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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ug 01. 2022

덩펑에서 이해하게 된 고수의 마음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6일차 (2)

소림사에 갔다가 달마동 덕분에 친구를 한 명 사귀고 난 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뤄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분명 책에는 출구로 나가면 뤄양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거라고 적혀 있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어떤 차가 어디로 가는 차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기사님으로 보이는 분들께 물어봤더니 뤄양 가는 건 없단다. 대신 덩펑(登封) 가는 차가 있으니 일단 그걸 타고 덩펑으로 가서 뤄양으로 가는 버스로 바꿔 타라고 한다. 느낌상 뤄양으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긴 한 것 같은데 땡볕에 기다렸다 타기도 싫고 하여 그냥 기사님의 조언대로 덩펑으로 가기로 했다. 소림사 앞에서 덩펑까지는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30분 정도 달리면 된다.


덩펑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가 좀 넘었다. 일단 뤄양에 가는 가장 빠른 버스 시간을 확인해본다. 5시 9분이 가장 빠른 버스란다. 직원이 뤄양으로 가는 막차가 6시 반에 있다며 좀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겁을 준다. 그나저나 여기서 한 시간 동안 뭘 하지? 둘러보니 덩펑은 정말 작은 도시라, 시외버스 터미널에 유일하게 있는 편의 시설이 음료 자판기다. 덩펑에서 뤄양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일단 이른 저녁이라도 먹을까 싶어 따쭝뎬핑을 켰다. 그렇게 찾은 것이 스싼꾼(十三棍)이라는 식당. 덩펑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점이 좋은 식당인데 마침 터미널 근처에 하나 있어 캐리어를 끌고 방문했다.



혹시 소림사의 승려들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면 '십삼곤'이라는 식당 이름을 보고 연상하셨을 수 있을 텐데, 이 식당은 당왕(唐王)을 구했다는 십삼곤승(十三棍僧)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파는 메인 메뉴는 후이양러우(烩羊肉). 덩펑이라는 이 작은 도시의 특색 요리다. 후이(烩)라는 글자는 지난 글에서 '모아 끓이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요리는 양고기를 끓인 육수에 양고기, 당면, 파, 야채 등을 넣고 푹 끓인 후 위에 고추기름을 좀 얹은 요리인데, 그 시작은 당나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세민이 왕세충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뤄양에 갔다가 왕세충의 부하에게 된통 깨져 중상을 입었을 때, 소림사에서 무술이 뛰어나다는 십삼곤승(十三棍僧)이 중상을 입은 그를 숨겨주었다고 한다.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 산양을 몇 마리 사서 이 음식을 만들어 이세민에게 먹였다고 하는데, 덕분에 빠르게 원기를 회복한 이세민은 다시금 왕세충을 공격하여 그를 이기게 된다. 이후 이세민이 즉위하고 이 요리를 잊지 못해 장안(현재 시안)에서도 이 요리를 먹게 되었다는 훈훈한 에피소드인데, 아무래도 소림사 승려들이 만들어준 요리였기 때문에 덩펑 요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후이양러우와 함께 화덕에 구운 샤오빙(烧饼)도 하나 시켰다.


그래서 그 맛이 어땠는고 하니... 덩펑이 왜 상하이에서 가깝지 않은 걸까 한탄하며 먹었다. 그만큼 맛있었단 이야기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국물을 고추기름이 잡아주었고 양고기와 당면, 그리고 샤오빙을 곁들여 먹었을 때 정말 맛있었다. 놀라운 것은 고수,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그렇게 빼 달라고 이야기하는 샹차이(香菜)의 반란. 중국 요리, 특히 탕에 왜 그렇게 고수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수가 국물에 녹아들면서 기름기 많은 국물이 한결 산뜻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샹차이의 재발견이었다.


상하이로 돌아와 후이양러우를 파는 곳이 없는지 열심히 찾았는데 당시에는 아쉽게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너무 작은 도시에서 발견한 허름한 식당이어서 별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그 맛이 더욱 반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도 소림사와 덩펑은 이 요리 하나로 기억될 정도로 내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음식이었다.


한 시간을 맛있는 요리와 함께 잘 넘기고 이제는 뤄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앞서 25 위안에 산 뤄양 가는 버스표를 들고 식당에서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는 잘 탔는데 문제는 여기서 다시 발생했다.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앉아만 있으면 뤄양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던 이 버스가 중간에 자꾸 서는 것이었다. 원스탑으로 뤄양까지 가는 버스가 아니라 중간 정류장에 세워주는 버스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덩펑 터미널에서 뤄양 역까지는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노선인데,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와야 하는, 그러니까 뤄양 역까지 가는 길에 지나갈  있는 위치였다. (아래 지도 참조) 뤄양 역까지  타고 가면 숙소까지 다시 돌아올  차를 타야 하는데, 만약 중간에 내릴  있다고 하면 밤 산책 삼아 뤄양을   둘러볼  있다. 문제는 정확히 버스가 어디 어디에서 서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점인데, 차에  다른 중국인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니 특별한 정류장이 없이 그냥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장소에 내려주는  같기도 했다.


지도 어플로 계속 가는 길을 확인하다가 적당한 위치가 되었을 때 기사님께 다가가 내려달라고 했는데, 기사님이 생각보다 쿨하게 그냥 내려주셨다. 덕분에 파란 지점에서 하차를 할 수 있었고, 약 한 시간 정도 밤 산책 겸 뤄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버스 하차 지점에서 숙소까지는 사실 거의 직진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길이었다. 고맙게도 옆에는 실개천이 흘러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설렁설렁 걸어서 숙소로 가기 아주 적합했다.



가던 중에 굉장히 고풍스럽게 생긴 문을 하나 발견했는데, 딩딩먼(定鼎门)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름을 바이두에 찾아보니 수당낙양성 외곽성의 정문으로 무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북송 때가 되면서 점점 버려지긴 했지만 수나라부터 후주(后周)가 될 때까지 뤄양 외곽성의 정문으로 기능했던 곳이다.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는 문은 그 긴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딩딩먼의 맞은편에는 큰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많은 뤄양 시민들이 열대야를 이겨내려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덩펑 소림사까지 갔다가 친구 한 명을 사귀고 다시 뤄양으로 돌아온 하루. 1.8km의 돌계단 덕분에 몸은 상당히 지쳤지만 재밌는 볼거리도, 맛있는 음식도,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었던 충실한 하루였다.



[산시·허난 6일차 일정 (뤄양, 덩펑)]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놀라움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난 오늘 하루에만도 몇 번의 놀라움을 맛보았는지 모른다. 우선 내가 11시 20분에 소림사 입구로 들어갔는데, 마침 11시 30분에 무술공연이 있어 볼 수가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달마동. 사실 난 원래 쑹산 산행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노무 달마동을 찾으려고 1.8km의 돌계단을 올랐다는 거.. 그래도 달마동에서 쑹산의 멋진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기도 했고, 가는 길에 충칭 청년을 만나기도 했기에 이 산행(!)도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는 덩펑 후이양러우! 원래 소림사에서 돌아갈 때 나는 뤄양으로 가는 차를 탔어야 하는데, 차가 어딨는지 찾질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먼저 덩펑으로 간 뒤에 환승해서 뤄양으로 가야 했다. 덩펑에 도착하니 마침 5시가 넘어(4시가 넘은 것을 잘못 쓴 듯) 식당을 찾아 밥을 먹기로 했다. 덩펑 후이양러우는 정말 맛있었다. 바이두 백과에 따르면, 이 요리는 당태종이 다쳤을 때 소림사 스님들이 그를 위해 끓여준 요리라는데, 정말 맛있었다. 소림사에 가는 친구가 있다면 꼭 현지의 후이양러우를 먹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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