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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30. 2021

화려한 거리, 그 숨겨진 구석엔

난징(南京) 지역연구 1일차 (1)


난징, 난징!


첫 지역연구 목적지는 난징(南京, 남경). 강소성 성도 소재지(江苏省省会). 옛 이름 진링(金陵, 금릉), 젠캉(建康, 건강). 동오(东吴), 동진(东晋), 남송(南宋), 제(齐), 량(梁), 진(陈), 이렇게 6개 조대의 수도였다고 하여 육조고도(六朝古都)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 중일전쟁 시기에는 중화민국의 수도라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난징 대학살(南京大屠杀)이라는 가슴 아픈 일을 당한 적도 있는 곳. 중국의 4대 옛 수도(四大古都, 서안, 남경, 낙양, 북경을 일컬음) 중 한 곳이면서 중화민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다.


상하이와 난징은 고속철로 2시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두 도시가 외지인에게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난징이 과거라면 상하이는 현재고, 난징이 온건이라면 상하이는 급진이다. 난징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갖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상하이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대만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인식과 비슷하다. 난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서 단언하긴 조심스럽지만 난징 사람들의 속 마음에는 상하이에 대한 약간의 질투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난징이 중심지로서 활약할 때 이름 없는 연안 어촌 마을에 지나지 않던 상하이가 지금은 명실상부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난징 지역연구, 그 첫날은 중화먼(中华门), 라오먼동(老门东), 친화이허(秦淮河), 푸즈먀오(夫子庙)를 둘러보았다. 금요일 일과가 끝난 오후에나 상해에서 출발이 가능했기에 참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은 갈 수가 없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야간개장을 하는 곳 위주로 돌아다녔다.




기차역, 외국인에겐 너무 복잡한


출발하던 날 상해역(上海站)


난징으로 출발하던 19년 4월 12일, 상해는 전날 아침의 날씨와는 달리 맑은 하늘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고속철(高铁)을 타기로 한 역은 상해역(上海站).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상해기차역(上海火车站) 역에서 내리면 바로 도착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실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중국 기차역의 규모는 상당하다. 거의 공항 정도의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기차역으로 나가는 출구의 개수도 무척 많고, 심지어 나가는 길에 신분증 검사도 당하기 때문에 무척 번잡하다. 혹시 일행과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 꼭 만날 곳을 정확하게 정해두는 것이 좋다. 아니면 아예 지하철부터 같이 타고 가든가. 사실 바로 내가 이날 일행과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한참을 헤맸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기차표의 경우 위챗페이든 알리페이든 계좌만 연결이 되어 있으면 외국인이어도 중국 철도 어플인 12306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12306 어플은 지금은 "즈싱기차표(智行火车票)"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 같은데, 처음에만 정보를 잘 넣어두면 이후 예매할 때도 편하게 예매가 가능하다. 예매한 표는 중국인의 경우 기차역 매표 기계에 간단히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 실물표로 교환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외국인(대만, 홍콩, 마카오 지역 출신 포함)은 그게 안 된다.


보통의 중국인이라면 기차역 도착 후 매표소(售票处)를 찾아가서 매표소에 있는 기계를 사용해서 실물표를 교환한다. 그런데 외국인이 만약 바로 매표소로 가게 되면 표를 교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매표소에는 대부분 사람이 없고, 자동발권기(自动取票机)만 있기 때문이다. 기계는 중국인의 신분증을 사용해 표를 교환하게 되어 있어서 신분증이 없으면 애초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외국인이 실물표 교환을 하려면, 기차역 도착 후 꼭 유인매표창구(人工售票窗口)를 찾아가야 한다. 창구에 도착해서 본인 차례에 어플에서 예매번호(订单号)를 찾아서 직원에게 알려주면 실물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일반적인 중국인들은 다 자동발권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인매표창구는 우리 같은 외국인의 실물표 교환을 도와주는 기능 외에도 환불(退票), 교환, 차편 변경(改签) 등 각종 부대기능을 모두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작은 도시든 큰 도시든 유인매표창구에는 모든 창구에 사람이 항상 바글바글하다. 게다가 직원들이 규정을 너무너무 잘 지키는 공무원분들이신지라 때 되면 재깍재깍 쉬러 가신다. 쉬러 가시는 건 괜찮은데 미리 말을 안 해준다. 갑자기 직원이 사라진다. 잘 서있던 줄은 엉망이 된다. 빨리 처리를 하고 싶으면 얼른 다른 줄을 찾아 각자도생해야 한다. 이렇게 어떤 돌발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우리 같은 외국인은 기차역에 적어도 출발시간 한 시간 전에는 도착을 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차역으로 향하도록 하자.


사연 많은 유인창구 및 우여곡절 끝에 받아낸 내 기차표


표를 받은 뒤에는 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말은 표가 없이는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 입구에서 표와 신분증을 검사받은 후에나 역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여기서도 외국인과 중국인의 차이가 있는데, 중국인의 경우에는 신분증에 칩이 있어서 기계에 찍기만 하면 바로 통과가 가능한데, 외국인은 여권을 아무리 기계에 찍어도 통과가 안 된다. 외국인은 일단 녹색통로(绿色通道)를 찾아야 한다. 녹색 통로는 직원이 검사하는 곳으로, 거기서 여권과 본인의 차표를 보여주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얼핏 번거로운 것 같지만 이게 좋을 때가 꽤 있는데, 왜냐하면 녹색통로는 붐비는 일이 별로 없다. 일반적인 중국인들은 다 기계 쪽에 줄을 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 다 줄 서 있을 때 나는 일찌감치 역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으로 복작복작한 기차역에서 이건 정말 큰 장점이다.


기차역의 랑야방 느낌과 고속철 화해호(和谐号)


상해에서 상해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드디어 남경남역(南京南站)에 도착하였다. 바로 숙소로 이동해 짐을 좀 풀고, 카메라를 들고 방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남경의 옛 성벽 중화문(中华门). 호텔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호텔 근처 지하철역 이름이 상해로(上海路)였는데, 마치 상해를 떠나 남경으로 왔는데 또다시 상해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남경 지하철의 탑승권은 동전같이 생긴 플라스틱 토큰이었는데, 카드 형태로 된 도시들을 많이 봐서 토큰 형태는 좀 신기했다. 편도용으로 쓰는 토큰이라 지하철 하차를 하면 토큰이 다시 나오지 않는다.


호텔에서 본 바깥 풍경과 지하철 풍경, 토큰같은 탑승권


남경의 옛 성문, 중화문(中华门)


여행할 때 미리 조사를 좀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 중화문은 낮에는 오후 5시까지밖에 개방을 안 한다. 우리가 지하철을 탄 시간이 이미 오후 5시가 넘었으니, 문은 이미 닫힌 시간. 일단 아쉬운 대로 그 근처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성벽에 올라 남경 전경을 좀 보고 싶었는데 못 보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고도(古都) 남경에는 갈 곳이 이미 충분히 많으므로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도 있고 볼거리도 있는 곳을 찾다가, 도보로 조금 가면 있는 라오먼동(老门东)으로 가게 되었다.


성벽에 올라가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된 거 강구경이라도


뜻밖의 고수(香菜) 입문기


라오먼동(老门东)은 그 이름만 가지고 보면 '옛 문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그 옛 문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우리가 못 들어간 중화문(中华门)이다. 워낙 번화한 도시였던 남경, 그리고 그 도시의 대표적인 문 동쪽에 위치한 길인 라오먼동은 옛적부터 남경에서 가장 번화한 주거지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이니 각종 상인들이 몰려들어 주거지인 동시에 상업 중심가였던 곳. 거기다 그 주변에는 남경의 공묘인 푸즈먀오(夫子庙, 부자묘)가 있으니, 그 핫함을 알만하다.


라오먼동으로 걸어가던 중 발견한 벽화. 중화문 주변의 번화가가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침 이 라오먼동에서, 여행자로서는 가장 즐거운 일을 만나게 된다. 그건 바로 마침 이곳에서 이벤트가 있었던 것!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이벤트를 만나게 되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보아하니 매년 이 시기에 친화이 등 축제(秦淮灯会)를 하는 것 같은데, 2019년에는 그 33번째 등 축제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한국 진주에서 하는 남강 유등축제처럼, 남경 역시 그 어머니강(母亲河) 친화이강(秦淮河)에서 등 축제를 진행하고, 마치 라오먼동이 그 근처라 거리 전체가 예쁜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이 틈을 타 예쁜 배경에서 웨딩 스냅을 찍으려는 커플이 있었는데, 빨간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졌다.


라오먼동의 입구와 반가운 등회 소식, 그리고 웨딩스냅 커플!


등 축제를 구경하기에는 해가 좀 덜 지기도 했고 배도 좀 고프고 해서 남경에서의 첫 끼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첫 끼로 내가 생각한 메뉴는 남경의 유명한 음식, 야시에펀스탕(鸭血粉丝汤). 한자 그대로 오리피와 당면이 들어있는 탕이다. 라오먼동 근처에 이 음식을 파는 가게는 정말 수도 없이 많아서, 어느 가게가 맛있는지 어느 가게가 제대로 하는지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남경 친구도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어도 된다고 할 정도. 다만 주의할 점은, 라오먼동 안에는 이런 서민적인 음식을 파는 가게가 별로 없다. 일단 라오먼동에서 나와서 성벽 근처 길로 들어서면 김밥천국 같이 이 탕을 파는 가게가 잔뜩 나온다.


가게 하나를 집어서 들어가 보니 친구가 왜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된다고 했는지 알겠다. 이 메뉴는 '요리'라기보다는 한국으로 치면 라면 같은 메뉴라, 아무 김밥천국을 찾아 들어가서 주문을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요리보다는 분식에 가까운 남경의 소울 푸드. 가게들은 저마다 우리 가게 탕이 맛있다고 홍보하기 위해 초대형 냄비에 탕을 끓이는 모습을 자랑하지만, 사실 그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남경 사람들에겐 그저 어느 가게가 가성비가 좋은 탕을 내놓느냐가 중요하다.


기왕 온 김에 일반 탕 말고 금메달(金牌)이라는 이름이 붙은 탕을 주문한다. 탕만 먹자니 좀 허전해서 군만두 졘쟈오(煎饺)도 하나 주문했다. 금메달 탕이 뭐가 다른가 했더니, 일반 탕은 그냥 오리피와 당면, 기본적인 야채가 들어간다고 하면 금메달 탕은 거기에 오리 혀, 오리 창자 등 기타 부위가 함께 들어가는 것 같다. 순댓국이 생각나는데, 막상 밥이 없으니 좀 허전하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많이 들어갈 줄 몰라서 미리 말을 안 했더니 탕에 고수(香菜)가 잔뜩 뿌려져 있다. 건질레야 건질 수 없을 만큼 많이. 중국 요리를 정말 좋아하지만 고수만큼은 못 먹었던 난데, 이렇게 되니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러 피해서 숟가락질을 해도 어떻게든 딸려 들어오는 우리의 고수잎. 그런데 신기한 건, 은근히 어울린다! 고수가 없었다면 좀 느끼했을 것 같은 느낌. 이렇게 나는 고수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는 잘 먹긴 했지만, 냄새에 민감한 분이라면 아마 먹기 좀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남경' 하면 떠오르는 요리이니 큰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한 남경의 맥도날드, 그리고 오리피당면탕, 군만두.


화려한 거리, 그 숨겨진 구석엔


밥을 먹고 나니 해가 많이 졌다. 이제 등 축제를 구경하기 딱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일행들과 함께 다시 라오먼동 구역 안으로 들어가 본다. 라오먼동은 약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13년 대중에게 개방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전통 가옥들의 외형은 놔두고 내부를 현대식으로 바꿨다. 또한 유명한 브랜드들을 초대하여 이곳에 점포를 내게 했다. 상해로 치면 신천지 같은 느낌일까? 약간 북경의 전문대가(前门大街)의 느낌도 난다.


화려하게 장식된 거리와 초대형 물고기

곧게 뻗은 길 양쪽에 각종 상점이 있고, 중간중간 골목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이곳. 혹시 여행자가 길을 잃을까 싶어 친절하게 이정표도 적혀 있다. 재밌는 건 이 골목 안에 중국의 유명 상성(相声, 만담과 유사한 중국의 전통 공연예술) 극단 더윈셔(德云社, 덕운사)의 공연장이 있었다. 아마 그 상성이라는 민간 전통예술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이곳의 전통 주택을 임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곳에 또 빠질 수 없는 곳이 스타벅스(星巴克)다. 상해 신천지 전통주택에 스타벅스가 매장을 냈듯, 남경에서도 라오먼동의 전통주택에 매장을 오픈해뒀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내 눈은 호강을 하는데, 카메라는 어째 풍경을 잘 담지를 못한다. 이럴 땐 눈이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말이 실감된다. 간단히 라오먼동의 풍경을 여기 담아본다.



라오먼동이 여행객에게 주는 느낌은, 앞서 말한 대로 상해의 신천지(新天地)나 북경의 전문대가(前门大街)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북촌 한옥마을이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도 비슷하지만 또 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가. 전통 가옥을 개조해 만든 거리라고 해서 서민적인 요리를 팔지는 않는다. 상해 신천지에 버거집이 제일 흥하는 것처럼. 외국인, 특히 동양의 매력을 동경하는 서양인이 이곳을 많이 찾기 때문에 서양 요리를 파는 집이 많고, 물가도 그만큼 비싸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밥을 먹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비싸다. 눈으로만 구경하기를 추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에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아래 사진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곳, 그 골목에서 묵묵히 환경 미화를 하고 계신 환경미화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투명인간 같은 존재.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이 사진이 그 수많은 사진들보다 좋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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