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6일차 (1)
"떠날 때서야 날이 개네!" 운남에서의 여섯 번째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오자마자 일행들과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운남 일정은 대부분 우산과 함께였다. 폭우든 이슬비든 비가 완전히 갠 적이 거의 없었고, 우양산이 양산의 기능보다는 우산의 기능을 더 많이 했다. 특히 따리에서는 폭우를 만나 실내에 거의 갇히다시피 한 적도 있었는데, 드디어 그 비가 그친 것이다. 푸른 하늘 아래 따리 고성의 남문은 더 웅장하고 멋지게 보였다.
그래, 헤어질 때가 되니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구나. 사람의 인연도 생각해 보면 처음엔 참 좋게 느껴졌더라도 갈수록 안 좋은 관계가 되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처음엔 좀 맘에 안 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국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우리와 따리가 그렇지 않았나 싶다. 웃으면서 배웅해 주어서 고마운 마음이다.
숙소를 나와 택시를 타고 따리 기차역으로 향한다. 상해에서 시솽반나는 비행기, 시솽반나에서 따리도 비행기로 이동했으니 기차로 운남 안에서 이동하는 건 처음이다. 기차역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발권을 하고, 기차역 안 구경을 좀 하려고 했는데, 아차, 따리역은 규모가 작은 역이다. 출출하니 역에서 파는 주전부리라도 좀 사 먹으면서 기차를 기다리기로 한다.
옥수수빵(玉米饼)을 팔길래 사봤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기름에 쩐 맛... 플랫폼에 들어와 밖을 보니 공기가 깨끗해 산봉우리와 그를 덮은 흰 구름이 다 보인다. 아, 이게 운남의 맑은 날이구나. 운남에 온 지 6일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다니..
날씨 좋은 날, 볕이 제일 좋은 오후 2시경부터 기차에 앉아 이동을 하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좋다. 산 위를 덮은 구름이 드리운 그림자가 이렇게 신기한 풍경을 만들어내다니! 리쟝으로 가는 내내 감탄하며 갔던 기억이 난다.
두 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고 리쟝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약한 객잔은 리쟝고성 중심부에 있었는데, 고성 안에는 차가 지나갈 수 없으니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리쟝고성 문에 도착한 뒤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따리 때는 숙소가 고성 밖에 있어 몰랐는데, 고성 안에서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길이 아주 울퉁불퉁한 돌바닥이었기 때문이다. 달달달달달달. 숙소에 도착한 뒤에도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멈추질 않았다. 아, 왜 리쟝이 '배낭'여행객의 성지인지 알겠다! 배낭을 메고 다녀야 편하게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구나!
따리에서 고성 안에 묵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워, 리쟝에서는 고성 안에 있는 숙소를 찾았다. 그래서 그런가, 숙박비는 리쟝이 1박에 한화로 한 2천 원 정도 비쌌다. 그리고 따리 숙소는 예약할 때 숙박비 전액을 지불하고 도착한 뒤 보증금(押金)을 별도로 지불, 퇴실 시 환불받았는데, 리쟝의 숙소는 예약할 때 1박 숙박비에 달하는 금액의 '담보금(担保金)'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숙소 도착 후 이 돈은 환불, 보증금과 숙박비를 다시 동시에 지불한 뒤 퇴실 시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숙소 예약 시 담보금이라는 돈은 처음 지불해 봤는데, 추측컨대 노쇼를 방지하기 위한 예약금의 개념인 것 같았다. 이 역시 고성 안에 있는 숙소라서 있는 제도일지도 모르겠다.
2026년 3월 기준, 해당 숙소는 영업은 안 하는 것 같고, 따중뎬핑에 정보는 올라와있다. 핑야오 고성에서 객잔에 묵었을 때처럼, 다소 고풍스러운 나무 명패가 달린 열쇠를 준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창 밖을 보니, 오는 길에 우리를 괴롭혔던 우산길도 보이고, 따리고성의 그것과는 또 다른 리쟝고성 건물들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방에 따라 옥룡설산(玉龙雪山)이 보이는 곳도 있는 듯했는데, 아쉽게도 내 방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리쟝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딱 저녁식사 시간이다. 점심을 기차에서 옥수수빵으로 대충 때운 터라 사실상 이것이 첫끼. 리쟝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음식을 먹고 싶어 열심히 찾아 들어간 가정식 식당. 26년 3월 기준 내부 리모델링으로 잠시 영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하는데, 곧 다시 재개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와보는 식당, 그것도 따중뎬핑으로 알게 된 식당에 올 경우, 메뉴를 시키는 팁은 두 가지다. 첫째, 근처 테이블에서 뭘 시켰는지 유심히 보는 것, 둘째, 따중뎬핑에서 방문객이 뽑은 맛있는 메뉴 랭킹을 참고하는 것. 우린 그 두 가지 팁에 여행객의 낭만 한 스푼을 넣기로 했다. 추천 메뉴엔 없지만 신기해 보이는 메뉴도 시켜보기로 한 것.
일단 안전하게 랭킹에도 높은 순위이고 다른 테이블도 많이들 시킨 야생버섯찜닭(野生菌汽锅鸡)과 누룽지야크고기볶음(锅巴牦牛肉)을 시켜봤다. 운남은 버섯의 도시라 불릴 만큼 다양한 버섯들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이렇게 버섯을 사용한 요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汽锅鸡는 닭과 야생버섯을 항아리 같은 솥에 넣고 증기를 이용해서 쪄낸 탕요리다. 야크(牦牛)는 리쟝에서 특히 많이 보였는데, 고기도 먹고 그 우유로 치즈나 누가 사탕 등도 만들어서 먹는다. 사천, 티벳, 운남 등 고산지대에서 관련 제품을 많이 먹는 것 같다. 내가 먹은 야크 고기는 좀 질기고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식당 음식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안전한 메뉴 외에 시켜본 메뉴는 가지를 칼집을 내어 튀긴 후 소스를 얹어주는 过江茄龙(가지로 만든 용이 강을 건넌다는 뜻), 그리고 향료를 써서 말린 고기를 구워서 만드는 나시족 고기 구이(纳西烤肉), 그리고 좀 뜬금없어서 시켜본 연어회 플래터(三文鱼刺身拼盘). 三文鱼가 salmon의 음차어로 알고 있어서 우리가 아는 그 연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리쟝의 三文鱼는 송어를 가리키는 거였다! 느끼한 중국음식 많이 먹다가, 덕분에 송어회 맛있게 먹었다. (2026년 3월 기준, 이 송어회 메뉴는 없어졌다 ㅠㅠ)
맛있는 음식에 빠질 수 없는 맥주도 한 병 시켰다. 여기서 팔던 맥주 중 가장 비쌌던 샹그리라 송가 맥주(香格里拉松嘎啤酒). 독일 라거 맛이라는데, 운남에서 먹는 맥주들은 대부분 라거인 것 같다. 시원한 맛에 홀짝홀짝. 이제 배를 채웠으니 고성 구경을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