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Jan 24. 2021

첫 지역연구 전야제

많고 많은 도시 중 난징을 택한 건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의 꽃, 지역연구!


19년 4월 11일, 첫 지역연구를 떠나기 전날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중국이 나에게 또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까 기대에 부푼 동시에, 첫 지역연구에 혹시 무슨 돌발상황에 직면하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지역전문가로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출타(出他)였기에 함께 가게 된 일행들과 간단한 전야제를 치르기로 했다.



지역연구가 뭐길래


여기서 잠깐, 당최 그 지역연구가 뭐길래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의 꽃이라 부르는지 설명을 해야겠다. 지역 연구란 쉽게 말하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 그 지역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 파견된 지역전문가로서 현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함으로써 파견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테마를 생각하고 연구해보라는 의미로 '지역 연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든 지역전문가들은 비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국경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거점 도시를 제외한 지역으로 지역 연구를 갈 수 있다. 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 연구라는 제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전문가는 역시 중국으로 파견된 사람들이다. 안전상의 문제로 일부 지역이 제한되긴 하지만, 그 지역들을 제외하더라도 갈 수 있는 땅덩이가 넓고, 넓은 만큼 접할 수 있는 것들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제도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약 조건들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 일수(日數)와 횟수에 제한이 있다. 파견기간 1년 동안 90일만 다닐 수 있고, 한 번 갔던 지역은 한 번 더 갈 수 없다. 또 떠날 수 있는 기간에도 제한이 있다. 언제든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수업을 듣고 있거나 법인 실습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금요일 일과 후 출발, 주말 동안에만 지역연구가 가능하고, 학교 수업 및 법인 실습이 모두 끝난 시기, 혹은 국가공휴일일 경우에는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모두 출발할 수 있다. 함께 갈 수 있는 인원수에도 제한이 있는데, 본인 포함 3명까지만 동행이 가능하다. 떼 지어 몰려다니며 관광하듯 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나의 경우, 3월 중순 입국 후 3월 말까지는 초기 정착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연구가 불가능했고, 4월부터 6월 말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주말에만 가능했다. 4월 첫째 주는 청명절 연휴로 상해에서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고, 나와 일행들은 그다음 주인 4월 12일에 첫 지역 연구를 떠나기로 했다. 함께 가게 된 일행들은 두 분의 오라버니들이었는데, 첫 인연이 끝까지 이어져 이후 1년간 몇 번 빼고는 다양한 지역의 지역 연구를 함께 다니게 되었다. 중국어 소통은 주로 내가 담당했지만, 오빠들은 임기응변에 취약하고 돌발상황에 멘붕을 잘하는 나의 단점을 훌륭히 보완해주셨고 무엇보다 같이 다니면 안전했다.



난징, 나의 짠내나던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첫 지역 연구를 갈 지역으로 정한 곳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가본 뒤로 한 번도 갈 일이 없었던 난징(南京, 남경)이었다. '육조고도(六朝古都, 6개 조대에 이르는 수도)라고 불리는 남경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가 이곳을 가기 위한 대외적인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개인적인 생각은 그저 중국을 대하는 나의 초심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상해를 파견지로 골랐던 것도 그랬고, 남경을 첫 지역 연구 목적지로 골랐던 이유 역시 그랬다. 중국의 땅덩이가 아무리 넓어도, 첫 지역 연구는 꼭 남경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와 난징의 추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수학여행. 내 첫 해외여행이자 첫 중국 방문. 그때를 떠올리면 좀 짠내가 난다. 외국어고등학교, 약칭 외고를 나왔다고 하면 돈이 좀 있는 집에서 자란 것 같지만 사실 그때 우리 집엔 돈이 별로 없었다. 정부의 기준으로 보면 차상위계층. 집엔 돈이 별로 없었는데, 나는 외국어를 좋아했다. 외고에 가면 외국어 수업시수가 일반고보다 많다고 했다. 내 책 사는 돈에는 한 푼 아낀 적이 없었던 아빠는 외국어를 좋아하고 공부도 곧잘 하는 딸을 꼭 외고에 보내주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외고에 붙긴 했는데, 돈은 여전히 없었다. 급식 먹을 때 식당에서 학생증을 찍으면 뭔가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아마 급식비 지원을 받는 특수한 케이스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얼마 안 가 그 목소리는 안 나오게 되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카드를 찍을 때마다 무언가 들렸다. 담임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 '삼성 장학금'을 써보라고 하셨다. 고등학생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런 혼란의 시기에 수학여행 통지가 왔다.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지역은 필리핀, 중국, 일본, 그리고 제주도. 가정통신문에는 지역별 참가비와 간단한 일정이 적혀있었고 가고 싶은 지역을 표기해 제출해야 했다. 운 좋게 삼성 장학금을 수여하긴 했지만, 수학여행 비용은 장학금 지원 범위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싼 제주도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또 마침 그때 어떤 선생님이 SARS 얘기를 흘렸고, 외국을 가느니 그냥 제주도를 가겠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냥 같은 이유로 제주도를 선택한 걸로 하기만 하면 돈이 없다느니 하는 구차한 이유는 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달랐다. 그래도 해외에 가볼 수 있는 첫 기회인데, 여권도 있겠다 비행기도 타보고 외국도 다녀와봐야 시야도 넓어지지. 또 딸이 이제 중국어에도 재미를 붙였는데, 중국 갈 정도 돈 못 마련할까. 뭐 이런 마음이셨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가정통신문에 중국으로 가겠다고 표기해서 제출할 수 있었다. 약간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또 어린 마음에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중국어를 써볼 기회가 있을까, 뭐 이런 설레는 마음에. 이렇게 탄 첫 비행기가 나를 데려다준 곳이 상해였고, 남경이었다.


어렵게 간 수학여행에서 남경이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은 그리 깊지 않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무거웠던 분위기와 관광버스에서 하차했을 때 적선을 해달라고 달려들던 조그만 남자아이들만 또렷이 기억난다. 그로부터 자그마치 14년 후, 이제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이 땅을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떠나기 전날 아침, 등굣길 상해는 흐리고 비가 왔다. 상해에서 고속철로 2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남경도 비가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지역 연구를 다닐 때마다 내가 제일 의지했던 APP이 있다면 그건 톈치통(天气通, 날씨 어플)과 페이챵쥰(非常准, 비행기, 고속철 출발/도착정보 어플)이다. 날씨와 연착이 여행에 미치는 영향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걱정했던 내가 우습게도 그날 오후가 되자 하늘이 활짝 갰다. 상해의 날씨란.


믿기 힘들겠지만, 같은 날의 풍경이다.


전야제를 하기 위해 모인 곳은 난징시루를 지나칠 때마다 늘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한 훠궈 집 '치먼솬러우(奇门涮肉)'. 북경식 솬양러우(涮羊肉, 양고기 훠궈)가 특색인 집이라고 하는데, 중국인들이 줄을 서는 맛집은 항상 거짓이 없다는 생각에 조만간 꼭 가보려고 했던 곳이었다. 일부러 좀 덜 붐빌까 싶어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7시에 모였는데, 오산이었다. 식당 안은 이미 줄 서 있는 사람으로 바글바글.



번호표를 뽑으니 앞에 4팀이 기다리고 있다. 따중뎬핑(大众点评)과 같은 어플을 통해서 미리 예약이 가능한 모양인데, 19년 4월 당시에는 아직 중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이 기능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점원들이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대기 손님이 편하게 먹을 수 있게 과자나 사탕을 준비해뒀고, 날이 아직 추워 직원들이 직접 따뜻한 레몬수를 따라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미리 메뉴를 고민할 수 있게 메뉴판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무려 40분을 넘게 기다린 후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요새도 이만큼 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북경에서 볼 수 있는 신선로 같이 생긴 솬양러우 냄비로 시킬 수도 있지만, 1인 훠궈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한 소형 냄비로 국물 맛을 달리해 따로따로 주문도 가능하다. 탕 종류가 여러 가지였기 때문에 개인 취향에 맞는 맛으로 각자 주문하고, 고기와 야채, 완자 등을 주문했다. 특이한 것이 똠양꿍(冬阴功) 맛 탕이 있었는데, 두 오라버니 중 도전정신이 뛰어난 분께서 용기 있게 주문을 하셨다. 생각보다 맛있다던 평가가 생각난다.



신나게 훠궈를 먹으며 내일 떠나게 될 첫 지역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른 두 분은 남경이 처음이고, 나는 가봤어도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상황이라,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갈 곳을 정하거나 동선을 짜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때 마침 현업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중국인 동료 중 하나가 남경에 살고 있는 것이 기억이 났고, 일정 안배 등에 있어서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고향이 나의 첫 방문지가 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하며 굉장히 열정적으로 내게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었다. '집에 있을 땐 부모에게 의지하고, 밖에 나가서는 친구에게 기대라(在家靠父母,出门靠朋友)'는 중국의 속담을 몸소 깨닫게 된 남경 지역 연구의 서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 건너 야경 구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