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3일차 (2)
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네모□에 가까웠다. 네모네모한 고성의 모습은 핑야오 고성에서 워낙 많이 봤기에 남방의 고성인 따리에는 좀 더 자유분방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하긴 따리에는 당나라 때 세워진 탑도 있고, 고성 자체가 남조 때의 수도 근처 시가지였다고 하니 조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네모반듯한 모양인 것도 당연하다만, '강남을 돌아다닐래, 홍대를 돌아다닐래?' 하면 주저없이 구불구불 홍대를 택하던 사람이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따리와 리쟝은 지도에서도 그 모습이 명확히 다르다. 따리는 일전에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어서 바둑판형 구조에 가까웠고, 리쟝은 소수민족인 나시족(纳西族)이 살던 자치현에 만들어진 시가지여서 그 모양이 좀 더 자연형성된 도시에 가까웠다. 이런 점에서 따리보단 리쟝이 내 취향에 더 맞았다. 물론 이것도 리쟝까지 다녀온 뒤에 느낀 감상이지만.
시솽반나에서 따리로 올라오면서 고도는 훅 높아진다. 한라산 고도 정도 된다는 2,000m 남짓. 이후 가게 될 리쟝은 이보다도 더 높아지고, 혹시 옥룡설산에 갈 계획이라면 더 높은 고도를 경험할 수도 있다. 사실 운남에 오기 전 상해에서 미리 홍징톈(红景天)이라는 약을 복용했는데, 고산병 증세를 약하게 해주는 약이고 여행일로부터 최소 일주일 전부터 먹어야 했다. 특히 운동을 많이 하거나 근육량이 많은 남성의 경우에는 고산병 증세가 더 심하게 올 수 있으므로 꼭 복용할 것을 추천한다.
열대 기후에 가까운데 해발고도가 높고 근처에 산과 큰 호수가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아주 변화무쌍하다. 물론 우리가 변덕이 가장 심할 7월 중하순에 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가 쏟아졌다가 갑자기 개었다가 구름이 잔뜩 끼는 등 아주 짧은 시간에 하늘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름에 가게 된다면 꼭 우양산을 챙겨갈 것을 추천한다. 비가 많이 오더라도 대체로 소나기일 확률이 높으므로 고성 근처 어디든 들어가서 잠시 비를 피하면 된다.
따리고성이 속한 따리의 정식 명칭은 따리바이족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 본래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바이족(白族)이 많이들 모여살던 곳인데, 예전엔 그 밀집도가 더 높았으나 현재는 많이들 동남아 등지로 이주하고 따리 주민의 약 3분의 1 정도만 바이족이라고 한다. 고성을 구경하면서 바이족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을 딱 두 유형 마주쳤는데, 하나는 바이족 전통문화 체험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철거현장에서 폐기물을 모으던 사람들이었다. 따리에 남은 바이족 사람들이 주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평상복을 입은 바이족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이는 한 여행객의 단편적인 판단임 또한 인정한다.)
숭성사와 삼탑을 구경한 뒤 고성 동쪽에 있는 얼하이문(洱海门)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쭉 걸으면서 고성이 어떤 느낌인지 구경해볼 생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건물마다 그려져있는 화려한 도안의 그림들. 아마 고성을 조성하면서 통일성을 위해 그려넣은 무늬일 것이다. 그래도 이 그림들이 고성의 멋을 한 층 더 살려준다.
날이 더워 잠시 카페에서 당 공급도 하고 목도 좀 축이기로 한다. 귀여운 코끼리가 그려진 카페였는데, 아직까지도 영업은 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조용하고 깔끔한 카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중뎬핑 평은 그다지 좋진 않네.
고성을 구경하다가 가장 놀랐던 점은, 이 작은 고성에 온갖 종교들이 다 모여있다는 점이었다.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 예배당까지, 참 다양한 종교들이 고성 곳곳에 보였다. 대리국이 불교를 숭상했기에 숭성사나 삼탑이 있는 것은 이해가 됐지만 서양의 종교들이 들어와있는 것은 특이했다. 따리가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상인들의 교류가 잦아 다양한 종교들을 포용하게 된 것인지, 이 많은 종교들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나는 특히 이곳의 천주교당이 무척 인상 깊었다. 위로 솟아오른 처마와 장식들이 흔히 알던 성당의 모습과 달 신기했다. 이곳은 1927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문화대혁명 때 약간 훼손되긴 했지만 1983년 그 부분을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중국 지역전문가 전체 과제로 중국 각지의 매력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나는 이 천주교당을 소개하기로 했다. 다양한 소수민족과 종교들이 모인 운남-따리라는 곳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천주교당과 같은 특이한 건축양식의 건물들은 고성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특히 고성의 문들은 대체로 처마가 위로 솟구친 양식으로 지어져있었고, 지붕 모서리나 정중앙에 용이나 탑 같은 장식이 올라가있었다. 남조 시대나 대리국의 유물인지, 바이족의 전통 건축양식인지 궁금했다.
얼하이문에서 고성 서쪽 끝까지 쭉 걸은 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남문을 향해 걸어가다 재밌는 식당을 만나 들어가보기로 했다. 식당은 이름하야 뚜안꽁즈(단공자, 段公子). 한창 <천룡팔부>를 보고 있던 나는 입구에 쓰여있는 그 세 글자에 홀린듯 가게로 들어갔다. 대리국을 테마로 하여 운남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었는데, 김용 소설 팬이라면 많이들 찾을 것 같은 곳이었다.
버섯의 도시 운남답게 다양하 버섯 요리가 있어 고기 요리와 함께 주문해보았다. 특히 전통주같은 것을 시키면 중국 고대 술잔을 제공해주어서 거기다 따라마실 수 있었는데, 이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다. 뚜안꽁즈는 따리에서 각각 버섯 훠궈와 운남 요리를 파는 식당으로 나눠 체인점을 내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갔던 지점도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 따리에 온 김에 이곳에서 옛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단공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저녁을 먹고 고성 남문을 나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낮엔 관광객들과 택시들이 많아 사진이 잘 나오질 않았는데, 밤이 되니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이 그림자가 되어 한결 위용있어 보이고, 문에 적힌 따리(大理)라는 편액도 낮에 봤을 때보다 또렷해보인다. 그래, 여기가 포용의 고성 따리다.
[윈난 3일차 일정 (따리)]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따리 첫날. 지나간 얼하이(洱海), 숭성사와 따리 삼탑, 바이족 주택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도안, 중서문화가 융합된 천주교당, 그리고... 천룡팔부! 오늘 심지어 "단공자"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이곳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해서, 예측이 안 된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한테 좋은 방향으로 변해줬다. 내일도 부탁해, 날씨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