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에 휘말린 네 형제(四兄弟) 이야기
■ 제목: 생사선 (生死线, 셩쓰씨엔)
■ 장르 : 드라마 / 전쟁
■ 감독 : 공생(孔笙, 콩셩)
■ 년도 : 2009
■ 제작사 : 山东电影电视剧制作中心
■ 주요 배우 : 杨烁,廖凡,张译,李晨,吕夏,王黎雯 등
오늘 소개드릴 드라마는 2009년 제작된 항일전쟁 소재 드라마 셩쓰씨엔입니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을 다루는 드라마인 데다 전쟁 장면이 많아, 관련 소재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네요. 이 드라마가 앞서 소개한 두 드라마와 결이 좀 달라 당황하셨나요? 사실은 앞서 소개한 두 드라마와 이 드라마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위에 색이 다르게 표기해둔 것처럼 '감독'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비교할 수 있는 <부모애정(父母爱情, 푸무아이칭)>, 곧 리뷰할 작품 중 하나인 <북평무전사(北平无战事, 베이핑우짠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 사극 <랑야방(琅琊榜, 랑야방)>, 1편에서 리뷰했던 <환락송(欢乐颂, 환러쏭)> 등 중국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 모두 이 콩셩 감독 작품입니다. 감독 이름만 보고 골라도 꽤 승률이 높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이런 감독과 관련된 정보는 저도 나중에나 알았고, 사실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계기는 환러쏭을 보고 빠졌던 배우 양숴(杨烁) 때문입니다. 제겐 옛날부터 좀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그건 바로 누군가에게 전문용어로 입덕하면, 그가 찍었던 모든 작품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앞선 두 작품이 모두 양숴가 나오는 작품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제가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초기 작품이었습니다. 1983년생인 이 배우가 2008년, 즉 20대에 찍은 드라마이니 정말 젊은 시절의 양숴를 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양숴가 대중들 앞에 빵! 뜬 계기가 <환락송(欢乐颂)>이라고 하면, 이 드라마는 신인 남자 배우로서 대중에게 인상을 심어준 작품입니다. 초기작인 데다 한창 젊을 때여서 그런지 <환락송> 샤오빠오종(小包总)의 부자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이 드라마에서 그는 그저 제멋대로 사는 인력거꾼일 뿐입니다. 최근 작품에서 양숴가 맡는 역할들이 다 돈 많은 기업인이니 비루하지만 순수한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드라마를 보게 된 계기는 오로지 배우 때문이었지만, 드라마 자체도 재미있었습니다. 비공식 랭킹에 따르면 중국에서 군대, 전쟁을 소재로 한 3대 드라마로 이후 리뷰를 쓸 <사병돌격(士兵突击, 스빙투지)>, <아적단장아적단(我的团长我的团, 워더투안장워더투안)>, 그리고 이 드라마를 꼽는다고 하는데(다루는 시대적 배경 순으로는 이 드라마가 가장 먼저, 그다음이 我的团长我的团, 다음이 현대극인 士兵突击입니다.), 그만큼 평점도 높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 후반~40년대 초반의 항일전쟁 시기입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던 그 시점까지 중국 내부에서 진행된 항일운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랬지만, 그 시점의 중국에도 다양한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유럽/미국의 시민권을 가졌기에 일본인도 못 건드리는 가장 상위 계급부터 일본인에 빌붙어 부를 축적하는 친일파(중국어로는 汉奸), 그리고 항일운동을 하는 투사들과 정말 일반 민중(중국어로 老百姓)까지. 이 드라마에서는 그저 역사 속 개인에 불과한 4명의 남자가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일본에 저항하는지 그리고 있습니다.
4명의 남자 주인공들은 배경도 성향도 제각각입니다. 우선 주인공인 쓰따오펑(四道风, 배우: 杨烁)은 인력거꾼입니다. 생각지 못한 집안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가 대표하는 것은 민중입니다. 人民을 사랑하는 중국답게 그의 인물 설정이 가장 영웅스럽죠. 四道风이 민중이라면 그의 책사 역할을 하는 것은 오우양(欧阳, 배우: 廖凡)입니다. 중공 지하당 당원인 그는 낮엔 국어 선생님, 밤에는 지하당원 공작을 하죠. 독립을 위해서는 조직이 정해준 가짜 신분으로 가짜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도 불사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결함이 많게 그려지는 인물은 전쟁 중이라는 배경과는 상반되게도 군인인 롱원장(龙文章, 배우: 李晨)입니다. 이상주의적이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그는 어떻게 보면 四道风보다 더 인간적입니다. 마지막 인물은 샤오허(小何, 배우: 张译)입니다. 애초부터 해외파인 그는 본래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그의 약혼자를 보러 고향에 왔다가 항일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가지고 있던 과학 지식으로 생각지 못하게 도움을 주게 됩니다.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도 놓칠 수 없습니다. 小何의 약혼자인 샤오신(小昕, 배우: 王黎雯)은 양갓집 규수로 이런 혼돈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四道风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함께하는 길을 택했고, 欧阳의 가짜 부인 쓰펑(思枫, 배우: 吕夏)은 자신의 뜻을 위해 개인의 신분도 포기했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쉽지 않은 시기를 함께 투쟁하던 게릴라단과 함께 보내는 용기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중국에선 피가 섞이지 않아도 막역하고 서로 뜻이 맞는(志同道合) 사람들을 형제(兄弟)라고 칭합니다. 바로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은 각기 다른 배경 때문에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항일전쟁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형제가 됩니다. 요즘 말로는 브로맨스라고 하나요? 四道风과 小何가 연적 관계였기 때문에 이 네 형제의 관계가 '브로맨스'라는 말에 걸맞은 달콤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뭐 그 어디쯤에 있는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전쟁까지 다루고 있으니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했겠죠.
인물의 특징이 명확하고 배우들도 그 역할을 잘 살려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고 시청 후 평점도 보시다시피 높은 드라마지만, 항일전쟁이라는 큰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개개인의 용맹만을 너무 부각해 표현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 시기에 양지든 음지든 열심히 싸운 다른 사람들이 많을 텐데 드라마만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우매한 민중을 지켜낸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죠. 비판한 점 자체는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민중의 투쟁을 드라마에 다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각각의 인물이 관련 계급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재나 스토리, 인물 설정 등 드라마의 내적 특성을 차치하더라도, 뛰어난 배우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추천드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양숴는 이미 언급했으니 빼고, 장역(张译)도 2020년 중국 국경절 브라운관을 빛낸 유명 배우고, 랴오판(廖凡)은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배우죠. 판빙빙의 전 남친으로 유명한 리천(李晨)은 여자 친구 때문이 아니라 배우로서도 매우 유명하고요. 혹시 모릅니다. 이 배우들에 입덕하셔서 저처럼 다른 드라마를 찾아보시게 될지도. 아, 참고로 샤오신(小昕) 역할을 맡은 배우 왕려문(王黎雯)은 이 드라마에서 양숴와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지금은 현실세계에서 부부입니다. 연인을 '연기'하는 초보 커플의 미묘한 눈빛 교환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길어졌습니다. 약간의 역사적 지식을 배우고 연기파 배우들을 알아가실 수 있는 드라마라고 정의하고 이번 글은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드라마 엔딩에 나오는 주제가 <결정(决定)>이 실제 4명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부른 노래라는 점입니다. 엔딩에 노래를 레코딩하는 뮤직비디오가 나오는데, 나름대로 앳된(?) 네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이 뮤직비디오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2010년 중국 드라마 <셩쓰씨엔>을 다 봤다. 비록 결말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에도 비슷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에 드라마를 보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양숴 너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