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붕이 자원방래하니

꿈을 쫓는 친구들과의 만남

by 볕이드는창가

有朋自远方来,不亦乐乎?


지역전문가 기간 동안 거점도시에 가족 방문은 금지되어 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현지에 대해 배우는 것에 게을러질까 염려되어 생긴 규정으로 알고 있다. 가족과 생이별이라니, 좀 마음이 아픈 규정이지만 어떤 지역전문가들은 아빠로서, 엄마로서의 책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가족이야 가족관계증명 등으로 증명이 되는 관계지만, 친구는 어떨까? 사실상 친구의 방문마저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역전문가 기간에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친구들을 해당 국가로 초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경우, 파견 시 지인들에게 파견 사실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당시 중국은 무비자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관련 배경이 전혀 없는 지인이 나만 믿고 여행을 오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개인의 여행 비자 발급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전공은 중어중문학. 과 후배 중 중국 관련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기에 내가 상해에 머무르는 동안 얼굴 한 번 보러 오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4박 5일 서안 지역연구를 마치고 8박 9일에 달하는 운남 지역연구를 위한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에, 10년가량 알아온 후배들과 만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친구 중 한 친구가 먼저 상해에 도착했다. 사실 중국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아는 친구라 나는 오히려 상해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동타이샹(东泰祥)이라는 음식점에서 마쟝면과 셩졘을 시켜 상하이 주전부리도 맛보게 하고, 가본 적이 없다는 프랑스 조계지에 데려가 현대문학 시간에 배웠던 빠진(巴金)의 옛 자택도 들어가 보고, 당시 한국에선 맛보기 힘들었던 카오위(烤鱼) 집에 데려가 매콤한 카오위도 먹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제안이었다면, 다음 코스는 후배가 생각해 낸 공연 관람! 중국에서도 경극에 밀려 인기가 많지 않은 곤곡(昆曲),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모란정(牡丹亭)을 마침 예원에 있는 공연장 하이샹리위엔(海上梨园)에서 해준다길래 미리 예매하고 방문했다. 소극장 정도 되는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 배우도 네다섯 명밖에 안 되는 공연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배우들의 목소리나 작은 손동작, 자세나 연기에 집중하기가 더 용이했다. 중문학도 후배 덕에 중국의 특별한 공연을 관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니 공연장 꼭대기에서 아래에 있는 예원상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예원 뒤로 푸동에 있는 고층 건물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상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었다.



밤의 예원, 구곡교 위에 가득한 사람들, 반짝이는 조명들. 개인적인 취향으로 예원은 역시 낮에 봐야 예쁘지만, 또 이렇게 특별한 만남이 있을 때 가끔 저녁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하지만 저 구곡교 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얼른 후퇴!



후퇴 후 향한 곳은 집 근처 구스아일랜드. 한국에도 있는 브랜드인데, 괜찮은 맥주를 먹을 수 있는 브루어리라 방문하게 되었다. 오전 비행기로 상해에 도착해 오후 내내 먹고, 돌아다니고, 공연 관람까지 하느라 알찬 하루를 보낸 후배와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옛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酒逢知己千杯少!



다음날 아침, 두 번째 후배가 상해에 도착했다. 셋이 모이는 건 너무도 오랜만이라, 미리 인민광장 근처에 있는 난징 음식 전문점 난징따파이당(南京大牌档)을 예약해 방문했다. 대기가 꽤 있어서 예약하고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징 지역연구 때 난징에서 체인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상해에서는 처음이다. 오리 요리나 면 등 달달한 난징 특색 요리를 몇 개 시켜서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먹고 디즈니를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지하철로 강을 건너 동방명주 근처에 있는 디즈니 스토어에 방문했다. 황푸강 서쪽인 난징시루에 살면서 너무도 오랜만에 황푸강을 건넌 듯했다. 후배 덕분에 푸동 바람도 쐬고 좋았다.



꿈을 쫓는 이의 반짝임과 함께한 날


상해까지 나를 보러 와준 이 친구들은 그야말로 꿈을 쫓는 이들이다.


한 친구는 2009년, 내가 대학교 2학년, 그 친구가 1학년 때 북경에서 한 달 동안 중국어를 배우는 학교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국어를 참 잘한다, 발음이나 어조를 참 잘 따라한다, 언어적 감각이 좋은데 공부도 좋아하는 친구네, 라는 생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했던 것 같다. 그 뒤 학교에서 여러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이 친구가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하지 않으면 참 국가적 손실이겠다, 싶던 순간 그는 오히려 취업을 결정했다. 회사는 잘 다니나, 싶었던 순간 그는 다시 꿈을 찾아 대학원에 지원했다. 19년 당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이 친구는 지금 중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다른 한 친구는 2010년에 알게 된 친구인데 자그마한 체구에 귀염귀염하게 생겼는데 늘 참 똑부러지게 발표도 잘하고 자신의 의견도 잘 말했다. 외고 출신에 노력도 많이 해서 중국어도 잘했고, 다들 어려워하는 수업에서도 훌륭한 과제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친구는 졸업 후 뭘 하게 될까, 싶을 때 그녀는 대학원을 지원했다. 19년 당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중국으로 필드 트립을 나와있던 이 친구는 지금 홍콩에서 교수가 되어있다.


지금은 직장인이 된 나지만 나 역시 학부를 다닐 땐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중국어 공부가 좋았고, 고문을 읽는 일이 즐거웠다. 당시에는 집안 형편을 핑계로 취업을 결정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 이런 훌륭한 인재들과 경쟁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비영리 재단에서 인턴도 하고, 대학원 관련 길도 알아봤었지만 그 뒤에 취업을 하고 여느 직장인들과 같은 삶을 살았다. 19년 당시 지역전문가로 상해에 있던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육아휴직자가 되어있다.


꿈을 쫓는 두 후배와 현실의 벽을 핑계로 바운더리 안에서의 목표만 쫓고 있는 한 직장인. 두 후배는 당시 어찌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직장에서의 짐을 잠시 놓고 상해라는 제3의 지역에서 이 친구들을 만나니 후배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꿈을 쫓는 반짝임을 잃지 않길 바랐다. 2026년 현재, 아직도 멋지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친구들을 보면 그래도 당시 내 바람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 역시 미뤄뒀던 2019년 기록을 이번에야말로 끝내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지. 으쌰으쌰!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오늘 10년 지기 친구가 방문했다. 너무 즐거웠다! 상해의 주요 관광지는 다 가본 친구라, 일단 프랑스 조계지를 좀 돌아봤다. 나보다 중국과 중국 문화를 더 잘 아는 친구였기에, 이 친구덕에 저녁에 곤곡 공연도 볼 수 있었다. 배우들의 목소리, 손짓, 의상, 연기 모두 너무나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예원 야경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예원은 역시 낮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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