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비도 그림의 일부야

윈난(云南) 지역연구 4일차 (2)

by 볕이드는창가

얼하이(洱海)를 따라, 남조풍정도(南诏风情岛)


따리에 온 첫날, 도착한 감상을 위챗 펑요췐에 올렸을 때 상해에서 사귄 중국인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기회가 되면 남조풍정도는 꼭 가봐!"


사전에 짜둔 지역연구 계획엔 사실 씨저우 이후 일정이 텅텅 비어있었다. 씨저우에서 볼만한 게 많을까 싶어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던 것인데, 씨저우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어째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 친구의 댓글을 떠올렸다. 중국인 친구 추천이라면 가봐야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따리는 얼하이(洱海)라는 크나큰 담수호를 끼고 있는 도시다. 얼하이는 사람의 귀를 닮았다 하여 귀를 닮은 바다, 洱海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호수인데 왜 바다라 이름 붙였냐고? 내륙에 사는 바이족 사람들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렇게 지었단다. 실제로 호수에 가보면 그냥 바다 같다. 바다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바다라 착각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을 수도 있을 규모다.



위 지도에서 곰돌이 라이언이 그려진 곳이 따리고성, 1번이라고 쓰인 곳이 씨저우, 그리고 그 바로 맞은편에 토끼모양 무지가 그려진 곳이 남조풍정도다. 따리에서 씨저우, 씨저우에서 남조풍정도까지 가게 되면 얼하이 호숫가를 쭈욱 따라서 돌게 된다. 다른 교통수단도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가장 편한 택시를 택했다. 풍정도까지 가는 길엔 톨게이트를 한 번 지나야 하는데, 톨게이트 비용은 우리가 직접 현금으로 지불했다.


택시를 타고 씨저우에서 남조풍정도로 가던 길, 차 안에서 멋진 풍경을 마주하여 사진을 찍었다. 하얗고 큰 새가 얼하이 수면 위를 날아가는 사진인데, 하얀 구름이 산 위로 드리우고 그 아래로 새가 날아가는 광경이 정말 멋졌다. 가는 길도 이렇게 멋진데, 도착해서 보는 얼하이의 풍경은 얼마나 멋질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남조풍정도(南诏风情岛)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조(南诏)와 관련이 있다. 남조는 중국 당대(唐代)에 운남에 있던 이족(彝族)과 바이족(白族)이 함께 세운 왕조로, 한때는 동남아 일부 지역과 쓰촨 청두까지 진출할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다고 전해진다. 이곳 섬은 얼하이에 있는 3개의 섬 중 하나로 남조시대 왕이 더위를 피하던 행궁이 자리하고 있다.


택시에서 내리면 풍정도로 가는 페리 표를 살 수 있는 매표소 근처에 내려주고, 여기서 입장권을 사면 페리는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다. (2026년 현재는 별도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 방문 전 확인 필요)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남조풍정도가 따리의 작은 마을 중 하나로 유명한 솽랑(双廊)에 있었다. 솽랑과 묶어서 같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당시 그 사실을 몰라 아쉽게도 섬만 구경하고 돌아왔다.


솽랑인지도 모르고 입장권 사러 급하게 걸어가던 길


작은 페리를 타고 섬에 내리니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있다. 분명 바다가 아니라 호수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바다에 온 것 같다. 오는 길에 먹구름이 보이길래 얼하이 풍경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먹구름은 흰구름으로 바뀌고 수면 위에 드리워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전 계획 없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나다니! 이것이 P의 여행인가, 하고 사실 J가 되고 싶은 P는 읊조려본다.




결국 고성에서 폭우를 만나는구나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된 얼하이 구경을 마치고 다시 고성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빠오처를 타고 근처 웨이샨(巍山)으로 가서 저녁까지 있을 예정이고 그다음 날은 오전에 리쟝으로 출발하니 이날 저녁이 사실상 따리고성을 구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래서 섬 주변에서 마을을 더 구경하진 않았다.


고성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보인 색색깔의 염색된 천들. 중국어로 짜란(扎染)이라 하는 이 염색 공예는 '묶다'는 뜻의 扎와 '염색하다'는 뜻의 染이 결합된 단어로, 묶어서 염색하는 것, 즉 홀치기염색을 뜻한다. 실로 염색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을 묶은 뒤 염료에 담그고 그 진하기를 조절하여 만드는 작품인데, 따리가 이 염색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바이족의 하얀 건축물 앞에 푸른색으로 염색된 천들이 걸려있는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고성 안에는 염색하여 만든 천들을 판매하기도 하고, 실제로 염색 체험을 해보는 공방도 있다.



짜란과 함께 운남 지역을 대표하는 특색 디저트를 하나 소개해본다. 이름은 루샨(乳扇). 우유로 만든 부채라는 뜻을 가진 이것은 고성 등지에서 흔히 튀겨서 '짜루샨(炸乳扇)'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하도 많은 가게에서 팔고 있길래 뭔가 이곳의 특징적인 먹거리임을 직감하고 하나 사 먹어봤다. 맛은 약간 시큼하고 달달한 맛. 알고 보니 이건 우유를 말린 얇은 막(이게 루샨)을 튀긴 뒤 설탕을 뿌려서 파는 음식이었다. 그러니 요거트처럼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나는 것이다. 일반적인 한국인에겐 다소 호불호 갈릴 맛인데, 운남 지역에서는 가정집에서도 만들어 파는 보편적인 먹거리다.



고성 구경을 하다 보니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한다. 남조풍정도를 볼 때까지 먹구름만 간간이 보였는데 하늘이 결국 참다못해 비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가 좀 그칠 때까지 시간을 보내볼까 하여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핸드드립을 해주는 카페였는데, 비 듣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2026년 현재도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긴 한데, 인테리어가 좀 다른 것이 아무래도 이전을 한 모양이다. 그래도 평가는 좋은 편이다.



커피를 다 마셨는데 비는 여전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기도 해서 급한 대로 주변에 있는 평점이 괜찮은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연이은 운남 음식에 다소 힘들어하는 동행들을 위로해 주는 익숙한 맛, 수제버거집이었다. 2026년 현재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이 식당의 맛이 기억나질 않는 걸 보니 대중들의 평가는 정확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식당에서 우리는 배낭여행을 온 중국인 친구를 한 명 만나게 되었다. 말도 잘 통하고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해하기도 해서 다음날 저녁에도 만나서 맥주 한잔 같이 했던 소소한 기억.



저녁을 먹으니 드디어 비가 좀 그쳐서 좋아하는 밀크티도 사 먹고, 맥주나 한잔 할 겸 양런지에(洋人街)에 가봤다. 양인들의 거리. 그래서 그런가 여기엔 라이브 바 같은 소소한 술집들이 있었다. 라이브 바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 하고 일어서려는데 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뚫고 나가기에는 너무 세차게 내리는 비에 꼼짝없이 술집에 갇혀버린 우리들. 하루 종일 비를 참아주었던 날씨요정의 복수인가?




모두 무지개의 빛깔이 되리


쏟아지는 비에 오도 가도 못하며 라이브 바에 앉아있는데, 순간 '내가 뭘 그렇게 초조해하고 걱정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다음에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적당히 비 그치면 숙소 들어가서 씻고 자기만 하면 되는데. 그리고 누가 나를 쫓아오지도 않는데 대체 나 혼자 뭘 그리 초조해하는 걸까? 문득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비 오는 날씨를 걱정하지 않았다. 일행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거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또 스스로에게 수갑을 채웠구나.


돌이켜보면 오늘, 고성 안에서는 볼 수 없는 바이족 전통 건물이나 멋진 얼하이의 풍경도 구경했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고성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운남 따리를 느껴본 소중한 하루였다. 맑을 때 돌아다닌 것도 좋았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더 운치 있게 느껴졌고, 폭우 때문에 들어간 식당에서 중국인 친구도 사귀게 되었으니까.


좋아하는 중국어 표현 중에, '비바람을 겪지 않으면 어떻게 무지개를 볼 수 있을까? (不经历风雨,怎能见彩虹?)'라는 표현이 있다. 여행의 풍경에 어떻게 맑고 깨끗한 하늘만 있을 수 있을까? 먹구름도 끼고, 부슬비도 오고, 가끔은 천둥번개를 만나는 것도 지나고 보면 다 '여행'이라는 그림의 일부일 것이다. 이 모두가 빨강이 되고, 주황이 되고, 초록이 되어 색색깔의 무지개를 완성시켜 주겠지. 비 오는 따리의 밤이 지나간다.



[윈난 4일차 일정 (따리)]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따리 둘째 날! 오전엔 씨저우에 가서 엄가대원을 보고, 오후에는 친구의 추천을 듣고 남조풍정도에 가서 구경하고, 저녁에는 고성 안에서 돌아다녀봄! 오늘의 날씨요정도 아주 멋졌다. 낮에 한참 비를 참아내더니 저녁에서야 내리기 시작했다. 바이족의 건축물과 파란색으로 염색된 천은 참 잘 어울렸고, 얼하이는 우리에게 정말 멋진 구름을 선사했다! 저녁에 고성에서 폭우를 만나서 지금 술집에 갇혀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기왕 온 거, 마음을 편하게 가지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