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이 심은 나무가 있대!

윈난(云南) 지역연구 3일차 (1)

by 볕이드는창가

몰랐어, 그 대리가 그 대리인줄


여기서 퀴즈! 대리석의 '대리'는 무슨 뜻일까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 역시 지혜라고(不知为不知, 是知也) 배웠으므로 여기서 자진납세를 한 번 해보자면, 대리석이 내가 가게 된 따리(大理)의 특산물이라서 대리석이라 부른다는 것을 나는 따리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따리고성(大理古城) 앞에 실제로 대리석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따리'하면 생각났던 건, 1. 배낭여행객의 성지로 리쟝(丽江) 보다 덜 상업화되어 있다던 지인의 평가, 2.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던 단공자(段公子)의 대리왕국 정도.


시솽반나에서 이틀을 보내고, 운남성에서의 세 번째 날. 배낭여행객의 성지라는 바로 그 따리에 간다. 예전엔 보통 운남에 여행을 간다 하면 '옥룡설산(玉龙雪山)'을 끼고 있는 리쟝을 갔는데, 리쟝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지면서 상업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어 리쟝보다 남쪽에 있는 따리로 발길이 많이 옮겨가고 있다는 평을 워낙 많이 들어서, 사실 무척 기대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고성이라 하니 예전에 핑야오 고성(平遥古城)에서 보냈던 여유로운 한 때가 생각나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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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시솽반나에 왔을 때 이용한 가사 공항에서 운남 전용 럭키항공을 타고 따리로 이동한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이고, 비행시간은 55분. 운남 내 이동이라 그리 멀지 않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것은 수화물 초과 비용. 대형 캐리어도 아니었고 짐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워낙 작은 로컬 비행기라 수하물 초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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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솽반나에서 따리로 올라가는 길에는 따리 신도심을 지나간다. 사진이 따리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상공에서 찍은 따리의 신도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고성이 있는 구도심.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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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이동하면서 찍었던 얼하이(洱海). 리쟝에 옥룡설산이 있다면 따리에는 얼하이가 있다. 얼하이는 내일 둘러보기로 하여 일단 이동하면서만 담아본다.


숙소는 따리 고성 남문 가까이에 위치한 미뤄신수객잔(米洛忻宿客栈). 2026년 2월 현재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위치나 시설, 평점 등을 열심히 찾아보고 고른 숙소였다. 이름은 객잔이라 되어있지만 내부 시설은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되어있다. 고성 남문에서 도보로 얼마 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고성 구경에 편리했다.


1302.jpg 숙소 가는 길에 보인 고성 남문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은 숙박보증금(押金)이다. 중국에서는 숙소 체크인을 할 때 보통 보증금을 요구하는데, 신용카드의 경우 보증금이 포함된 비용을 결제한 후 퇴실 시 보증금만큼을 환불 처리해 주는 것이 가능하나, 체크카드(银行卡,借记卡)의 경우 환불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려 번잡스럽거나 업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지방에서 객잔이나 소형 숙박업체에 묵을 경우 나는 미리 현금을 준비해서 사용하곤 했다. 보증금을 지불하면 업체에서 영수증(收据)을 수기로 적어주고, 퇴실 시 영수증을 보여주면 바로 현금으로 환불을 해줬다. 비용처리가 편해서 이 방법이 나는 좋았다. 예약 시 미리 보증금이 얼마인지 물어보고 준비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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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짐을 놓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다. 운남에 왔는데 그 유명한 쌀국수(米线)를 아직도 안 먹어본 게 생각나서, 숙소 근처 아무 가게나 들어가 쌀국수와 또우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맛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것 같은 기억이...



남방 불교의 성지, 숭성사(崇圣寺)와 삼탑(三塔)


여행책에서 따리를 찾았을 때 갈만한 곳으로 삼탑(三塔)이 나왔다. 얼른 고성을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대리국 왕들이 왕위를 넘겨주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절이라는 말을 듣고 방문해 보기로 했다. 당시 한참 <천룡팔부>를 재밌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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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당 때 삼탑 중 가장 큰 탑이 먼저 만들어졌고, 남조 때 숭성사가 지어졌으며, 큰 탑 양옆의 작은 탑 2개가 대리국 때 세워지면서 숭성사와 삼탑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숭성사와 삼탑이 하나의 관광지로 묶여 같이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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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계단을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왼쪽 사진처럼 노란색 지붕의 건물이 세 채 서 있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방금 택시에서 봤던 얼하이(洱海)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숭성사의 대웅전은 중국에서도 그 규모가 매우 큰 축에 속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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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사찰의 정문을 보면 이런 모습이다. 이렇게 처마가 위로 솟은 모양은 동남아 지역 문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앞서 남조 때 숭성사가 세워졌다고 했는데, 이후 대리국에 이르면서 불교가 점점 더 성행하기 시작하여 대리국은 심지어 왕이 왕위를 내려놓으면 이곳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기까지 했다. 이런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찰인 숭성사를 당시 동남아 고위층들이 많이 방문했었고, 숭성사는 점차 남방 지역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사찰 앞 편액에 적힌 '불도(佛都)'라는 글자다.


또 사찰 앞에는 세 개의 깃발이 걸려있는데, 가운데 깃발은 오성홍기, 즉 중국의 국기이고, 오른쪽 노란 깃발은 숭성사의 깃발, 왼쪽 여러 색이 섞여있는 깃발은 불교교기, 국제불교기라고 한다. 이 역시 이곳의 불교문화가 당시 매우 존중받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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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성사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위 사진처럼 세 개의 탑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가운데 탑은 당 때, 좌우 탑은 대리국 때 만들어진 터라 탑의 양식 자체가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탑은 서안에서 봤던 대안탑과 유사한 게 딱 당나라 솜씨다.


숭성사와 삼탑을 구경하다 보니 특별한 광경을 마주쳤다. 한 나무 앞에 중국인들이 잔뜩 몰려있었던 것이다. 모여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연유를 물으니, 그 나무가 <천룡팔부>의 작가 김용이 직접 심은 나무라고 했다. 김용의 무협소설 작품에는 대리국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김용은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따리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따리에 대해 잘 아는 동료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들은 역사와 문화를 소설에 녹였다고 하는데, 1998년에야 비로소 따리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짧은 일정이었지만 따리 이곳저곳을 참관한 후 숭성사에서 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는데, 그 나무가 바로 사람들이 구경하던 그 나무였다. 중국인들의 김용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이 남아있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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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탑 주변을 열심히 구경하던 중, 내 눈에 포착된 광경. 건물들에 독특하고 세밀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핏 허페이 산허고진(三河古镇)에서 봤던 모습이 떠오른다. 삼탑 근처에 조성되었거나 조성 중인 숙박시설들일 것이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수용할 숙소를 짓는 것인데, 하얀 건물 외벽에 독특하고 세밀한 도안을 그려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쯤 되면 어떤 매력으로 이렇게들 따리에 찾아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제 고성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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