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云南) 지역연구 7일차 (1)
요즘 일본 여행 관련 글들을 보면 '소도시 여행'이 유행인 듯하다. 기존에 사람들이 많이 가던 소위 '메이저' 여행지들이 너무 상업화되면서 그런 분위기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근처 소도시를 찾아가는 데서 온 흐름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 유행은 아니다. 물론 결국엔 그 소도시들도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되곤 하지만.
리쟝이나 따리도 마찬가지다. 고성이 주된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와보면 여행객이 기대했던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다소 실망하는 관광객들의 눈을 고성 부근에 아직 '덜' 상업화된 작은 마을들이 끌어당긴다.
우리가 따리에서 씨저우(喜洲)나 웨이샨(巍山)을 일정에 넣었던 것도 따리고성에선 볼 수 없는 '진실된' 그들의 삶을 보고 싶어서였고, 리쟝도 비슷한 이유로 오늘 소개할 수허고진(束河古镇)과 바이샤고진(白沙古镇)을 일정에 넣었다. 소도시까진 아니지만 '작은 마을 투어' 정도로 테마를 잡은 것이다.
지도에서 토끼모양 무지가 있는 곳이 리쟝고성, 라이언이 있는 곳이 수허고진, 1번이라고 표시된 곳이 바이샤고진이다. 나시족은 가장 초기에 바이샤고진에 정착했다가 이후 수허고진으로 이동, 마지막에 현재 리쟝고성 자리에 정착하여 토사의 저택인 목부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리쟝고성이 사실은 제일 마지막에 세워진 나시족의 마을인 셈이다. 만주족으로 치면 선양이 바이샤고진, 베이징이 리쟝고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나시족 마을의 상업화는 그들이 정착한 역순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세운 마을인 리쟝고성(다옌고진)이 가장 먼저 개발되었고, 이후 수허고진, 바이샤고진 순으로 상업화가 되었다. 때문에 바이샤고진은 나시족 정착 초기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가보니 수허고진은 입장료를 받을 정도로 관광지화된 느낌이었으나, 바이샤고진은 소박하면서 느낌 좋은 마을이었다. 두 곳 다 둘러볼 시간이 없다면 바이샤고진만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고성에서 수허고진까지는 시간 절약을 위해 택시를 타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표를 사야 해서 약간 당황했다. 생각했던 소도시의 느낌이 아니었다. 차마고도(茶马古道)가 지나는 마을이라는 점 때문에 마을 안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이용하진 않았다. 마침 훠바지에 시즌이라 민족 예술대회 같은 것을 하고 있어 구경할 수 있었다.
마을 안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만든 건물도 있지만,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새로 만든 티가 팍팍 나는 건물들도 있다. 인공적인 느낌이 나서 좀 아쉬운 느낌.
3개의 시냇물이 마을을 가로지른다는 수허고진이라 그런지, 마을 곳곳에 물이 흐르는 풍경이 많았다. 시냇물과 주변 풍경이 잘 어울리고 고성에 비해 한적하여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몇 쌍 보였다. 그들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
사실 수허고진은 이 몇 장의 사진이 전부일뻔했다. 뒤에 나올 박물관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허고진은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상업화가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리쟝고성을 둘러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고성 구경보다 즐거울 줄 알았던 '소도시 여행'이 기대 이하라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던 찰나, 이 박물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변 건물과는 대조적인 화려한 지붕, 차마고도 박물관이었다.
운남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이 오고 갔던 길, 차마고도(茶马古道). 일설에는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교역로라고 전해진다. 리쟝은 시솽반나 징홍에서 티벳까지 차를 옮기는 차마고도 남로(南路)가 지나는 곳이라 이곳 수허고진에 이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는 듯했다.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이 건물은 본래 명대에 목 씨 토사가 세운 '속하원(束河院)'에 속한 건물인데, 오래된 건축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있었다. 차마고도의 역사 및 문화에 대해 다룰 뿐 아니라 푸얼차 문화 연구 및 선전 등도 진행하는 곳이었다.
박물관에 들어가 보면 당시 차마고도를 따라 물건을 옮기던 사람들의 사진들과, 어떤 물건들이 어떤 루트로 교역되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남로와 북로로 나뉘는 차마고도 외에도, 청두를 기점으로 하는 남방 실크로드가 있어 신기했다. 청두 역시 실크 제품이 유명하여 외국으로 수출을 진행했던 것 같다.
앞서 잠시 서술했지만, 차마고도박물관이 가진 특별한 점은, '차'를 만드는 과정과 도구를 보여주고 그에 대해 해설을 해준다는 점이었다. 그 목적이야 당연히 차를 팔기 위함이겠지만,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 재미있게 들었다.
보이차가 많이 나는 푸얼 지역은 사실 예전엔 쓰마오(思茅)라는 이름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습하고 더운 아열대기후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에 1년 내내 서리가 거의 내리지 않아 차 나무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에 이곳은 중국에서 차가 제일 많이 나는 지역이 되었고, 이곳의 차가 중국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환영을 받자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의 이름을 아예 푸얼(普洱)로 바꿔버렸다. 예전에 쓰던 쓰마오라는 이름은 푸얼의 한 구의 이름으로 격하되었다.
사실 운남 지역연구를 계획할 때부터 푸얼을 가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봤던 보성 차밭이 너무 좋았고, 예전에 가본 항저우 롱징 차밭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상의 문제로 계획에 넣지 못해 내심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운 좋게 이곳 수허고진에서 만나게 된 터라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보이차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생차와 숙차 등 개념들을 익힌 후, 직원분이 직접 그 자리에서 차를 내려 한 잔씩 시음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박물관 안에는 둥그렇게 빚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차병(茶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모퉁이에는 차병으로 만든 트리가 있고 그 위에 '귀중품이니 만지지 마시오!!'라고 적혀있었다. 진짜 차로 만든 걸까...? 궁금했다.
수허고진에 온 김에, 또 푸얼차를 만난 김에, 기념으로 보이차 하나를 사기로 했다. 초심자에게 좋다는 숙차로. 荷塘月色, 연못에 어린 달빛이라는 중국 작가 주자청(朱自清)의 글 제목을 이름으로 한 보이차다. 이름과 표지에 그려진 연꽃 한 송이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 비싸게 산 것 같긴 하지만, .... 보이차는 원래 비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6년 3월 기준, 이 박물관은 현재 폐관상태라고 한다. 유사한 박물관은 리쟝고성 쪽으로 옮겨간 듯하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벌써 오후 한 시가 넘었다. 다음 목적지에 가기 전에 요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재빨리 주변 맛집을 검색해 보는데, 특이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숯불 바베큐(炭火烤肉)'. 이름을 봤을 때 리쟝 요릿집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고성에서 나시족 고기구이를 먹어보긴 했지만, 그건 염장한 고기를 구운 거라 숯불 바베큐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후기를 찾아보니 한국 고깃집에서 쓰는 불판이 나온다. 운남 요리를 영 입에 안 맞아하던 일행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괜찮을까? 밑져야 본전이다. 가보자!
누가 이 사진을 리쟝에서 찍었다고 생각할까? 그만큼 한국의 어느 고깃집에서 찍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고기를 주문하니 양파와 함께 약간 양념이 되어있는 고기가 나왔고, 한국에서 많이 본 불판에 직접 구워서 먹게 되어있었다. 구워진 고기를 다양한 조미료에 찍어먹는 방식.
한적한 시간에 방문하니 민머리에 배가 두둑하게 나온 주인아저씨께서 직접 서빙을 나오셨다. 스타일이 너무 동북지방 스타일이라 '혹시... 동북에서 오셨나요?'하고 물어보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 고깃집도 중국 동북지방 스타일의 고깃집이라고. 그러고 보니 고기를 조미료에 찍어먹는 게 약간 한국에서 양꼬치 먹을 때 쯔란 찍어먹는 느낌이긴 하네.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한국 고깃집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하다.
그나저나, 똥베이에서 어쩌다가 이 멀고 먼 운남 리쟝까지 와서 고깃집을 하게 되신 걸까? 이런 걸 좀 여쭤볼걸. 이제 와서 그때 더 너스레를 떨지 않은 것이 좀 후회된다.
아무튼, 고기는 맛있었다. 너무 배불리 맛있게 먹어서 이날 저녁 식사를 걸렀을 정도로. 혹시 수허고진에 가실 분이 계시다면 한 번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다. 운남 음식이 입에 안 맞는 분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