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5일차 (1)
7월 26일, 웨이샨 고성(巍山古城) 구경, 끄읏.
지역연구 계획을 짤 때 이날 짜둔 계획은 웨이샨 고성(巍山古城)에 가서 고성을 구경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나 무위(无为)의 여행인지. 고성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볼만한 건 뭐가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로 가서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다니. 고성에서 편도 한 시간 반 정도를 이동해야 도착하는 곳이라니 차량 대절이나 해두지 뭐, 하여 빠오처 하나 딱 준비해 뒀다.
일정의 문제를 깨달은 것은 따리에 도착한 첫날, 여행계획을 다시금 점검할 때였다. 아니, 계획이 없잖아?! 일행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맞닥뜨리며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알아보던 중 눈에 들어온 '훠바지에(火把节). 음력 6월 25일에 열린다는 이 횃불 축제는 때마침 우리가 따리에 머무를 때 열릴 예정이었다. 게다가 마침 우리가 가게 될 웨이샨 고성에서 열린다니! 기가 막힌 우연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따리에 도착한 첫날 급하게 훠바지에 입장권을 샀다. 저녁 일정은 잡았고, 낮에는 슬슬 고성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우리가 가는 웨이샨 고성은 위 지도의 1번 표시된 곳. 따리고성이 라이언이 그려진 곳이니 결코 가깝지 않다. 얼하이도 보이지 않는 곳. 이곳의 풀네임은 '웨이샨 이족 회족 자치현(巍山彝族回族自治县)'. 이족과 회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회족이야 서안 회민거리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족은 처음이다.
빠오처 기사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많이 늦어서, 웨이샨으로의 출발이 늦어졌다. 계획이 촘촘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도착하니 11시. 가는 내내 비가 오더니 고성에 도착하니 비가 멈췄다. 이 또한 운이 좋은 상황이라 하겠다.
웨이샨 고성은 원나라 때 대리국 출신 총관인 단 씨가 짓기 시작하여 명 홍무제 때 완공되었다. 운남에서 토사 제도가 가장 오랫동안 시행된 곳이라고 하며, 따리고성과 비슷하게 격자 구조로 되어 있다. 여러 일들을 거치면서 예로부터 내려오던 고성의 누각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북쪽의 고루와 위 사진에 보이는 성공루(星拱楼)만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홀치기염색(扎染)이 유명하고, 떡 같은 식감의 쌀국수인 얼쓰(饵丝)도 유명한 먹거리다. 아무래도 얼하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따리고성이나 씨저우, 솽랑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들에 비해 확실히 상대적으로 한산한 느낌이 있었다. 비가 왔던 탓도 있겠지만.
아, 이 요리에 대해 쓰자면 원기옥을 좀 모아야 한다. 웨이샨 일정에서 훠바지에만큼 강렬했던 기억이 바로 이 얼쓰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 이 웨이샨에서 유명한 요리라고 해서 알게 된 것에 불과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따리에서 첫날 먹었던 운남 쌀국수랑 비슷한 느낌일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점심은 먹어야 하니,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에 들어갔다.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때 맛집임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길게 늘어선 줄 뒤꽁무니에 딱 서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주문하는지 지켜봤다. 카운터에서 원하는 사이즈를 말하고 큐알코드로 지불을 하면 주방에서 바로 음식이 준비되고, 준비된 한 상을 받아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먹으면 되는 듯했다. 노포 느낌이 낭낭. 다른 손님들처럼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면과 탕, 고기, 그리고 네 개의 밑반찬이 끝. 옆자리 손님들을 보니 면을 탕에 살짝 적셔서 건져먹는다. 똑같이 만들어서 한 입 먹는 순간, 美味!!!!!!! 한국의 감자탕을 생각나게 하는 맛!!!!!!!! 아니 이 맛을 운남에서 맛보게 되다니!!!!!!!!!! 운남 현지 음식에 너무 힘들어하던 일행들 눈이 번쩍 뜨인 게 보였다.
알고 보니 얼쓰는 쌀국수(米线 미씨엔)와 완전 다른 면이었다. 만드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꿔쟝얼쓰는 강을 건넌다는 뜻의 꿔쟝(过江)과 면의 한 종류인 얼쓰(饵丝)라는 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요리 이름이다. 얼쓰의 饵이라는 단어는 얼콰이(饵块)를 얇고 길게(丝) 잘랐다는 말인데, 얼콰이는 쌀을 찧어 만든 떡을 말한다. 고로 쌀로 만든 얇은 떡을 잘게 썬 것이 얼쓰다. 그리고 이 얼쓰를 ‘강을 건너게 하듯이’ 탕에 스윽 찍어서 먹는 음식이 바로 꿔쟝얼쓰(过江饵丝)다. 그리고 그 탕은 돼지고기 다릿살을 푸욱 끓인 매콤한 탕이다.
이렇게만 설명을 하면 아마 어떤 요리인지 별로 느낌이 안 올 수도 있다. 이 음식을 먹고 내가 바로 떠올린 음식은 일식의 츠케멘이었다. 면을 짭짤하고 매콤한 국물에 찍어서 먹는 요리! 꿔쟝얼쓰는 딱 중국식 츠케멘이었다. 쌀국수와는 달리 입에 착착 감기는 쫀득한 떡면의 식감, 한국의 감자탕을 생각나게 하는 감칠맛 나는 탕, 약불에 오래 끓여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돼지고기! 면의 식감이나 탕의 맛이 츠케멘과는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중국에서 맛봤던 음식 중에 다시 한번 먹고 싶은 음식으로 손꼽히는 음식, 꿔쟝얼쓰! 인생에 웨이샨에 또 가서 한 번 더 맛보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적어본다.
꿔쟝얼쓰의 환상적인 맛을 접하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고성 산책을 나서는데, 눈앞에 낯선 옷을 입은 언니들이 하나둘 지나간다. 무슨 행사라도 있나 싶어 일단 뒤를 따라가 보다가, 언제 이렇게 많은 소수민족 언니들을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중 한 언니에게 말을 걸어본다.
알고 보니 이날 마침 이 고성에서 민족의상 전시회를 한다는 게 아닌가! 정말 운남 지역연구는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다. 미리 신청하지 않아 참여는 불가능했지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치근덕대봤다. 날이 날인지라 언니들도 웃으며 흔쾌히 카메라 앞에 서 주었다. 사진은 초상권 문제로 올릴 순 없지만, 지금 보니 남는 건 정말 사진뿐이다.
웨이샨에서 둘러볼만한 곳을 찾다가 '민속박물관'이라는 곳이 있길래 가보게 되었다. 옛날 웨이샨의 지주였다는 양씨 아가씨(梁大小姐)의 고택에 만들어진 박물관인데, 국가 공인은 아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관장님은 여자분인데, 그녀의 조상들이 대대로 수집해온 유물들을 전시할 곳을 찾다가 이 양 씨 아가씨댁을 임대하게 되어 이곳에 사설 박물관을 세우게 되었단다. 20위안을 내고 입장권을 사면, 관장님이 직접 같이 한 바퀴 돌며 유물과 관련된 해설도 해주신다.
실제로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고택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라, 내부 구조는 바이족의 전통가옥 구조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데, 수집품을 전시한 곳답게 정말 안에는 각종 유물들로 가득하다. 차마고도에서 교역을 했던 마방(马帮)들의 물품이나, 소수민족의 복식, 혼례할 때 쓰던 물품들, 전통악기나 마구(马具)들이 잔뜩 있다. 관장님 말씀에 따르면 이곳에 유물이 워낙 많아 북경의 중앙민족대학 등 민족 관련 대학의 강사들이 복원을 도와주러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해설을 들으며 한 바퀴 둘러보는데, 관장님이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걸 아시고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곳에 대해 많이 홍보해 달라'라고 하신다. 이렇게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운남 소수민족의 문화도 더 오래 보존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물론 이곳의 방문객을 늘리려는 관장님의 홍보에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웨이샨에 왔다면 한 번쯤 와볼 만한 곳이다. 해설해 주시는 내용의 진위 여부는 따로 공부해 봐야겠지만, 소장품은 정말 많긴 하다. 개인이 이 많은 것을 수집해 냈다니 대단할 따름. 그런데, 진품명품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