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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31. 2022

달마가 물어다준 친구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6일차 (1)

뤄양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오늘은 그 유명하다는 소림사(少林寺)를 보는 데 하루를 모두 사용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다. 소림사는 내가 스탑오버로 지나온 정저우시에 있는 덩펑(登封)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정확히는 쑹산(嵩山) 위에 있기 때문에 덩펑에서도 다시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뤄양에서 여행 전용 버스(旅游专线)를 타면 소림사로 바로 갈 수 있다고 하여 일정에 반영하였다.


아침에 택시로 뤄양 버스터미널로 이동해 소림사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소림사를 가려는 사람이  많아서 매표창구가 따로 열려 있기도 하고,  모르겠으면 창구에서 '소림사'라고 말만 하면 버스 시간과 요금을 알려준다. 나는 아침 8 50 출발하는 버스가 가장 빠른 시간대여서  표를 샀는데, 19 위안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같다. 다행히 종점이 소림사인 노선이기에 정류장을 지나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림사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사원 안에 들어가면 요기할 것이 없을 듯하여 우선 입구 앞에 있는 로컬 패스트푸드 전문점 디커스(迪克斯)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 먹었다. 산 위에 있는 지점이라 재료 조달이 힘들어 그런 건지 아니면 소림사라는 엄청난 관광지에 있는 곳이라 그런 건지 값이 비쌌다. 어차피 주변에 경쟁할 업체도 없고 하니 부르는 게 값이라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입구 앞에 뭐가 없다.



배를 대충 채운 뒤 소림사 입장권을 사러 갔다. 입장료는 80 위안. 한화 만 오천 원 정도 된다. 소림사야 한국에도 워낙 알려진 관광지라 많은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혹시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을 해보자면 그 시작은 북위 때, 그러니까 서기 495년, 당시 효문제가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를 위해 창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발타선사를 무척 존경했던 효문제는 수도인 뤄양과 마주 보는 쑹산에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달마가 이곳에서 수련하다가 돈오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사찰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실 소림사의 정체성은 '무술'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승려로서의 과정 외에 이곳에서는 무술 수련 과정 등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 무력으로 도울 수 있는 승려들이 있다고 하여 호국불교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부모가 환경적으로 여의치 않아 아이를 이곳에 맡기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이곳에서 무술 수련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국의 유명 배우 왕바오챵(王宝强)이다.


워낙 무술로 이름난 사원이라 그런지 입구로 들어간  얼마 되지 않아 무술 공연장(演武) 만날  있었다. 마침 얼마 뒤인 11 30분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들어가 봤다. 보통은 이렇게 공연장에서 실내 공연으로 진행되는데, 성수기에는 야외에 무대를 설치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적당히 무대가 보일만한 곳에 서서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처음엔 무슨 서예로 유명한 사람이 한 명 나와서 글씨를 멋들어지게 쓴 뒤 사갈 사람을 찾는 전형적인 물건 팔이 코너가 진행되었다. 소림사 정도면 여기저기서 후원도 많이 받고 꽤나 부유할 텐데 이런 것으로 부수입을 꼭 올려야 하나 싶었는데, 놀라운 건 이걸 사는 사람이 있었다...!


잠시 후 사회자의 안내로 본격적인 소림 쿵푸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림의 유명한 봉술이나 동물의 형상을 딴 각종 권법 등을 선보이기도 하고 한눈에 봐도 무척 날카로워 보이는 창에 배를 대고 도는 등 차력에 가까운 쿵푸를 볼 수 있었다. 아직 수련 중인 사람들이라 그런지 중간에 실패를 한 적도 있었는데, 관중들의 격려 속에 다시 시도하여 성공하기도 했다. 간단히 그때의 사진과 영상을 올려본다.




차력인지 무술인지 알 수 없는 공연 관람이 끝나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소림사라고 적혀 있는 사원이 나왔다. 들어가면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나오는데, 곳곳에 피운 향의 냄새로 코가 간지럽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탑림(塔林)이라는 곳이 나온다. 당송금원명청대 소림사의 고승들이 잠들어있다고 전해지는데, 시대가 다른 만큼 탑의 양식도 다 달라서 중요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여기서 멈췄어도 아주 충실한 소림사 관람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발견하고 만다. 탑림에서 나왔을  아직 가지 않은 곳이  남았다고 알려주는 듯한  이정표를 말이다. 본래 여행자라면 가지 않은 길에 끌리게 마련으로, 나는 목표지까지 1.8km 남짓 된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철석같이 믿고 앞으로 직진했다. 그것이 직진으로 1.8km 아니라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 길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자애로운 관세음보살(아마도?) 상도 만나고, 앞서 가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돌계단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송대에 달마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초조암(初祖庵)으로 이어지는 이 돌계단은 그야말로 '돌'계단에 경사도 가팔라 무릎이 나갈 것 같았다. 게다가 태양은 또 어찌나 뜨거운지. 하지만 그 돌계단을 격파해 초조암에 다다른 순간 나에게는 또 다른 만용이 생겼다. 거기서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한 것이다.



달마동이었다. 달마대사가 9 동안이나 면벽 수행을 했다는 . 초조암에서 조금만 돌계단을 올라가면 나온다고 내려오던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중국인의 "가깝다"는  말을 믿어선  됐는데.. 일단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아깝고 해서 발걸음을  봤다. 어라, 점점 등산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정도로 무릎이 아파 온다. 앞에  가고 있던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온전히 나와 쑹산의 싸움이 되어 버린 달마동 탐방. 중간에 너무 덥고 다리도 아프고 목이 말라 쉬고 싶었는데 아주 다행히도 물을 파는 곳이 있어 생수를   사 먹었다. 아래에서 사 먹는 것의 거의   가격으로 생수를 팔고 있었다.



나는 쑹산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척하며 틈틈이 쉬면서 겨우겨우 달마동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등은 이미 땀으로 푹 젖었고 물도 다 떨어졌다. 여기까지 올라온 스스로를 칭찬하며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니?"


밑에서 내가 올라오고 있을 때부터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충칭 청년이었는데, 젊은 여자 혼자 이를 악물고 달마동까지 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고 한다. 집은 충칭인데 아는 친구가 정저우에 있어 가던 길에 소림사에 왔다는 그 친구. 이것도 인연인데 위챗 친구를 하자고 하여 친구 등록을 했다. 꾸역꾸역 돌계단을 올라 달마동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루트로 중국인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으니. 그 친구와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야말로 '달마가 물어다준 친구'다.


쑹산의 풍경과 논란의 달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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