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모순
· 저자: 양귀자
· 완독일: 2021.12.05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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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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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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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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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잊을 수 없어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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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부터 한국 작가의 소설은 잘 읽지 않았다. 화려하지만 불필요한 수사와 독자보다 먼저 작가 본인이 빠진 철학 놀음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는 양귀자의 이 소설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가, 한 방 맞았다. 자신의 글을 '천천히'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이미 넘겨버린 책장을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몰입하게 했고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쓰여졌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 모두의 상황이 이해됐고, 그 인물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부족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작가의 시선으로 싫은 사람은 없었다. 그 역시 이 글이 가진 매력이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