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열대"雨"림을 만나다

윈난(云南) 지역연구 2일차 (1)

by 볕이드는창가

비바람이 불던 열대식물원(热带植物园)


다음날 아침, 제발 날씨가 좋길 바란 어제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어제 징홍 시내를 구경했으니 오늘은 시솽반나 교외를 구경하기로 계획했는데 큰일이다. 심지어 오전에 가려고 계획한 곳은 실외로 다녀야 하는 열대식물원. 계획을 바꿀까 고민하다가, 다시 올 수 없는 도시이니 날씨가 좋지 않아도 강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기존 계획대로 가보기로 한다.


숙소에서 대중교통으로 교외에 가기에는 날씨 상황이나 교통 상황 등이 여의치 않았다. 택시로 간다손 치더라도 관람 후 돌아올 때 또 택시를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미리 여행 어플로 차를 대절해보려 했는데 적절한 기사를 찾지 못해 걱정하던 찰나, 가끔 호텔에서 빠오처(包车)를 예약할 수 있게 도와줄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단 한 번 얘기나 꺼내보자며 프론트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는데, 프론트에서 당연히 가능하다며 친절하게 예약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하루 400위안, 한화로 8만 원 정도에 입장료 외 기타 비용 결제 없고, 시간이나 거리 초과 비용 없이 하루 동안 계속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여행 어플을 통해 차를 대절하면 시간이나 거리에 따라 초과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가격적으로 따져보면 싼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날 잡은 일정 자체가 시내에서 좀 떨어진 지점들이었고 날씨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용하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열대식물원이다. 중국과학원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중국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특수한 식물종이 가장 많은 열대식물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솽반나 지역에서도 라오스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기후도 라오스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입장료는 80위안인데, 내부가 워낙 넓어서 도보로만 돌아다니면 하루를 꼬박 써야 할 정도이니 내부를 돌아다니는 관람차표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비용은 50위안. 궂은 날씨였지만 관람차 덕분에 중요한 지점만 잘 집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열대식물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왕련(王莲). 연꽃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잎을 자랑하는 식물이었다. 직경이 2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파리 하나가 30kg 정도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하여 실제로 잎 위에 올라가는 체험도 진행하고 있었다. 난 너무 무서워서 패-스. (어차피 몸무게가 초과한다는 사실은 비-밀)



왕련 다음으로 특별한 식물, 헬리코니아(蟹尾蕉, 아래 두 번째 줄 오른쪽 사진)도 만났다. 헬리코니아의 중국어 이름을 보면, 게 꼬리풀인데, 게의 집게발 같은 모양의 꽃이 달리는 파초과의 식물이다. 그 잎은 바나나잎과 비슷하게 넓고 타원형인데, 꽃의 화려한 색깔이 이곳이 덥고 습한 기후임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그 외에도 파인애플과 유사한 식물이나 행잉 플랜트와 같이 특별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바깥에 위치한 연못에는 각종 연꽃이 그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꽃마다 꽃이름이 적힌 팻말이 달려있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대로 구경은 못했다. 날이 좀 더 좋았다면 천천히 거닐었을 텐데, 아쉬웠다.



왕련, 헬리코니아에 이은 열대식물원의 슈퍼스타, 망천수(望天树).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었다. 찾아보니 중국에만 있는 희귀 수종으로 '열대우림의 거인'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중국에 와야지만 볼 수 있는 나무라니! 비가 미친 듯이 내리는 와중에도 이 희귀한 경험을 놓칠 수 없어 나무 사이에 서서 잘 찍지 않는 인물 사진도 찍었다. 이 세 가지만 보면 열대식물원 찍먹 정도는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위하며, 비 오는 식물원이 그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고 자평해 보지만.. 내 얼굴을 흐르는 건 빗물인지 눈물인지......


그야말로 진정한 열대'우'림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상, 비상! 발이 터졌다!


지역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뭘까? 바로 건강한 발이 아닐까? 두 발로 열심히 걸어 다니며 지역의 분위기를 느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역연구 이틀차에 발이 터져버린 사람, 바로 나다. 그것도 그렇게 가고 싶었던 운남 지역연구에서!


발단은 지역연구 바로 전날 산 새 운동화였다. 한국에서 신고 간 운동화는 진작 여기저기 터져 못쓰게 된 상황이었는데, 페이위에(飞跃) 운동화가 한국과는 달리 상해에선 저렴했다. 신다가 터지면 새 운동화를 또 사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가격이었기에 계속 착용했었다. 운남으로 출발하기 바로 전날도 집 근처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새 운동화를 구매한 상황이었다.


빳빳한 천으로 된 스니커즈였는데, 시솽반나에서 비를 하도 맞아 젖으니 운동화가 비에 점점 불면서 천이 점점 더 뻣뻣해졌고, 새 신발에 적응이 덜되어 살짝 까지고 있던 발이 그 빳빳한 천에 쓸려 더 큰 면적으로 까지기 시작한 것.


걸어가다가 발이 점점 아파서 신발을 쳐다보니 붉은빛이 비치는 게 보였을 때의 아찔함이란! 일단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으며 상황을 좀 수습해 보기로 했다.


도착한 식당은 지눠민족풍정원(基诺民族风情园)이라는 곳이었다. 오후에 둘러보기로 한 지눠산채(基诺山寨, 지눠산자이)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곳인데,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지눠족(基诺族)에 대해 소개하는 소형 박물관 같은 곳에 부대시설로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이 식당인지라 지눠족의 전통 음식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지눠족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근처에 보이차로 유명한 지방인 푸얼(普尔)이 위치했기에 지눠족은 요리에 찻잎을 꽤 사용하는 것 같았다. 찻잎으로 볶은 소고기를 바나나잎같이 큰 잎에 싸서 주는 요리와, 민물고기 요리, 타로로 만든 유사 크로켓과 국이 나왔다. 맛은 독특했다. 맛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먹어본 적 없는 맛이라서 독특했다는 얘기. 예를 들어 찻잎을 곁들인 소고기 요리는 은은하게 차향이 나는 게 특이했고, 다른 요리들에서도 약간 다른 중국요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향신료의 향이 났다. 나중에 찾아보니 좀 더 유명한 특색요리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지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로 음식을 주문해서 먹은 데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평이 괜찮은 식당이었다는 점을 고지해 둔다.



자, 배는 채웠고, 나의 터져버린 발은 무엇으로 수습할꼬? 일행 중 밴드나 약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상처를 처치할 도구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냥 놔두면 상처가 점점 더 커져 오후에 걸어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식당에 혹시 위생비닐이 있는지 물어보니 그건 있다고 하여 일단 비닐로 발을 좀 감싸고 신발을 다시 신기로 했다. 피가 밖으로 배어 나오는 것도 방지하고, 발이 더 까지는 것도 막아주기 위해서였다. 고정숙소 보러 다닐 때 신발에 비닐을 씌운 적은 있어도 발에 비닐을 씌우고 신발을 신은 건 또 처음이네. 그래도 비닐을 씌우니 걸을 때 한결 나았다. 아- 싼 게 비지떡(一分钱,一分货)이라고, 당했다 당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페이위에 계속 사서 신었다는 게 함정)


왼발 오른발이 다 터져버린 가련한 나의 발. 빗물에 피가 희석되어 색이 옅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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