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5일차 (2)
민속박물관을 다 둘러본 뒤, 슬슬 훠바지에(火把节) 참가를 위해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빠오처 기사와 만나기로 한 고성 문 앞에 도착하여 차를 기다리는데, 이족의 훠바지에 행사 포스터가 눈에 띈다. 이족의 훠바지에는 바이족의 그것보다 하루 일찍, 그러니까 음력 6월 24일에 진행한다. 아무래도 웨이샨은 이족 자치현이라 바이족의 그것보다는 더 크게 행사를 하는지 프로그램이 꽤 알차 보인다. 어쨌든 우리가 표를 산 건 바이족의 훠바지에이니, 거기로 가는 걸로.
빠오처를 타고 도착한 곳은 행사에 포함되어 있는 장가연(长街宴) 연회장. 인당 58 위안, 한화로 만 원 정도에 표를 사면 간단한 음식과 술이 나오는 연회인 장가연과 훠바지에 참여가 가능하다. 장가연은 말 그대로 긴 길에서 진행되는 연회로, 긴 길에 식탁을 세팅해 두고 음식을 차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를 말한다. 소수민족 중에는 하니족(哈尼族)이 이 행사로 유명한데, 이날 참여한 건 바이족의 장가연이었다.
이런 식으로 길을 따라 길게 식탁이 차려져 있고, 빈자리에 알아서 착석하고 기다리면 행사 시작과 동시에 바이족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식탁에 음식을 가져다준다. 음식은 지역 특색 요리로 차려진 듯했는데, 조리한 지 오래되어 이미 거의 다 식어버린 음식들이었다. 그냥 기분 내는 정도로만 맛보도록 하자.
사실 이 장가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고산유수(高山流水)였다. 어느 민족의 행사를 가나 새로운 손님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 란먼주(拦门酒)라는 의식을 하는데, 이날은 ‘높은 산에서 물이 흐른다’는 이 고산유수라는 형태로 환영 의식을 진행했다. 테이블별로 지원자 한 명을 받아 진행했는데, 바이족 직원들이 와서 지원자에게 잔을 들게 하고, 주전자 세 개를 세로로 놓고 맨 위에서 술을 부어 흘러나온 술을 마시게 한다. 새 친구의 장수와 복록을 기원하며 하는 환영 의식이다. 후래자 삼배를 생각나게 하는 건 왜일까... 어쨌든 이 고산유수로 나름대로 즐거웠던 장가연이었다.
장가연이 끝나고 드디어 이날의 하이라이트, 훠바지에 행사장에 간다. 훠바지에(火把节)는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횃불 축제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바이족에만 있는 축제가 아니라 이족, 나시족 등 운남 지역의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축제다. 대체로 음력 6월 24일, 25일에 진행된다. 해질 무렵부터 큰 불을 피울 땔감 등을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해가 지면 불을 붙이고 그 주변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풍년과 가축의 다산을 기원한다.
훠바지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공식적인 설로는 당대 따리 육조 중 한 곳이 나머지 나라들을 삼켜버리려고 홍문연을 열었을 때, 이 나머지 나라들 중 한 곳의 왕후가 그 사실을 알고 저항하다 6월 25일에 사망했는데, 이를 높이 사서 길이가 긴 나무를 가지고 불을 붙이는 의식을 함으로써 절개가 높았던 부인을 기리는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건 유교적 사상을 이입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설인 것 같고, 오히려 이 운남 북부 지역 민족들이 원래 살던 곳이 비교적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였기에 불을 숭상하여 이런 축제가 생겼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덥고 습한 시솽반나에서 만났던 다이족에게는 이와 반대로 태국의 쏭크란처럼 물을 뿌리는 포수이지에(泼水节)라는 축제가 있는 점도 그 방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활활 타오르는 불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과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국 이 행사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처음 보는 누군가와 둥글게 서서 불을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며 흥겹게 축제를 즐겨보았다. '횃불축제'라는 이름에 맞게 원하는 사람은 횃불을 들고 돌기도 했고, 중간중간 바이족 언니들의 전통무용 공연도 볼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캠프파이어는 몇 번 참여해 봤지만, 이렇게 다양한 국적과 민족,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캠프파이어는 처음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더 부담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날 함께 축제를 즐겼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훠바지에의 캠프파이어가 꺼지고, 해가 다 진 저녁 시간, 웨이샨에서 다시 따리 고성으로 돌아왔다. 따리에서의 마지막 밤. 일행들과 3일간의 시간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전날 빗속에 들어간 수제버거집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인 친구도 함께 보기로 했다.
장소는 Morden Town. 아마 Modern Town을 이름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오타인 것으로 해두자. 清吧라 칵테일이나 맥주 종류를 팔고,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있는 라이브바인데 팁을 주면 신청곡도 불러준다.
이날 마신 맥주는 풍화설월(风花雪月).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뜻하는 이 단어는, 따리에서는 따리를 대표하는 자연물 네 가지를 상징하는 단어로, 또 따리 대표 맥주의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지난번 마신 V8 맥주의 고급화 버전이라고 한다.
바람, 꽃, 눈, 달. 따리 남부 쌰관(下关)의 바람, 따리 북부 샹관(上关)의 꽃, 창샨(苍山)의 눈, 얼하이(洱海)에 비친 달. 이 네 가지 상징은 바이족이 흰색만큼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라, 바이족 전통 복식의 모자에도 그 모습이 담겨있을 정도다. 따리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딱 좋은 맥주가 아닐 수 없다.
계획한 바가 많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운이 따라줘서 그 나름대로 알찬 시간을 보낸 따리에서의 3일이었다. 운남 여행이라면 이런 여유 정도는 즐겨줘야지 싶다가도 또 너무 즉흥적으로 시간이 가니 좀 불안하기도 했던 시간들. 리쟝에서는 어떤 하루하루가 펼쳐질까. 며칠 뒤면 끝나는 운남 지역연구가 조금은 아쉬웠던 밤이었다.
[윈난 5일차 일정 (따리)]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따리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의 운 좋음을 증명해 냈다! 아침에 비가 오긴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웨이샨 고성은 사람이 적었고, 궈쟝얼쓰는 한국의 감자탕처럼 맛있었다. 게다가 민족복장 전시회에 참여하는 언니들을 만나 사진도 찍었다. 저녁에는 바이족 훠바지에에 참가해 바이족의 장가연에서 음식도 먹었다. 훠바지에에서 바이족 언니들과 사진도 찍고, 같이 춤도 추니 정말 즐거웠다. 따리에서는 귀여운 여동생도 하나 알아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참 쉽지 않은 만남들이라, 소중하게 여길 생각이다. 고마워, 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