. 사연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보육원에서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에 실망해서'라고 한다. 보육원에서 잠깐잠깐 만났을 때, 혹은 위탁가정에 이틀, 사흘씩 머물 때는 아이가 눈치도 좀 보고 낯설기도 하다 보니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행동을 하는데, 막상 입양이 결정되고 함께 살기 시작하면 그땐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보이고, 그래서 파양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사람에게, 특히 어른에게 받아들여졌다가 다시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 아이들은 경계심이 더 세지고 다른 이에게 정을 주기를 더 힘들어한다.



대학 다닐 때 아이들과 관련된 봉사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저소득층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활동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주말에 함께 노는 활동 같은 것들을 했는데, 사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 아이들에게 위계를 내세우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아이들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런 나의 마음을 끝내는 알아주었고 어느 순간 친한 친구처럼 미주알고주알 내게 자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이들도 모두 저마다 다른 인격체라는 것, 모든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진실함이 관계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현실에 치여 봉사활동을 잊고 살다가 결혼을 기점으로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를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때 시작한 활동이 보육원 봉사였다. 나름 대학 때 관련된 봉사활동을 했던 가락(?)이 있기도 하고, 매주 거의 빠지지 않고 얼굴 도장을 찍다 보니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들보다 나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보육원 봉사를 할 때 회사일이 정말 절망적으로 힘들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나는 항상 누구보다도 활짝 웃고 있었다. 현생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는 그 몇 시간만큼은 스스로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고, 그곳에서의 내가 '진짜 나'이고, 회사에서의 나는 '부캐'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지옥 같던 생활도 조금은 견딜만했다.


지역전문가 파견으로 보육원 봉사를 못하게 되고 SNS에 올라오는 활동사진을 통해서만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활동 중인 선생님이 이런 말을 전해왔다.


"에이스가 없으니까 애기들이 말을 안 들어서 큰일이에요"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들도 나를 잘 따르지만, 막상 엄마가 되는 건 무섭다. 중국어를 언어 그 자체로 좋아하지만 통번역사가 되는 건 좀 두려운 것처럼. 좋아하고 잘하고의 문제를 떠나 나는 이것이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국어를 좋아하고 항상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막상 통번역사가 되면 무언가 나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결과물이 생긴다. 중요한 국제회의 자리에서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내 한 순간의 실수로 잘못된 어휘를 사용해 통역하게 되어 담판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아찔한가! 엄마가 되는 것, 크게는 보호자가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한 어떤 행동이 한 생명의 일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무섭다. 내가 아이를 잘 본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사실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의 경험적 데이터일 뿐,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했을 때 내가 지금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랑을 듬뿍 담아 아이를 대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요즘 강형욱 훈련사가 나오는 영상을 종종 본다. '개 공장'을 하던 아버지처럼 강아지를 대하지 않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독립해 스스로 훈련사 교육을 받고, 공사장에서 꾸역꾸역 모은 돈으로 무턱대고 외국에 나가 외국에 있는 반려견 행동 전문가에게 수업을 듣고, 수많은 강아지를 접하고 그들의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람. 아이의 파양 소식을 듣고 분노하던 차, '개는 훌륭하다'는 TV 프로그램 첫머리에 강형욱 훈련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반려견 훈련사를 예쁜 직업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예쁜 직업이 아니에요. 직접 손에 흙도 묻혀야 하고 똥도 치워야 해요." 이 말에서 '반려견 훈련사'를 '보호자'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는지.


"보호자를 예쁜 직업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예쁜 직업이 아니에요. 직접 손에 흙도 묻혀야 하고 똥도 치워야 해요."


세상에 나에게 의지하는 작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 면에서 한 생명의 보호자, 엄마 혹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막상 한 생명을 내 세계에 들인 후 마주하게 되는 건 그다지 '예쁘지 않은' 일들일지도 모른다.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손에 똥도 묻혀봐야 하고, 밤새 칭얼대는 아이를 재우느라 수면부족에 시달려야 하고, 울긴 우는데 대체 뭐 때문에 우는지 몰라 가슴도 졸여봐야 하고, 어쩌면 다른 아이를 때리고 들어온 아이를 대신해 이웃에 가서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섣불리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설령 그 끝에 '파양'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위탁가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했던 이 말이 계속 생각나는 주말이다. 아이를 낳고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부모도,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보호자도, 반려견을 데려왔다가 유기하는 보호자도 여우의 이 말을 생각하며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양을 겪은 이 친구는 먼 훗날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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