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라는 말을 알려준 드라마
■ 제목: 렵장 (猎场, 리에챵)
■ 장르 : 드라마 / 현대극 / 비즈니스
■ 년도 : 2017
■ 주요 배우 : 胡歌,菅纫姿,陈龙,万茜,章龄之 등
중국어로 '용두사미'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물론 중국에도 용두사미라는 표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이 쓰는 표현은 '호두사미(虎头蛇尾)', 즉 호랑이 머리에 뱀 꼬리입니다. 제가 오늘 소개드릴 드라마는 제게 이 표현을 몸소 가르쳐준 작품, 바로 <랑야방>의 주인공이었던 후거(胡歌, 호가)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리에챵>입니다.
2008년 <잠복(潜伏)>이라는 드라마로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을 받은 쟝웨이(姜伟, 강위) 감독의 드라마인 데다 후거라는 인기 배우의 등장으로 방영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입니다. 다만 다른 현대극에 비해 다소 긴 길이와 막판으로 갈수록 질질 끄는 스토리로 보고 난 사람들의 평은 기대치에 못 미쳤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사실 중국에 가기 전에도 이미 이 드라마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비즈니스 미팅 시 사용되는 용어를 배우기 좋은 드라마로 많이 추천받았었죠. 하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배우 후거 때문이었습니다. <랑야방>의 종주(宗主)가 현대극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후거를 보기 위해서 이 드라마를 보신다면 아주 정확한 선택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후거의, 후거에 의한, 후거를 위한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매거진에서 소개드린 드라마 중 대부분이 소설 원작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감독 쟝웨이가 4년의 시간을 들여 직접 쓴 대본으로 만든 드라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이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쓴 작품이니 주연배우를 정말 심사숙고해서 골랐는데, 그게 바로 후거였다고 합니다. 감독이 그렇게 열심히 주연배우를 골라야 했던 이유는 딱 하나, 이 드라마는 주인공 1인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후거를 찐하게 보고 싶으신 분은 이 드라마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후거는 다단계도 하고요, 감옥도 가고요, 신분도 바꾸고요, 헤드헌팅도 하고요, 연애도 하고 할 거 다 합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정추동(郑秋冬, 배우: 후거)의 다사다난한 인생을 통해 '뭐가 어찌 됐든, 스스로 능력을 갖추고 인생의 원칙을 지키고 살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有能耐,自然有人用你)'는 주제의식을 보여줍니다. 젊은 날 성공에 눈이 멀어 다단계에 종사하다가 감옥에 가서 인생의 은인(중국어로는 知遇之恩)을 만나고, 출옥 후 새 삶을 살며 겪는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헤드헌팅(중국어로는 猎头로, 이 드라마 제목이 猎场인 것도 여기서 기인합니다)계의 대인물이 되어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된다는 참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Empowerment(励志类) 드라마죠.
아시다시피 중국 드라마나 영화는 긴 심의과정을 거치는데, 심의의 대원칙 중 하나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처벌받고 개과천선하는 스토리인가?'입니다. 저희가 보기엔 이런 스토리가 좀 싱겁고 재미없지만, 중국 당국의 이런 중요한 원칙에는 부합합니다. 이 드라마 역시 예외일 순 없습니다. 심의를 통과 못하면 1~2년에 걸쳐 열심히 찍은 작품을 방영도 못하고 서랍에 넣어두어야 하니, '열심히 살면 사업도 연애도 모두 그대 손안에!'라는 메시지를 버릴 수 없었겠죠.
하지만 너무 후거 중심이라 중간중간 조금 몰입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긴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배우들(孙红雷,祖峰,李乃文,张嘉译 등)이 드라마 곳곳에 출연하는데 분량은 거의 까메오급이고,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십중팔구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죠. 거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남주인공 급입니다. 심지어는 여자 3번으로 나오는 장링즈(章龄之, 장령지)라는 배우는 현실에서는 주인공의 친구 역인 배우 천롱(陈龙, 진룡)과 부부 관계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후거를 좋아하는 여자 3번일 뿐이죠.
또 한 가지 단점은 글 초입에도 이야기했듯 길이가 너무 길고 후반부가 너무 늘어집니다. 복잡한 인물관계와 뿌려놓은 떡밥들을 회수하려는 제작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론적으론 너무 끌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중국 드라마는 100% 사전제작이라 한국처럼 드라마 인기에 따라 연장 방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이건 완전히 극본의 문제인데, 초반의 신선함과 긴박함이 후반으로 가면서 무너져서 아쉬움을 남기는 드라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은 아무래도 조그마한 인력사무소에서 시작해 북경 CBD 헤드헌터로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통해 비즈니스 세계의 잠재적 룰이나 쓰이는 용어, 전반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업계 드라마(行业剧)'로 구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2015~16년의 베이징, 항저우, 광시를 보고 싶으시거나 중국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드라마 주제곡인 양종웨이(杨宗纬)의 <一场恋爱(일장연애)>입니다. 양종웨이는 지난번 <하락특번뇌(夏洛特烦恼)>를 말씀드릴 때 한 번 소개드린 적이 있는 가수죠? 여기서도 삽입곡으로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첫사랑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곡이자 젊은 날의 둘과 많은 점이 변한 지금의 둘을 대조적으로 보여줄 때 드라마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삽입곡인데 양종웨이의 애절한 목소리와 잔잔한 리듬이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 양종웨이(杨宗纬)가 부른 OST, <一场恋爱(일장연애)>
그럼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이번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용두사미가 따로 없네.. 후거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보질 못했을 것 같다. 총 58부인데 뒤쪽 10부 정도는 고의로 늘린 거 아닌가? 스토리가 너무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