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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12. 2022

풍경 소리로 기억될 진사(晋祠)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2일차 (2)

타이위안에는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풍경소리로 기억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진사(晋祠)다. 앞서 소개한 교가대원의 주인이 옛 진나라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하여 진상(晋商)이라고 불렸듯, 이곳 이름에 들어가는 진(晋) 역시 진나라와 연관이 있다. 이곳은 바로 진나라를 세운 당숙우와 그의 어머니 읍강을 모신 사당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개국한 사람을 모신 사당이다 보니 나라 이름이 사당 이름에 들어가게 된 듯하다.


'진사에 가보지 않으면, 타이위안에 가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不去晋祠,枉到太原)'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이위안에서는 꼭 가봐야 할 필수 코스로 알려진 이곳. 5세기 북위(北魏) 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후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증축을 해온 곳으로 내부에는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 사실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사람을 모신 사당이 나의 흥미를 일으키기는 좀 부족했지만, 교가대원을 가본다고 기왕 멀리까지 나온 거 시내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을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동일한 이유로, 교가대원에서 이곳 진사까지 '효율적으로' 가고자 하면 택시 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교가대원 자체가 이미 타이위안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교외인 데다, 다시 기차를 탈 경우 타이위안 시내로 돌아가버리니 진사를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배낭여행객치고는 좀 사치스럽지만 타이위안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이 이날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므로(그렇다, 타이위안 일정은 1박 2일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했다.


아래쪽 빨간 포인트가 교가대원, 위쪽 사진이 있는 곳이 다음 목적지 진사(晋祠)


택시 타고 입구 앞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걸어가야 '진사'라고 적힌 편액이 보인다. 날씨가 좋고 하늘이 맑아서 괜찮았지만 궂은날이었다면 좀 힘들었겠지 싶다. 그런데 묘하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표를 사라는 말이 없다!



대신 아래 사진처럼 사람들이 잔뜩 서 있는 조각물이 나를 반겨준다. 처음엔 이게 누구의 것인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당태종 이세민이란다. 가운데에 이세민을 두고, 이적과 장손무기, 울지공, 위징, 마주 등의 장군들이 함께 서있는 이 청동 군상은 타이위안 건성 2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세워진 것이란다. 당의 수도는 장안(오늘날 시안)이지만, 당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은 이곳 타이위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쩌다 이곳에서 이세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수양제의 실패한 고구려 정벌로 민심이 흉흉할 때,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후일 당고조)은 타이위안의 유수가 되었다. 농민반란을 진압하라는 임무가 떨어졌지만 이연은 이미 민심이 기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관군보다 우세해져 버린 농민반란을 목도하고 그는 진양(현 타이위안)에서 쿠데타를 선포하고 장안을 향해 진격한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병력을 일으킨 것이 이세민이었기에 이곳에 그를 기리는 군상이 있는 것일 테다.


이세민과 다섯 장수가 함께 있는 청동 군상


역사 공부도 잠깐, 여기까지 왔는데도 매표소가 없다니! 절망하지 말 것. 여기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야 진짜 진사의 입구를 볼 수 있다. 중국 국기가 꽂혀있는 여기가 진짜 입구. 날이 더워서 이미 진이 빠진다. 양산은 있는데, 자외선 방지가 되는 양산이 아니라서 빛만 가려줄 뿐 살은 이미 타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연구가 끝나고 나는 자외선 방지가 되는 양산을 샀다) 매표소 지붕 아래서 잠시 뜨거운 햇볕을 피하며 입장권을 산다. 표값은 80위안. 싸지 않다. 아마 성수기라서 더 높은 가격인 것 같다.



앞서 진사에는 긴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다고 적었는데, 진사 안에 있는 성모전(圣母殿)이 그중 하나다. '성모'는 당연하게도 이곳에 모셔져 있는 당숙우의 모친, 읍강을 일컫는 말일 테다. 얼핏 보면 지붕의 색 등이 아직 바래지 않아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건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붕의 색이야 후대에 다시 칠한 것일 테고, 그보다 지붕 아래에 있는 현판들에 더 눈이 먼저 간다.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양 흐릿한 색깔과 그 위 글자들.


이 건물엔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우선 건물 내부에는 기둥이 따로 없고 건물을 둘러싼 회랑과 처마의 기둥만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이 만들어진 연도를 생각하면 신비한 부분이다. 또한 건물 정면 기둥에 새겨진 반룡도 신기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반룡 작품이자 중국 최초로 나무기둥에 조각된 용이라는 이 작품은 가까이서 보면 꽤나 생동감 있어 건물의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성모'를 신성하게 모시려는 후대의 마음이 느껴진다.


성모전 전경과 목조 반룡 한 마리


성모전 바로 옆에는 또 하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래에 보이는 나무다. 주나라 때 심긴 측백나무(周柏)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무려 3000년이나 된 나무라고. 두 그루가 본래 있었는데 한 그루는 벼락이라도 맞았는지 쓰러져 나머지 한 그루에 기대 있다. 3000년이라니. 이 나무 앞에서 고작 백 년 남짓의 우리 인생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진사 내부를 둘러보다가 그 안에 있는 절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봉성사(奉圣寺)라는 이름의 이 절은 당나라 장군 위지 경덕의 별장이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엔 높이가 38미터 정도 되는 사리탑이 하나 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잠깐 발을 멈추고 쉬어간 그 탑이 바로 이곳이었다. 6월 말 타이위안의 뜨거운 햇볕에서 잠시 벗어나 양산을 내려놓고 땀을 닦고 있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한참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쉬고 있던 그 탑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소식의 시가 떠오른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不识庐山真面目)

내 몸이 그 산 안에 있기 때문일 테다 (只缘身在此山中)



'진나라'에 대한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동시에, 중화 문명의 중심이자 초창기를 대표하는 도시라는 타이위안 스스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 나에게 진사는 그런 곳이었다. 맑고 푸르른 날씨는 덤! 교가대원을 갔을 때와 같은 날 같은 도시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그날 들었던 맑고 맑은 풍경 소리만이 들려온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날 내가 느꼈던 청아한 상쾌함을 느껴보시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그날 찍었던 동영상을 한 번 같이 올려본다. 타이위안 시내에서는 다소 멀지만 누군가 이 풍경 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진사에 갈 수도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풍경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타이위안 시내로 이동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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