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4일차 (1)
운남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책에, 따리나 리쟝에 가면 고성만 보지 말고 그 근처 작은 마을들도 가보라는 이야기가 써있었다. 고성은 아무래도 작정하고 관광지화시킨 장소라 다소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각오해야 하는데, 주변 작은 마을들은 그나마 그런 부분이 적고 예로부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조언을 머리에 새기고, 따리에서의 둘째날 아침, 고성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있는 마을인 씨저우(喜洲)로 향했다. 고성에선 이제 보기가 어려운 바이족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이곳 역시 어느 정도 관광지화가 되고 가택들도 복원 과정을 거치느라 옛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따리고성보다는 나은 편이란다.
숙소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씨저우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한화로 만 원 정도 나왔다. 도착하니 길에 웬 마차들이 꽃단장을 하고 서 있다. 씨저우를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방편 중 하나일텐데, 여기서 약간 쎄함을 느낀다. 아- 이곳도 상업화가 많이 진행된 곳이구나. 건물 벽화에는 '민족단결, 우리는 한가족(民族团结一家亲)'이라 적힌 문구 위에 바이족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소수민족 역시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정부의 사상이 아주 잘 드러난다.
도착하자마자 씨저우에 포수바바(破酥粑粑)가 유명하다 하여 하나 사먹어봤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에는 맛을 내는 속이 들어있는 일종의 호떡인데, 파맛과 장미맛(운남에 장미를 사용하여 꽃맛을 내는 음식이 많다)을 사봤다. 비가 오는 날에 따끈따끈한 호떡을 먹으니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다.
이 간식은 씨저우 안에 파는 집이 아주 많은데, 대부분의 가게가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舌尖上的中国)'이라는 미식 다큐의 제목을 간판에 써놓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생생정보통 출연' 혹은 'VJ특공대 출연'이려나...? 어딜가나 그 맛은 비슷할텐데, 기왕이면 중국인들이 가게 앞에 줄을 좀 서 있는 가게를 고르는 것이 좋겠다. 중국인의 줄은 믿을만하니까!
따리고성이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씨저우에는 아직 이곳에 살고 있는 바이족 주민들이 꽤 있다고 한다. 어디가 사는 집이고 어디가 안 사는 집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어쩌면, 집이 보수가 되었는지를 보는 게 아닐까 한다. 바이족 전통가옥이 많이 남아있다는 씨저우에서 나는 두 종류의 집을 볼 수 있었다. 한 종류는 무척 깔끔하게 하얗게 칠한 벽에 화려한 도안이 그려진 집, 다른 한 종류는 벽에 칠이 다 벗겨져있고 지붕도 고르지 않은 집. 추측컨대 후자가 실제 바이족이 사는 집일 것이다. 거주지는 당연히 밖에서 눈으로 볼수밖에 없으니, 사실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제 바이족의 건축 양식의 종합박물관이라는 엄가대원(严家大院)에 갈 시간이다. 차(茶)를 팔던 씨저우 출신 상인 엄자진(严子珍)이 20세기 초에 지은 저택이다. 차를 팔아 거상이 된 엄자진의 부는 나라에 대적할 정도였다고 하며, 당시 엄가대원에는 실제로 산더미처럼 쌓인 돈이 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저택은 문화대혁명을 비껴가진 못했고, 이후 일부 복원과정을 거쳐 지금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다. 산서(山西)에서 봤던 교가대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건축양식이 확실히 독특했다.
대부호의 저택인만큼 외부로 통하는 문은 좁고 폐쇄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넓게 트인 마당을 둘러싼 저택이 등장한다. 사각형의 네 변 중 세 변은 2층 구조의 방, 한 변은 벽으로 이루어진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 양식으로 지어진 이 주택구조는 바이족 전통 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는 이곳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구역별로 테마를 정해 전시관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전시관 중 대리석 전시관이 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대리석의 생산량이 제일 많은 것은 이탈리아이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늬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것은 이곳 따리에서 난 대리석이라고 한다. (물론 생산량에서도 이탈리아에 이어 2등이긴 하다.) 돌을 건축의 재료보다 관상용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평가가 아닐까?
엄가대원 2층에 올라 밖을 내다보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기와를 촘촘히 이어 만든 지붕, 나무 사이사이에 그림을 넣은 장식들, 난간마다 세부적으로 세공이 들어간 나무들. 정교한 솜씨가 엿보인다. 괜히 종합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이 아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신기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저택이 한 쪽은 유럽에서 볼 것 같은 양식의 건물, 나머지 한 쪽은 바이족 전통가옥과 비슷한 동양식 건물로 되어 있었다. 집주인이 상인으로서 다른 지역의 문화를 다양하게 접했기에 이렇게 동서양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자, 집을 대충 다 둘러봤을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엄가대원의 안내 지도였는데, '엄씨네 집'이 '엄한 집'이 되어 있었다! 한자 한 글자가 여러가지 뜻을 가질 수 있는 중국어를 (아마도) 번역기를 돌렸기에 나온 우스운 오역인 듯했다. 지역연구를 다니면서 이런 우스운 오역을 발견한 적이 꽤 있는데, 이런 오역은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일지...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여기는 '엄한 집'이 아니라 '엄씨네 집'이랍니다.
엄씨네 집 구경을 마치고, 씨저우 안에 있는 바이족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이족풍의 라즈지(辣子鸡)와 전, 그리고 石榴花炒肉라는 요리를 시켰다. 석류꽃과 고기를 함께 볶은 음식인데, 꽃의 모양이 살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 요리들에 따리맥주를 곁들였다. 도수는 다소 낮은 라거 스타일의 맥주였다. 그래도 현지에 왔으면 현지 맥주 마셔봐야지! 자, 이제 배도 채우고 목도 축였으니 걸음을 옮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