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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Sep 01. 2020

다시없을 1년의 기록

지역전문가에 지원하다

"한 번 지원해 보자. 생각이 있으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13글자. 아마 먼 훗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슴을 뛰게 한 말은 무엇인가요?'라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 말을 택할 것이다. 2018년 10월 중순의 일이다.



      '입사 후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임해서 빠른 속도로 고객사 현황을 파악하고 실무에 적응하겠습니다. 또한 직무 교육과 어학 교육, 지역전문가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ㅇㅇㅇㅇ의 가치 및 해외 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외 영업의 노하우를 익힌 후에는 ㅇㅇㅇㅇ가 자랑하는 중국通이 되어 중국 현지에서 그러한 노하우를 적용하여 매출 증대에 기여하겠습니다.'


다시 보면 영 아닌 이 자기소개서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지원할 무렵, 즉 2013년 가을, 꼭 입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작성했던 글이다.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지역전문가라는 제도가 있었던 점이 이곳에 가장 끌렸던 이유였다. 단순히 해외에서 살게 해 준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회사가 직원을 믿고 그의 성장을 위해서 1년이라는 시간과 그 부대 비용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는 점 자체가 취업준비생에게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나이브한 발상이었다. 회사에 들어간다고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보장이 없는데, 마치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런 기회가 올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기회가 올 지 안 올지 어떻게 알랴? 자기소개서라는 게 어차피 모든 희망을 담아 쓰는 글이 아닌가. 그렇게 나의 글은 회사의 심사대에 올랐고, 무사히 면접을 통과해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무지갯빛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자기소개서와는 달리, 나의 회사생활은 무채색 천지였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직원의 성장보다는 목표의 달성이 회사에게는 훨씬 중요한 가치였고, 주어진 목표만을 보며 경주마처럼 달리다 보면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금세 지나갔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의 입사 지원서를 다시 한번 펼쳐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거나 미래보다는 오늘 하루 살아나기도 벅찬 우리들에게 과거와 미래로 가득 찬 입사 지원서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일 것이다. 무채색 천지의 회사생활 속에서 내가 마음속에 담았던 꿈과 희망은 다른 일들에 밀려 구석 한 모퉁이에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능력에 비해, 또 직급에 비해, 연차에 비해 너무 많은 일들을 받아 허덕였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지를 볼 여유는 사치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마음의 캐파(Capacity)가 부족했다. 고객에게 온 메일을 확인하고 처리하느라 사내 공지나 하다 못해 오늘 식당에 무슨 메뉴가 나오는지조차 볼 시간이 없었다. 과장된 묘사인 것 같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이것이 현실이었다. 나의 현실이 어떤가 와는 관계없이 회사의 달력은 잘만 굴러갔다. 내가 입사 전에 그렸던 미래 속 '지역전문가'의 공고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올라왔던 모양이지만 내가 속한 무채색 세상과는 먼 이야기라고 여겨졌다.



2017년 11월 말, 회사에서 인간적으로나 일적으로나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 부서장으로 오셨다. 중화 영업으로 전배 온 후 삐약삐약 댈 무렵 주재원으로 함께 일하던 분이셨는데, 항상 채찍이 아니라 당근으로 날 대해주셨다. '저분이 본사로 돌아오시면 영업으로 오셔서 함께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내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회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였다. 17년 8월, 본사로 복귀는 하셨지만 영업이 아니라 마케팅으로 가셨다는 소식에 낙담한 것도 잠시, '회사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는 말처럼 11월 말 거짓말 같이 우리 부서장으로 오셨다. 


오신다고 하셨을 때 마냥 좋았던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인데, 우리 부서로 오셔서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시면 어떡하지?' 이게 당시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좋으면서도 마음껏 좋아할 수가 없었다. 사실 좋은 부서장이 오셨다고 해서 당장의 업무가 줄어들거나 유관부서와의 업무가 덜 힘들어지거나 고객이 덜 아우성치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덕업 일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까? 배울 점이 많고 지식과 노하우가 풍부한 분과 함께 일하는 기쁨이 업무의 지옥 같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었다.


그리고 18년 상반기, 그룹장님, 파트장님과 개별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약 반기에 한 번 늘 있는 회사생활에 대한 면담이었다. 


        Q: ㅇㅇ이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 없니? 교육 프로그램이라든가 그런 거.

        A: 음.. 솔직히 제가 그걸 주동적으로 요구할 짬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부서에서 제가 맡고 있는 일이 많아서 제가 빠졌을 때 다른 부서원들에게 부담을 줄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 부서에 인력 여유도 없고..


대충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것 없이 계속 어필을 해줘야 한다고, 그룹장님 파트장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 메일을 받았다.



18년 10월 중순, 아침에 출근해 PC를 켰는데 목록 가장 위쪽에 'FW: '19년 지역전문가 선발 공고''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그룹장님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사내 공지에 뜬 선발 공고를 재전송해주셨는데, 그룹장님께서 적은 말은 딱 그 열 세 글자였다.


"한 번 지원해 보자. 생각이 있으면."


지난 면담 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하 직원이 해당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공고를 보고 군침만 삼킬까 싶어 재전송해주신 거였다. 기회를 주셨는데 날릴 수 있나! 지원해봐야지. 다만 수요일에 공고를 받았는데 지원서 데드라인이 차주 화요일까지였고, 추천서를 써주셔야 하는 그룹장님은 차주 월요일부터 출장이셨다. 아무래도 하루 만에 내 파트를 완성하고, 목요일에는 그룹장님께 전달드려야 출장 중에 그룹장님께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때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개인 메일함에 보관되어 있던 입사 지원서를 꺼내 보았다. 새로 작성한 지역전문가 지원서는 입사 지원서만큼 무지갯빛으로 가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5년 차 회사원으로서 쌓아왔던 경험이나 지식이 조금은 들어간 글이 되었다. 완성된 글을 그룹장님께 송부드렸다. 부끄럽지만 추천서 좀 써주세요, 하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급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오전 10시 반쯤 그룹장님께 회신이 왔다. 추천서 작성이 끝났다며,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마음대로 수정하고 제출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농담조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원래 이런 건 ㅇㅇ이 네가 초안 작성해서 날 줘야 되는 거야~ ㅇㅇ이니까 내가 군말 없이 했다."


아차! 지원서 작성을 얼른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농담 섞인 핀잔을 들으며 받아낸 추천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읽고 나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작은 띄어쓰기 몇 부분을 고친 것을 제외하면 손을 대고 싶은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룹장님의 부서원에 대한 사랑,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왔으면 하는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잘 메워보겠다는 다짐이 모두 들어간 글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다시없을 1년을 만들어준 가장 첫걸음, 지역전문가 지원서는 이렇게 완성되었고 인사팀으로 전달되었다.


*그룹장님의 추천서는 복귀 후 업무 수첩에 따로 프린트해서 붙여 두었다. 힘들 때 읽어보면 웃음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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