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중국인가 동남아인가

윈난(云南) 지역연구 1일차 (1)

by 볕이드는창가

계획 짜는 것부터 설레는 운남 여행


운남이다, 운남. 드디어 운남.


중국 지역전문가라면 해당 지역에 인프라가 잘 갖춰져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꼭 가려고 계획하는 곳들이 있다. 운남 등 동남부, 칭하이·둔황 등 서북부, 내몽고 같은 곳들. 모두 한국에 살면서 비행기표 끊고 직접 계획하고 가기엔 힘든 곳들이다. 직항이 없거나 있어도 이상한 시간대라서 항공편을 찾기 어렵거나, 혹은 인터넷으로 숙소를 찾기 어려워 외국인 접근이 어려운 곳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운남은 6월 중순 종강을 맞은 후 바로 계획을 짜기 시작한, 정말 가고 싶었던 지역이다.


왜 그렇게 가고 싶었냐, 그 기원을 따지자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북경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어학당 같은 반에 미국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학기 중에 갑자기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그의 행방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운남에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리쟝, 따리.. 기차도 타고 현지 민박에서 잠을 자고... 열심히 무용담을 읊던 그가 생각난다. 그야말로 가고 싶으면 바로 떠나는(说走就走) 여행. 당시 나는 그런 여행을 할 용기도 돈도 없어서 부럽기만 했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돈은 생겼지만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 돈도 생기고 시간도 생겼지 않나! 종강을 맞자마자 바로 운남 일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인데 너무 모르는 곳이라 열심히 찾아봤다.


일단 따리(大理)와 리쟝(丽江), 두 대표적이 도시는 박아놓고 남은 시간에 뭘 채울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운남성에 갔으니 성도(省会)인 쿤밍(昆明)에서 1박을 할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쿤밍은 운남에선 나름 대도시라 특별한 풍경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시솽반나(西双版纳)라는, 운남성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고, 찾아보니 쿤밍보다 매력적일 것 같아 거기에 가기로 했다. 시솽반나 In, 중간에 따리를 거쳐 리쟝에서 Out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개인적으로 트레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호도협 트레킹은 빼고, 따리나 리쟝 고성 안을 구경하거나 주변 마을을 구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획 짜는 것만으로 이렇게 설렐 수 있을까? 운남은 그런 곳이었다. (*사실 이후 칭하이 및 서북부 여행도 설렜음 ㅎㅎ)



봄의 도시를 찍먹하고, 시솽반나西双版纳로!


중국사람들은 운남성 성도 쿤밍(昆明)을 '봄의 도시(春城)'라고 부른다. 1년 내내 봄 같은 날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가 탄 시솽반나행 비행기는 바로 그 봄의 도시를 그야말로 찍먹하는 비행기였다.



비행기표가 두 장이다. 하나는 상해에서 비행기 탈 때 받은 탑승권, 다른 하나는 쿤밍에서 다시 받은 탑승권. 무려 아침 8시 15분에 이륙한 시솽반나행 비행기는 쿤밍에서 한 시간 정도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 13시 40분에야 시솽반나 가사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8시 15분 이륙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6시쯤 공항에 도착했던 기억이.. 표를 살 땐 직항인 줄 알았는데 쿤밍에서 사람들을 좀 더 태우고 이동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휴대전화를 켠 뒤 찍힌 위치다. 파란 점이 나의 당시 위치인데, 시솽반나가 어디 있는지 아주 잘 볼 수 있다. 일단 운남성의 최남단이고, 미얀마, 라오스와의 접경 지역이다. 시솽반나의 정식 명칭은 시솽반나 다이족 자치구다. 시솽반나의 '시솽'은 다이족 언어로 열둘, '반나'는 땅이라는 뜻으로, 다이족의 12명의 족장이 이곳 땅을 나눠서 통치했던 것을 의미한다. 현지에선 풀네임을 부르기보단 반나(版纳)라고 주로 부르는 듯했다.


다이족은 한자로 태족(傣族)이라고 표기하는데, 태국인과 뿌리가 같은 민족이다.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하지 않고 운남성에 남은 사람들이 다이족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한 민족이 되어있다. 소수민족 자치구는 공항 등에서 문자를 표기할 때 해당 민족의 문자를 병기하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공항 도착 후 여러 곳에서 태국어와 유사한 문자를 볼 수 있었다. 듣기로 태국어로 안녕하세요, 는 '사왓디카', 라오스어로는 '사바이디', 다이족 언어로는 '사바사디'라고 하니, 어족도 같지 않나 싶다.


월병 광고에도 다이족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태국어와 그 생김이 유사하다.


따리나 리쟝에 가면 괜찮은 숙소에 묵기 어려울 것 같아, 시솽반나에서는 좀 좋은 숙소에 묵어보기로 했다. 쉐라톤 계열의 호텔이었는데, 시내인 징홍(景洪)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위치였지만 그래서 덜 번잡스럽고 조용한 리조트 같은 분위기였다. 시내 구경 후에는 택시로 이동하면 되어서 크게 무리는 없었는데, 주변에 숲과 산이 많고 습한 기후라서 모기 기피제 등은 필요할 것 같다. 실제로 체크인할 때 직원이 절대 창문을 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최근 지도를 찾아보니 근처에 농장 같은 것도 생긴 것 같다. 가족단위 방문하기에 좋은 깔끔한 숙소였다. 놀라운 건 이 정도 규모인데 1박에 500위안, 한화로 10만 원 정도였다는 점이다. 현재도 찾아보니 성수기가 아니면 16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이 가격에 이 시설이면 올만하다. 물론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이족 왕의 별장, 만팅어화원(曼听御花园)


숙소에 짐을 놓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만팅어화원. 만팅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예전에 다이족 왕이 머물던 별장이었다고 한다. 본래 명칭이 공원이었는데 관광지 개발 이후 어화원으로 바뀐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입구에 중국-태국의 우호협력을 위한 비석도 볼 수 있고, 건물 디자인도 전통적인 한족의 건축 양식과는 다르다.



사실 이곳은 코끼리 공연을 볼 수 있는 공원으로 유명한데, 내가 방문한 날은 날씨 때문인지 공연을 하지 않았다. 동물 복지 차원에서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공연이었기에 잘됐다 싶었다. 공원 안에는 흡사 동남아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어 둘러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공원 안을 구경하다 보면, 이렇게 시솽반나 총불사(总佛寺)라고 적힌 편액을 볼 수 있다. 총불사는 상좌부 불교(일명 소승불교)에 기반한 사원인데, 만팅어화원 옆에 붙어있다. 어화원 입장권을 구매하면 총불사까지 같이 관람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론 만팅어화원보다 총불사가 더 인상적이어서 두 군데 꼭 같이 보기를 추천한다.



반짝반짝 금칠한 벽, 뾰족하게 솟은 지붕들은 미얀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우리가 아는 사원과는 사뭇 다르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금빛 사원과 금빛 대형 불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곳 총불사에는 현재도 실제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계시는데, 우연히 카메라에 포착되셨다. 태국의 스님들처럼 주황색 법복을 입으신 모습을 볼 수 있다.



총불사를 다 보고 나오면 눈앞에 큰 호수가 보인다. 아마도 별장을 지을 때 인공적으로 만들었을 호수인 이곳에서는 배도 타볼 수 있다. 돌아다니다 보니 방생을 하는 곳이 보인다. 자녀의 학업 성취를 기원하거나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준비된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인데, 유료로 체험할 수 있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로 치면 절에서 연등을 사서 다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또 다이족의 무형문화유산인 도자기 등이 전시된 곳도 있었는데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건축물들을 자세히 보면 공작과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붕 모서리의 장식도 공작의 머리로 되어있고. 찾아보니 공작과 코끼리가 이곳 시솽반나의 마스코트란다. 시솽반나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야생 코끼리가 서식하는 지역이라고 하니 왜 마스코트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코끼리 공연도 있구나! 코끼리처럼 공작도 시솽반나의 상징적인 동물로 각종 동물 쇼를 통해 소비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시솽반나는 중국 본토보다 오히려 동남아의 문화와 더 가까운 듯하다. 물리적 거리도 가까우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사진들을 놓고 봐도 여기가 태국 어느 도시인지 중국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땅이 크니 꼭 국경을 넘지 않아도 이국적인 풍경에 둘러싸일 수 있구나. 여러 나라 중 중국 지역전문가가 가장 가성비가 좋다(?)는 혹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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