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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30. 2022

뤄양의 밤거리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5일차 (3)

이른 저녁을 먹고 야시장 오픈 전까지 어디 갈만한 곳이 있는지 근처 지도를 좀 살펴보았다. 뤄양 자체가 과거 13대 조대를 거친 고대 도시라 사실 도시 전체가 큰 박물관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닌데, 그중에서 저녁을 먹고 지금 앉아있는 라오청취(老城区)가 그 도시의 핵심과도 같은 곳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찾아보니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에 뤄이구청(洛邑古城, 낙읍고성)이라는 유적지가 있는 것 같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뤄양 사거리 먹자골목(洛阳十字街 小吃一条街)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었는데, 홍등으로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고 길이 널찍한 데 비해 딱히 아직 뭔가 시작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푸드트럭을 몬 사람들이 줄지어 길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곳이 밤이 되면 야시장으로 변신하는 모양이다. 매출전쟁이 시작되기 전 약간은 긴장된 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봤다.




유적지보단 테마파크, 낙읍고성


낙읍고성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는 곳이었다. 낙읍고성의 낙읍(洛邑)은 뤄양의 옛 이름이라고 하니, 이름에서부터 뭔가 역사적인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굉장히 한산한 역사 테마파크를 보는 느낌이었다. 뤄양에 몇 남지 않은 옛 탑인 문봉탑이 있고, 무측천이 명령해 조성했다는 연못이 있는 곳이긴 하나, 그 외에는 그냥 고풍스러운 건축물 몇 개를 모아둔 식당가나 테마파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한옥마을 같은 느낌으로, 이 안에서 먹고, 놀고, 숙박까지 모두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만한 소비 욕구를 가진 사람이 이곳에 올지가 다소 의문이었다. 그다지 특징이 없던 이곳을 전체적으로 한 번 둘러본 뒤 나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야시장이 열기 전까지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19년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볼거리가 없고 한산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번화해졌을지 궁금하다.


낙읍고성 입구와 문봉탑, 연못과 전반적인 분위기


뤄양의 밤거리는 리징먼(丽景门)에서


낙읍고성의 카페에서 해 질 무렵까지 기다리던 나는 해가 지기 시작한 뒤 도보로 방금 보았던 그 야시장 거리로 향했다. 이 길의 정식 명칭은 씽화졔(兴华街). 저녁이 되면 야시장이 들어서는 번화한 거리인데, 그곳까지 가는 길은 영락없는 어느 중국 시골의 골목이다. 인쇄업체부터 아동복 가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까지. 꽤나 정겨운 풍경이지만 한편으론 이곳에서 관광객임을 들켰다간 몸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에 뤄양에 와서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보다 뤄양이라는 도시가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구나, 아니 오히려 꽤 초라한 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 허난성 쪽으로 지역연구를 간다고 했을 때 왜 선생님들이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는지, 이곳에 와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잘 사는 사람들만 많이 봤던 것과는 달리 뤄양에서는 우리나라 90년대쯤 못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거리는 지저분했고 인프라는 낙후되어 있고 사람들은 가난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진짜 '평균적인' 중국의 모습이 아닐까? 한때 여러 나라의 도읍지였던 뤄양은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남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좋게 말하면 사람 냄새나고, 나쁘게 말하면 낙후된 거리를 빠져나가니 씽화졔 야시장이 보인다. 이 길이 아까 지나간 거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점상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거리는 뤄양 사람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고 있었다.



무얼 먹을까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먹기에 너무 번잡스러울 것 같은 메뉴는 제외하고, 과일 요거트(酸奶水果捞)를 사 먹기로 했다. 조각으로 잘라놓은 각종 과일에 요거트를 뿌려주는 메뉴인데, 상큼하게 입가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그 위에 쿠키 크럼블 같은 것을 뿌려주는데, 생각보다 미지근해서 좀 놀랐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과일 요거트를 먹으며 좀 더 걸으니 엄청나게 큰 문 하나가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리징먼(丽景门). 금나라 때 처음 만들어진 낙양성의 서문이며, 지금은 뤄양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어있다. 성문 위로 올라가려면 표를 사야 하지만, 올라가지 않을 경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밖에서 보면 옹성 같은 느낌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각종 상점들이 있고 또 성문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상점가가 조성되어 있다. 흔히 중국 사극을 보면 성문을 몇 단계를 지나면서 통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이곳도 옛날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리징먼 안쪽 거리를 걸으며 뤄양을 대표하는 것들이 그려져 있는 작은 열쇠고리를 하나 샀다. 13개 왕조의 수도였다는 뤄양이 결국 관광지가 되어 있는 모습이 어쩐지 좀 처량하다.




[산시·허난 5일차 일정 (뤄양)]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뤄양 첫날! 너무 더웠다..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용문석굴 - 향산사 - 백원 - 관림 - 낙읍고성 - 리징먼까지! 저녁으로는 뤄양 탕몐쟈오와 후이차이를 먹었고, 야시장에서 과일 요거트도 먹었다. 야시장엔 사람이 참 많았는데, 나도 그 일원이 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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