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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19. 2022

타이위안 시내 구경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2일차 (3)

진사에서 청아한 풍경 소리로 위안을 받은 뒤, 나는 남은 시간은 온전히 타이위안 시내를 보는 데 쓰기로 했다. 이번엔 버스를 타고 타이위안 시내로 향한다. 계속 밖으로 다녀야 하는 일정인만큼 참 감사하게도 날씨는 참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날씨가 좋은 만큼 볕도 너무너무 강해 덥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시내에 도착해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된 무언가를 먹지 못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날도 덥고 자칫하단 일사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눈앞에 오아시스처럼 로컬 아이스크림집 미쉐빙청(蜜雪冰城)이 등장했다. 딸기 선데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손끝에 닿는 냉기로 좀 살 것 같다. 아이스크림이 녹을 세라 어서 한 입 넣는다.


아이스크림을 먹을만한 장소를 찾는데 사방에 그늘이 있는 장소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눈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깐 서서 먹을까 싶어 들어가는데, 여기는 우이광장(五一广场)이란다. 본래 명 타이위안 부의 성문 자리였던 곳에 만든 광장으로 노동절 즈음에 완공이 되어 우이(5·1) 광장이라고 불린다고. 이곳은 광장에 있는 한 조각상과 분수로 유명하다. 조각상은 진췐즈셩(晋泉之声)이라는 이름이라는데 타이위안의 경제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어느 정도 다 먹고 땀을 좀 식힌 후, 바이두 지도를 켜 주변에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탐색해본다. 사실 타이위안 시내에서 어딜 갈지는 전혀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발 닿는 대로 다녀야 한다. 목적지 없이 지도를 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도보여행 나름의 즐거움이다.


걸어서 갈만한 위치에 원잉공원(文瀛公园)이라는 공원이 있다고 하여 일단 그리로 향해 보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무 조사 없이 갔던 이 공원에서 마침 백합꽃 전시회를 하고 있어 공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했다.


원잉공원은 타이위안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약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잉공원이라는 이름은 신해혁명 이후 지어진 이 공원의 첫 이름인데, 이후 중산공원, 인민공원, 아동공원 등 그 이름이 계속 바뀌다가 2009년이 되어서야 이름이 다시 회복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공원이라 쑨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이위안에 방문했을 때 환영회를 하고 연설을 했던 곳을 남겨둔 기념관도 있을 정도. 예쁜 꽃들과 푸르른 하늘 덕에 즐거운 방문이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슬슬 배꼽시계가 울린다. 선데 아이스크림 이후 아무것도 먹질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따중뎬핑을 켜 주변에 먹을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찾아본다. 아무래도 도삭면이 유명한 산시성에 왔으니 도삭면 종류로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침 공원 가까이에 번화가가 있고 거기에서 평이 괜찮은 도삭면 집을 발견했다.


고기완자 토핑 도삭면에 음료와 반찬이 딸려 나오는 세트가 무난해 보여서 시켜봤는데, 딸려 나오는 음료가 콜라인 줄 알았는데 왕라오지(王老吉) 같은 한약 맛 나는 음료였다. 덕분에 처음으로 중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량챠(凉茶) 계열 음료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면을 먹을 때 딸려 오는 고수가.. 아직까진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산시성이 면으로 유명한 지방이어서 그런지, 도삭면 면발이 탄력 있고 맛있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 좀 시내가 눈에 보인다. 식당이 위치해 있던 이곳은 통뤄완 보행가(铜锣湾步行街)라는 번화가다. 나름대로 타이위안 시에서 야시장 같은 것이 열리는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곳인 듯했는데, 밥 먹으러 들어갈 때만 해도 없던 푸드 트럭이 밥을 다 먹고 나오자 길가에 줄을 서 있었다.


메뉴야 뭐,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야시장 메뉴와 비슷하다. 치즈 두리안, 닭튀김, 굴 구이, 새우, 알감자 볶음, 두부, 카오렁몐(烤冷面), 모둠 과일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앞에 서서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시장이 이렇게 열리는지 미리 알았다면 좀 참고 기다리는 건데 싶다가도, 그러기엔 아까 너무 배가 고팠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배를 좀 채우니 이제 또 걸으며 소화를 시키고 싶어 진다. 또 어디를 가볼까 지도를 살피니 엄청나게 큰 공원이 또 눈에 들어온다. 이번엔 타이위안에서 가장 크다는 잉저공원(迎泽公园)이다. 제일 오래된 공원과 제일 큰 공원을 가보게 되니, 타이위안에서 볼만한 공원은 다 보고 간다는 모종의 성취감이 들기도 한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는데 아직도 해는 질 생각을 안 하고, 덕분에 타이위안 시민들은 모두 공원과 길가 그늘에 모여 한담을 나눈다.



밥 먹는 시간까지 최소화해가며 오전에 교가대원, 진사, 오후에 우이광장, 원잉공원, 잉저공원까지 보고 나니 그래도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타이위안에서 둘러볼만한 곳은 다 봤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번 일정에서 타이위안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 일정인 핑야오(平遥)에 가기 위한 경유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면 목표한 바보다 훨씬 열심히, 그리고 충실하게 본 셈이다.


기차역이 가까운 숙소에 돌아오니 그 길었던 여름 해도 언제 그렇게 타는 듯 뜨거웠냐는 듯 이제 뉘엿뉘엿 져가고 있다. 2019년 6월 29일, 낯선 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과 가장 좋아하는 색의 하늘을 맞이한다. 내일은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모습의 하늘을 볼 수 있겠지? 진나라의 역사를 간직한 타이위안, 다음에 또 만나!




[산시·허난 2일차 일정 (타이위안)]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어제 예상치 못한 연착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타이위안에서의 오늘 하루는 그런 불쾌한 일들을 모두 잊게 해 줬다! "황제의 집은 고궁을 보고, 민간의 집은 교가를 보라", "진사를 가보지 않으면 타이위안에 안 간 거나 마찬가지다", 타이위안의 유명한 곳에 대한 문장은 참 많은데, 오늘 나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내 멋대로 한 문장 추가하고 싶다. "도삭면 맛있다!" 물가도 싸고, 원잉공원의 백합꽃 전시회와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었다. 고마웠어, 타이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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