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가난 사파리
· 저자: 대런 맥가비
· 완독일: 2022.04.25
문제 속에서 살다 보면, 그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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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빈곤지역에서 이뤄지는 많은 사업에서 지역 주민들의 필요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목표와 목적이다. 그런데 특히 그 목표가 지역의 자급자족을 장려하는 것인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들 사업 조직의 관여와 개입이 외부 자원과 전문 지식에 의존하는 정도를 드높여, 이 부문의 역할을 차츰 줄이는 게 아니라 영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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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의 한 형태로 여겨진다. 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조직이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채굴할 데이터와 서사를 담고 있는 자본 말이다. 선의를 가진 학생, 학자, 전문가들이 줄줄이 가난 깊숙이 내려와 필요한 걸 뽑아내고는 고립된 자신들의 집단으로 물러가 가난 사파리에서 가져온 인공 유물을 검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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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빈곤산업이다. 이 산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도 사회적 박탈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 부문의 모든 사람이 경력을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 문제가 남아 있어야 이 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 가난을 뿌리 뽑는 게 아니라 낙하산으로 와 '업적'을 남겨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전문지식을 철수해 훌쩍 떠날 때 뚜렷한 업적이 없더라도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게 이 부문의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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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와 동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파벌, 계급,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단속, 권력의 불균형에 피로감을 느낀다. (중략)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냥 믿으라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사회정의가 아니다. 여기에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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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해서 곤란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리고 몹시 부당하다고 볼지 모르지만), 내 삶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면 내가 나 자신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경우를 수없이 찾을 수 있다. 뼈아프지만 솔직해지자면, 잘못된 피해의식을 갖고서 끊임없이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바람에 나는 내가 겪는 어려움을 훨씬 더 빨리 넘어서는 데 도움이 됐을 분명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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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러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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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기성찰이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억압, 개인들이 불평등한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 계발에만 집중하도록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에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우선 우리 삶의 체제를 감당하고 유지하며 운영하지 못하면 가족, 공동체, 대의, 또는 운동은 쓸데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먼저 장악해야 하는 생산수단으로, 그런 다음에야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 말은 저항을 멈춰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 부패,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모든 필요한 조치에 병행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비슷한 정도로 철저히 검토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구실이 아니라 21세기의 급진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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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른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걸, 맥가비는 자신이 경험한 '가난 사파리'를 우리에게 기꺼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대학 때 사회복지학 수업을 들으면 Empowerment라는 표현을 참 많이 썼다. 어떤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든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빈곤이 어떤 없어져야 할 사회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처럼 여겨지고, 그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저자가 왜 가난이 '사파리'와 같다고 여겼는지 등 고민해봐야 할 점들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이 실제 가난을 겪었고, 그로 인한 부대 문제를 종합적으로 모두 겪은 사람이 직접 쓴 책이라는 점이다. 방관자의 관점이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심하게 날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난에 처한 사람들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는 점이다. 가난에 대해, 빈곤 문제에 대해, 나아가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