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빌어주는 특별한 문자

윈난(云南) 지역연구 6일차 (2)

by 볕이드는창가

성벽이 없는 성, 리쟝고성(丽江古城)


중국에는 리쟝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글에 나오는 구이린(桂林)의 리쟝(漓江), 다른 하나가 우리가 도착한 운남의 리쟝(丽江)이다. 두 리쟝 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전자의 리쟝은 자연 풍경이 아름답다면 후자는 아무래도 소수민족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보니 인문환경이 특별한 곳이다. 물론 운남 리쟝에도 옥룡설산(玉龙雪山)이라는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있으니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긴 어렵긴 하지만.


리쟝은 따리보다 고도가 높다. 따리가 한라산보다 높은 약 2,000m 정도라면, 리쟝은 그보다 더 높은 2,400m 정도 된다. 우리가 시솽반나부터 쭉 올라왔으니 시솽반나, 따리, 리쟝 중 리쟝이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고도가 높다 보니 리쟝은 아열대 고원기후를 보이고, 중국 남부에 있는 도시지만 연평균 기온 섭씨 15도 수준으로 그야말로 1년 내내 봄날씨를 자랑하는 춘성(春城)이다.


다만 리쟝이 가진 한 가지 단점은, 고산병 증상이 오기 쉽다는 점이다. 보통 해발 2,500m부터 고산병 증상이 생긴다는데, 리쟝이 그와 근접한 높이라 그런 것 같다. 고산병 이야기는 출발 전부터 많이 들었던 터라 나는 홍징톈(红景天)이라는 중국 고산병약을 사서 복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괜찮았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리쟝에 도착하자 고산병 증세가 심하게 왔다. 어지럽고 메슥거린다 하여 숙소에서 좀 쉬게 했다. 고산병 증상은 운동을 많이 하거나 근육이 많은 남성에게 더 심하게 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나는 피해 갔나 싶기도 하다. 리쟝에 갈 땐 꼭 고산병 약을 미리 먹을 것.


리쟝고성은 운남 리장시 위롱나시족자치현(玉龙纳西族自治县)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송원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명청대에 번영했다고 전해지며, 나시족 통치자인 토사(土司) 목(木) 씨의 궁궐인 목부(木府)가 고성 내에 위치해 있다. ‘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리쟝고성에는 성벽이 없다. 그래서 지도에서 보면 앞서 따리 고성 글에서 서술한 대로 리쟝은 따리에 비해 자유분방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성벽이 없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이는 이곳의 통치자의 성이 木 씨라서, 성벽을 두르면 困, 즉 곤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럴 거면 그 왕궁인 목부에도 벽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오히려 고성 안에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여기에 성벽을 두르면 방어 효과도 적을뿐더러 치수에도 불리하게 작용하여 두르지 않았다는 설이 더 합리적인 듯하다. 어쨌든 성벽이 없는 이 특별함으로 인해 리쟝고성은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많은 배낭여행객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게 되었다고 본다.


1996년 이 지역에 큰 지진이 났지만 신기하게도 고성지역만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갔다고 하며, 성벽이 없는 특이한 구조와 많은 소수민족 문화의 융합으로 인해 이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이를 계기로 고성 내 복원 및 수리를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좌) 따리의 스타벅스 (우) 리쟝의 스타벅스


왼쪽은 따리 고성에 있던 스타벅스고, 오른쪽은 리쟝고성에서 만난 스타벅스다. 각각 바이족, 나시족의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마와 지붕의 처리가 서로 다른 것이 느껴진다. 두 고성을 연달아 보니 이렇게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고성을 구경하다 보니 이런 귀여운 친구가 보인다. 그의 이름은 리쟝멍와(丽江萌娃, '리쟝의 귀여운 개구리'라는 뜻). 알고 보니 19년 당시 리쟝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진 상징물이라 한다. 나시족은 청개구리에 토템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 청개구리를 캐릭터의 모태로 삼았고, 거기에 나시족 특유의 땋은 머리를 여러 색으로 표현, 리쟝의 맑은 물을 파란색으로 표현해냈다고 한다. 찾아보니 나시족 춤도 출 수 있다는데, 당일엔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찍느라 그런 공연을 보지는 못했다. 관광객을 다양하게 유치하려는 리쟝의 노력이 보인다.



고성의 거리는 대략 이런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에 파란색 모자를 쓰고 회색 상의를 입은 분이 있는데, 이분이 입은 것이 나시족 전통 복장이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사람들. 바닥은 울퉁불퉁 돌길. 하지만 캐리어를 숙소에 놓은 지금, 골목을 돌아다니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골목골목 탐방하다 보면 구불구불 길을 따라 나시족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과 그 1층에 위치한 다양한 가게들이 눈에 띈다. 과일이 다양하고 많은 남방 지역이라 그런지 과일 가게도 많고, 꽃으로 만든 빵을 팔거나 차를 파는 집도 있다. 전통 복식을 대여 혹은 판매하거나, 전통 악기를 파는 곳도 보인다.


어디선가 ‘탕, 탕’ 하고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은세공 가게다. 본래 목 씨 토사가 통치하는 리쟝의 나시족은 이미 명대에 노군산(老君山)에서 직접 채굴하고 제련한 설화은(雪花银)을 조정에 공품으로 보낼 정도로 은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나시족 스스로도 은으로 된 장신구를 관혼상제에 사용하며, 특히 은이 가진 항균작용 때문에 식기로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설화은을 세공하여 만든 공예품은 리쟝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아 차마고도 무역 때 티벳이나 네팔 등지에도 판매할 정도였다. 장신구에 별로 관심이 없어 구매하진 않았지만 가게는 정말 많이 있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흘러가며 걷다 보니 고성을 조망할 수 있는 곳까지 왔다. 촘촘히 연결된 나시족 건축 양식의 주택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름 낀 날씨라 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여기는 목부(木府)의 문 중 하나인 충의문인데, 저녁이 되면 이렇게 LED쇼를 한다. 사실 보려고 간 건 아니었고 도보로 고성을 구경하다 엄청난 인파를 맞닥뜨렸는데, 마침 거기서 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서안에서 봤던 장한가 공연처럼, 문이라는 조형물 위치에 프로젝터를 맞춰서 쏨으로써 등광쇼를 진행하는 것인데, 입장료 없이 밖에서 보는 거라 그냥 봤지만, 만약 입장료가 있는 공연이었다면 많이 실망할 뻔했다. 번쩍번쩍하다고 다 멋진 게 아닌데.. 어쨌든 사진은 남았다.



리쟝에 와야 할 이유 중 하나, 동파문(东巴文)


고성 안을 돌아다니면서, 낯선 그림들을 자주 마주쳤다. 그것은 건물 벽에도 있었고, 가게 간판에도 있었는데, 그 밑에는 꼭 현대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검은색으로만 쓰여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빨간색, 때로는 노란색, 때로는 초록색도 칠해져 있었고,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하고, 그 옛날 갑골문 같기도 했다.


고성 곳곳에서 마주친 동파문


일행과 도대체 저건 뭘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던 찰나,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동파 종이공방(东巴纸坊)이라는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우리가 고성에서 계속 마주쳤던 그림들을 가지고 만든 굿즈들과 관련 책들이 가득했다. 나시족과 리쟝 곳곳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는 책도 있었다.


(우) 나시족과 리쟝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던 책, 직접 구매


알고 보니 우리가 봤던 그 수많은 그림들은 사실 그림이기도 하고, 글자이기도 했다. 이름은 동파문, 혹은 동파문자. 유일하게 확인된, 현재까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로 알려져 있고, 그림문자에서 상형문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문자라고 볼 수 있다.


갑골문의 시작이 그러했듯, 동파문도 종교적인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나시족이 믿는 민간신앙이 동파교인데, 그 무술사인 톰바(중국어로 동파东巴, 나시족 언어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가 의식을 집행하면서, 혹은 경전을 집필하면서 사용한 문자가 바로 동파문인 것이다. 실제 동파문도 동파교의 경전인 동파경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문자 형태는 갑골문보다도 더 원시적이고 사물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여 그림문자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일설에는 갑골문보다도 오래된 문자라고 한다.


동파문은 2천여 개의 어휘를 가지고 있고,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 역시 가지고 있어서 단순한 사건의 서술뿐 아니라 시를 짓거나 복잡한 사건을 기록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한다. 거기에 우리가 고성에서 본 것처럼 검정과 흰색 외에 다른 색도 사용하여 글씨를 적었기에 마치 그림 같이 보이는 예술적인 특징도 갖고 있다.


이런 멋진 문자도 문화대혁명을 피해 갈 순 없었다. 표준 중국어인 보통화만을 인정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 동파문으로 적힌 많은 관련 문헌들이 없어지고, 종교탄압으로 인해 이 문자를 주로 사용하던 종교인들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다 점차 리쟝을 중심으로 동파문의 학교 수업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게 되고, 1980년대가 되어서야 이 문자의 중요성을 인식, 관련 문헌들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도 보존에 힘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소실된 문헌들을 복구하는 덴 한계가 있어서, 현재 동파문은 사실상 이렇게 고성 안에서 관광오락적인 용도로만 전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소중한 문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 가게에서 책이나 엽서 등을 구매하면 특별한 선물이 기다린다. 바로 현장에서 동파문 전문가가 나의 이름을 동파문으로 적어주고, 주어진 예문 중 하나도 동파문으로 적어주는 것이다. 물품만 구매하면 이 서비스에 부과되는 별도의 비용은 없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문자로 적힌 글씨를 가져갈 수 있다니. 리쟝에 간 기념으로 들고 돌아오기 아주 좋은 기념품이다.


나도 구매한 책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자 전문가께서 그날 날짜와 내 이름, 내가 택한 예문인 '영원히 행복하길(幸福到永远)'을 동파문으로 적어주셨다. 아주 특별한 축복을 받은 기분이다.


맨 왼쪽 글자가 행복을 기원하는 문구




[윈난 6일차 일정 (리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